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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피카미디어

짐도 차박도 OK! 자동차 트렁크의 역사

트렁크는 캐빈룸 못지않게 중요한 자동차의 공간입니다.

흔히 자동차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이 타는 캐빈룸(cabin room)을 논하는 경우가 많지만, 캐빈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트렁크입니다. 트렁크는 캐빈룸에 탑승한 승객이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짐을 격리해 수납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평소에 차량에 꼭 필요한 각종 물품들을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한데요.


자동차의 성능과 신뢰성이 향상돼 본격적인 자동차 여행이 시작된 20세기 초부터 트렁크는 항상 자동차와 함께였습니다. 동시에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짐을 수납하면서 자동차의 디자인을 해치지 않도록 꾸준히 진화해 왔는데요.


단순한 수납공간이 무슨 발전사가 있었겠냐마는, 의외로 트렁크는 자동차의 여러 구성요소 중 많은 변화를 겪은 편입니다. 오늘은 자동차, 정확히는 승용차의 트렁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간단한 역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트렁크가 트렁크인 이유는 진짜로 '트렁크'였기 때문​

트렁크는 왜 '트렁크'가 됐을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트렁크(trunk)는 북미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이고, 영국 영어에서는 부트(boot)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왜 이런 단어를 사용했는지, 그 기원을 살펴보면 그 역사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근거리용 이동수단이었던 초창기 자동차는 별도의 수납공간이 없었습니다.

19세기 등장한 초창기 자동차에는 별도의 수납공간이 없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자동차는 새롭게 등장한 흥미로운 탈것이었고, 이를 타고 멀리 이동할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인데요. 이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앞서 등장한 증기기관 자동차나 전기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계적 신뢰도와 속도, 연료 공급 등의 문제로 자동차의 활동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의 기술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20세기 초에는 자동차의 활동 반경도 급격히 넓어졌는데요. 기계적으로 수백 km 정도의 여정은 큰 부담 없이 갈 수 있게 되고 주유소도 곳곳에 생겨나면서 자동차는 마차나 기차를 대체하는 장거리 여행 수단으로 각광 받게 됩니다.​

자동차에 여행용 가방을 매단 게 초창기 트렁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초까지도 별도의 적재공간을 갖춘 승용차는 많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마차에서 쓰던 커다란 여행 가방, 즉 트렁크(trunk)를 차에 매다는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트렁크의 어원이자, 초창기 자동차 트렁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는 왜 부트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원래 부트는 대형 마차인 코치(coach)에서 마부가 앉는 좌석을 일컫는 단어였습니다(마부가 주로 신던 부츠(boots)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 이 좌석 밑에는 마부가 각종 물품을 넣는 수납함이 마련됐는데, 이 단어가 자동차에서도 유용되면서 트렁크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이죠. 결국 트렁크도 부트도, 모두 마차 시대로부터 계승된 명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체와 통합된 트렁크는 인테그레이티드 트렁크(integrated trunk)라 불립니다.

어쨌거나 이런 트렁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트렁크를 차체에 결박하는 일이 매우 번거로웠을 뿐 아니라, 주행 중에 떨어져 나갈 위험도 있었죠. 때문에 193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차체와 일체형으로 구성된 적재공간, 즉 현대적인 의미의 트렁크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차들이 2-박스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트렁크 크기도 작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3-박스 구조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캐빈룸과 분리된 트렁크가 차체 뒷편에 마련되는 형태가 보편화됩니다. 이후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가 만들어졌지만, 차종 불문하고 캐빈룸과 분리된 공간에 짐을 싣는 경우는 모두 트렁크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트렁크도 다 같은 트렁크가 아니다?

상술한 것처럼 승용차의 적재 공간은 모두 트렁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개폐 형태나 구조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내 차의 트렁크는 이 중에서 어떤 종류일까요?


- 트렁크 리드 타입​

3-박스 구조의 세단이나 쿠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트렁크 리드(trunk lid) 타입입니다. 캐빈룸과 적재 공간이 완전히 분리돼 있기 때문에 정숙성이 가장 뛰어나고 급정거 시에도 적재물이 캐빈룸으로 넘어올 위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구부가 좁고 트렁크 공간이 좁아 적재 용량이 가장 적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때문에 시트 가운데를 관통해 긴 짐을 실을 수 있는 스키스루나 아예 시트 폴딩을 지원하는 모델도 많습니다.


- 해치 타입

세단을 제외한 해치백, 왜건, SUV, MPV 등 1-박스나 2-박스 타입의 차체를 지닌 모델들은 대부분 해치(hatch)를 장착합니다. 열리는 형태가 마치 잠수함 해치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해치백(hatchback)'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개구부가 넓고, 천장까지 짐을 실을 수 있는 데다, 일반적으로 시트 폴딩을 지원하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가 뛰어납니다.


다만 트렁크와 캐빈룸이 분리되지 않아 소음이 많이 유입되고, 짐이 넘어올 수 있다는 단점도 상존하는데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러기지 스크린이나 러기지 네트를 사용합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SUV 판매량이 늘면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이기도 합니다.


-패스트백 해치 타입

세단과 비슷한 형태지만 C-필러를 눕혀 세련된 바디 라인을 강조한 패스트백 모델의 경우, 트렁크 리드와 뒷유리가 통으로 연결된 패스트백 해치를 적용합니다. 실제 적재 용량 자체는 동급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패스트백 디자인의 특성 상 개구부가 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인데요. 패스트백 해치가 적용된 모델로는 아우디 A7, BMW 그란투리스모, 테슬라 모델 S 등이 있습니다.


