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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무쏘 : 한국의 첫 고급 SUV를 기리며

무쏘는 국산차 최초로 고급 SUV 시장을 개척한 모델입니다.

최근 국산차 업계의 핫이슈는 쌍용자동차의 신차, 토레스입니다. 법정관리의 위기 속에서 쌍용차의 마지막 여력을 끌어모아 출시한 토레스는 디자인과 상품성 양면에서 좋은 평가를 얻으며 인기몰이에 나섰는데요. 쌍용차의 연간 내수 판매량이 6만 대 남짓인데 사전계약 대수만 3만 대를 넘겼다고 하니 쌍용 입장에서는 9회말 2아웃에 등장한 구원타자 격입니다.


토레스를 소개하는 많은 글에는 '무쏘 후속'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그만큼 왕년의 명차, 무쏘의 부활을 바랐던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크기로만 보자면 무쏘가 중형 SUV 계보에 위치하는 것이 맞지만, 원래 무쏘는 한국 시장에 없었던 프리미엄 SUV로 만들어진 모델이었기 때문이죠.

쌍용 토레스가 인기몰이를 하는 와중, 쌍용 중형 SUV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무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쌍용차가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신차를 선보이던 1990년대, 무쏘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이전에 없던 고급스러운 사양, 당대 최고의 엔진을 얹고 등장했습니다. SUV 전문 브랜드 쌍용을 만든 일등공신, 30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국산 명차로 꼽히는 무쏘는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위기의 쌍용차, 삼각별을 만나다​

쌍용은 코란도 훼미리를 통해 승용 SUV 시장에 진출했지만, 강적 갤로퍼의 등장으로 수세에 몰립니다.

쌍용차의 역사에는 유독 '위기'라는 단어가 잦습니다. 고속 성장으로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던 1990년대 초에도 쌍용차는 위기의 파도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쌍용그룹에 인수된 직후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가 해제되며 숙원이었던 승용차 시장 진출의 길이 열렸지만, 이는 다른 경쟁사들도 쌍용차의 영역에 뛰어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1988년 선보인 이스즈 트루퍼 기반의 승용 SUV, 코란도 훼미리는 제법 인기를 끌며 쌍용차가 '지프차 전문' 브랜드에서 종합 제조사로 변신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1991년 당시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이 현대정공(現현대모비스)을 통해 갤로퍼를 출시, SUV 시장에 진출하면서 코란도 훼미리는 수세에 몰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엔진을 공급하던 대우중공업의 대규모 파업으로 생산 라인이 멈추는 악재까지 겪으며 쌍용차는 경영 악화를 겪습니다.


물론 쌍용차에게도 복안은 있었습니다. 1990년부터 코드명 FJ(Future Jeep, 미래의 지프)로 개발을 시작한 차세대 중형 SUV가 그 주인공이었죠. 하지만 품질과 성능, A/S 등 여러 면에서 우위였던 갤로퍼를 이기기 위해서는 적당히 새로운 SUV를 만드는 걸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디자인과 성능 양면에서 경쟁 모델을 압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쌍용은 신흥시장용 전략 상용차 MB100(이스타나)를 계기로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를 체결합니다.

경쟁사들을 능가할 새로운 기술제휴처와 더불어 대우중공업 노사분규 이후 새로운 엔진 공급선에 목말랐던 쌍용차는, 그러던 중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됩니다. 바로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꼽히는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제휴가 성사된 것입니다.


아시아 변방의 군소 제조사와 세계 최정상급 자동차 회사의 제휴는 당시 국내외 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쌍용차만 좋은 일이 아니었나 싶지만, 사실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윈-윈' 관계였는데요.


메르세데스-벤츠는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에 수요가 많은 소형 밴을 만들어 팔고 싶었지만, 수익성이 낮은 모델을 직접 생산하는 부담을 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국가에서 메르세데스의 품질 기준을 맞출 수 있고 생산 능력도 충분한 회사를 물색했는데, 마침 이렇다 할 제휴선이 없었던 쌍용차가 눈에 든 것이죠.​

최정상급 제조사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제휴로 쌍용차는 엔진과 승용차 개발 기술을 손에 넣습니다.

당시 현대와 기아는 각각 미쓰비시와 포드·마쓰다, 대우는 GM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쌍용은 이스즈와의 제휴가 불발되면서 붕 떠있던 상태였습니다. 특히나 SUV와 쌍용차에 많이 쓰이는 디젤 엔진 기술이 절실했는데, 세계 최고 품질의 디젤 엔진을 만드는 메르세데스-벤츠와의 만남은 천재일우의 기회였습니다.


이렇게 1991년,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흥시장용 전략 상용차(국내에서는 이스타나로 판매됩니다) OEM 생산을 조건으로 쌍용차가 디젤 엔진 기술을 이전 받는 제휴가 체결됩니다. 이 관계가 잘 풀리면서 제휴 범위는 가솔린 엔진 기술(1992년), 승용차 개발 기술(1993년)로 확대됐고, 이 제휴에 힘입어 차세대 SUV와 쌍용의 첫 승용차 개발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게 됩니다.

한국에 없던 최고급 SUV

쌍용 산하에 있었던 팬더의 스포츠카, 솔로. 국내 출시도 추진됐으나 결국 무산됩니다.

쌍용 그룹을 이끌던 김석원 회장은 본인 스스로가 대단한 자동차 마니아였습니다. 거화, 동아를 지나 쌍용의 품에 들어온 자동차 회사를 최정상급 자동차 회사로 키우고 싶었던 건 당연지사였죠. 쌍용차를 인수하자마자 영국 팬더(Panther) 사를 사들인 것도 스포츠카를 라인업에 끼워 넣고자 했던 시도의 일환이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제휴가 성사된 것을 크게 반긴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선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쌍용 브랜드에서 최고급 모델을 만들어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은 뒤, 하위 모델로 라인업을 확장한다면 종합 제조사로 거듭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비싼 기술 로열티를 지불하려면 수익성이 좋은 고급차를 만들어 팔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요.

브랜드 고급화에 나선 쌍용차는 FJ 프로젝트를 최고급 SUV로 격상시킵니다.

이에 따라 승용 부문에서는 첫 승용차이자 플래그십 고급 세단 체어맨의 개발이 시작됐고, SUV 부문에서는 코란도 훼미리의 후속으로 개발 중이던 FJ의 급을 높여 경쟁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최고급 SUV로 리포지션 됩니다.


차체 설계는 쌍용에게 익숙한 바디 온 프레임 방식으로, 코란도 훼미리의 래더 프레임을 개량해 사용했습니다. 초기의 코란도 훼미리가 2중 구조 프레임을 사용했던 것이 FJ에서는 3중 구조로 개선됐고, 리어 서스펜션도 리지드 액슬+리프 스프링 설계에서 5-링크 타입으로 변경돼 승차감을 승용차 수준으로 높였습니다(FJ 개발 과정에서 완성된 3중 구조 프레임과 5-링크 서스펜션은 코란도 훼미리 최후기형에도 적용됐습니다).​

무쏘를 디자인한 켄 그린리 교수. 그는 이후에도 2000년대 중반까지 쌍용차의 디자인에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프레임 구조는 비슷했지만, 그 위에 얹힌 내용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네모 반듯하게 각진 차체의 SUV가 대세였던 시절, 쌍용은 팬더 솔로의 디자인을 맡아 인연을 맺은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RCA)의 켄 그린리(Ken Greenley) 교수에게 "세상에 없던 고급 SUV"의 디자인을 요청합니다.


켄 그린리 교수는 고급 세단의 디자인 화법을 바탕으로 기존의 각진 SUV와 확연히 구분되는 실루엣을 그려냅니다. 유선형의 노즈와 매끄럽게 뻗어 나가는 캐릭터 라인은 돌고래에서 영감을 받았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테일게이트가 대세였던 시절, D-필러를 기울여 파격적인 해치백 스타일의 뒷태를 완성합니다. SUV라 하면 마초적이고 투박한 디자인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 FJ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혁신이었죠.

OM602 직렬5기통 디젤 엔진. 차세대 SUV의 주력 트림에 탑재됩니다.

주행 성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파워트레인을 바탕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직렬4기통 2.3L 자연흡기 디젤, 직렬5기통 2.9L 자연흡기 및 터보 디젤 등 세 종류의 디젤 엔진과 직렬4기통 2.0L, 2.3L 가솔린, 직렬6기통 3.2L 가솔린 등 세 종류의 가솔린 엔진이 마련됐는데, 모두 메르세데스-벤츠가 최근까지 사용하던 것이었죠.


여기에 변속기는 보그워너의 5속 수동변속기와 메르세데스-벤츠의 기계식 4속 자동변속기(초기형은 체코제 4속)가 조합됐습니다. 파트타임 4륜구동 시스템의 경우 보그워너 제 전자식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해 국내 최초로 주행 중 2WD-4WD 전환이 가능한 시프트-온-플라이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직렬6기통 엔진이 장착된 최상위 모델에는 상시 네 바퀴에 구동력이 배분되는 기계식 풀타임 4륜구동이 적용돼 우수한 주행 안정성을 자랑합니다.