-클램쉘 게이트 타입

클램쉘 게이트는 해치와 트럭 적재함의 테일게이트를 섞어놓은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개구부의 상단과 하단에 각각 힌지가 배치돼 위·아래로 여는 방식인데요. 무거운 짐을 싣기 편하고, 해치를 열어도 짐이 쏟아지지 않으며, 해치 무게가 나눠져 여닫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조가 복잡하고 단가가 비싸 적용 차종이 많지는 않습니다. 르노삼성 QM5, BMW X5,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등이 클램쉘 게이트를 채택합니다.


-스윙 도어 타입

스윙 도어는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운 타입입니다. 일반적으로 SUV에 많이 적용되는데, 이름 그대로 측면에 힌지가 있어 한 쪽으로 열립니다. 무거운 해치를 들어올리는 고생 없이 쉽게 여닫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선형 바디 라인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 운전석 방향에 따라 힌지 위치를 바꿔 설계해야 하는 점, 내리막길에서는 오히려 열기 힘든 점 등이 한계입니다. 현대 갤로퍼나 닛산 큐브가 대표적입니다.


-트윈 스윙 도어 타입

​트윈 스윙 도어는 주로 상용 MPV에 많이 사용합니다. 르노 마스터는 전 모델 기본, 현대 스타렉스/스타리아는 선택사양으로 트윈 스윙 도어를 장착할 수 있는데요. 열고 닫을 때 힘이 덜 들 뿐 아니라 지게차로 짐을 싣고 내릴 수 있다는 이유가 주효합니다. 승용차 중에서는 미니 클럽맨이 트윈 스윙 도어를 채택하는데요. 실용성 보다는 클래식 미니 컨트리맨의 디자인 특징을 계승하는 의미가 큽니다.


-전면 트렁크

트렁크는 적재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차체 뒷쪽에 위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차체 앞쪽에 엔진이 얹히니 뒷쪽에 자리할 뿐이죠. 때문에 미드십 엔진이나 리어 엔진 배치를 채택한 모델은 전면부에 트렁크를 배치하기도 하는데요. 포르쉐 박스터, 911 같은 모델들이 대표적입니다.


또 최근 출시되는 전기차들은 전기모터 배치에 따라 앞쪽 공간을 트렁크로 활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테슬라는 아예 전면부(front)와 트렁크(trunk)를 합쳐 프렁크(frunk)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트렁크는 어떻게 바뀔까?

트렁크 공간은 이제 각종 비상 공구와 전기장치까지 실리는 공간이 됐습니다.

최초의 트렁크는 여행용 짐을 싣기 위해 탄생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트렁크의 용도는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차체 일체형 트렁크가 보편화된 뒤에는 주로 외부에 부착하던 스페어 타이어가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스페어 타이어 교체와 긴급 정비를 위한 공구함, 비상용 삼각대 등이 트렁크에 자리 잡게 됩니다.


20세기 말로 가면서 자동차에 전자·전기 장비가 크게 늘었고, 엔진룸과 캐빈룸에 배치하는 데에도 한계가 오면서 몇몇 장치들은 위치를 트렁크로 옮깁니다. CD 체인저는 일찌감치 트렁크에 배치됐고, 무게 배분 개선을 위해 독일차를 시작으로 배터리를 트렁크로 옮긴 경우도 늘어났죠.​

전동화 초기에는 트렁크에 구동용 배터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트렁크는 구동용 배터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초창기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은 배터리를 트렁크 내부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로 인해 트렁크가 좁아지는 등 불편이 생기자 최근에는 2열 시트 아랫쪽이나 기존 스페어 타이어 랙이 있는 트렁크 하단에 배터리를 배치하는 추세입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캠핑과 차박 열풍이 부는 요즘은 트렁크 공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죠. 특히 왜건이나 SUV라면 2열 시트를 폴딩했을 때 트렁크와 평평하게 연결되는 '풀 플랫 폴딩' 여부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심지어 최근 출시된 현대 캐스퍼는 트렁크가 아주 작지만, 차박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1열 시트까지 풀 플랫 폴딩 기능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레저 활동의 확대로 트렁크는 제2의 거주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외부 전기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파워 아웃렛이나 V2L 단자도 트렁크에 배치되면서, 이제 트렁크는 단순한 적재 공간을 넘어 자동차 레저 활동을 위한 제2의 거주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트렁크에서 음식 파티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면 트렁크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미래 자동차의 트렁크는 어떻게 바뀔까요? 우선은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전면 트렁크가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전기차 시대에는 모터의 배치가 비교적 자유롭고, 따라서 차체 앞쪽 공간도 수납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테슬라는 물론 현대차·기아, 포르쉐 등 여러 제조사의 전기차들이 전면 트렁크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개인형 모빌리티가 실린 트렁크도 늘어나겠죠?

또 퍼스널 모빌리티 시대가 오면 트렁크는 단순 화물 적재를 넘어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 수납 공간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가령 차를 타고 이동한 뒤, 트렁크에서 충전 중이던 개인형 이동장치(전동휠, 전동 킥보드 등...)를 꺼내 사용하는 것이죠. 비단 모빌리티가 아니더라도, 레저 활동의 확대로 트렁크가 보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여행용 짐가방으로 시작해 자동차 속 새로운 공간으로 재발견되고 있는 트렁크! 이 작은 공간조차 자동차의 진화를 반영한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습니다. 여러분의 트렁크에는 어떤 물건들이 실려 있나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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