초기형 무쏘의 실내. SUV가 준 상용차 취급을 받던 시절, 무쏘의 인테리어는 승용차 감각으로 디자인됩니다.

안전 및 편의 사양도 적극적으로 도입됐습니다. 국산 4륜구동 차량 최초로 ABS를, 쌍용차 최초로 운전석 에어백을 장착했으며, 가죽 시트와 6:4 2열 폴딩 시트, 그 밖에 고급 세단에나 쓰이던 각종 편의장비가 아낌없이 투입됐습니다.​

1993년, 마침내 쌍용의 야심작 무쏘가 데뷔합니다.

이전까지 쌍용차는 RV 전문 제조사였기에, 고급 기술이 얹힌 고급차를 만드는 첫 시도는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완성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많은 146대의 시험차를 제작해 주행 테스트를 실시했고, 공장 라인에서도 고급차에 걸맞는 생산 품질을 낼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쌍용차, 아니 우리나라 최초의 고급 SUV가 1993년, 대중 앞에 공개됩니다.

무소의 뿔처럼 나아간 무쏘를 기억하며​

무쏘는 디자인과 성능 양면에서 크게 호평 받습니다.

무쏘는 등장과 동시에 한국 RV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마침 이 때는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자가용 차량 구매가 급증하던 시기였고, 동시에 레저 수요가 늘면서 SUV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습니다. 앞서 코란도 훼미리와 갤로퍼가 다져 놓은 토양에 파격적인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으로 무장하고 상륙한 무쏘는 뜨거운 반응을 얻습니다.


주력 모델은 95마력을 내는 2.9L 디젤 '602EL' 모델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성능이 부족해 보이지만, 당시 경쟁 모델인 갤로퍼의 2.5L 디젤 엔진이 자연흡기 73마력, 터보 81마력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월등한 성능이었죠. 더구나 메르세데스-벤츠의 승용 디젤 엔진 답게 정숙성과 내구성도 훨씬 뛰어났습니다.​

3.2L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무쏘는 국제 랠리 대회에도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물론 무쏘가 저렴한 차는 아니었습니다. 출시 당시 4기통 디젤을 탑재한 601 모델의 가격은 1,774만 원에 달해 갤로퍼보다 수백만 원 비쌌고, 6기통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IL6 3200은 무려 3,205만 원의 가격표가 붙었습니다. 당시 현대차 기함이었던 뉴그랜저의 3.0 V6 모델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218마력의 최고출력을 내 "대관령 오르막길에서 처지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차"라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무쏘 500 리미티드 출시 당시의 광고. 4,950만 원의 가격표는 당대 국산 승용차 중 최고가였습니다.

1996년에는 최고급 사양을 탑재한 한정판 모델, '500 리미티드'도 출시됩니다. 단 500대만 생산된 이 한정판은 3.2L 가솔린 모델을 기반으로 양가죽 시트, 리얼우드 무늬목 트림과 자개 각인, 알파인 오디오와 CD체인저, 차량용 카폰, CD-i 플레이어, 4채널 ABS 및 TCS, 전용 알로이 휠과 전용 도색 등 초호화 사양으로 꾸며졌는데요.


500 리미티드의 신차 가격은 무려 4,950만 원으로, 국산 승용차 중 가장 비쌌습니다. 현재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원에 달하는데, 당시의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이 차의 위상은 오늘날의 레인지로버와 맞먹는 수준이었죠. 국내에는 500대 중 100대가 배정됐고, 나머지는 전량 수출됐는데요. 고급 SUV가 세계적으로도 드문 시절이었던 만큼 수출 물량 중 상당수가 해외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됐습니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뉴 무쏘.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으로 전기형과 구분됩니다.

그러나 야심차게 준비한 무쏘도 IMF 외환 위기의 충격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1998년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 직후 쌍용차가 대우자동차에 인수됐고, 무쏘도 한동안 대우 뱃지를 달고 판매됐었죠. 부분변경 모델은 자동변속기가 BTR(비트라)제로 바뀌고,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변경되는 등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대우 그룹의 도산으로 독자 워크아웃에 돌입한 쌍용차는 무쏘의 후속 모델을 출시하면서 무쏘를 단종시킬 계획이었습니다. IMF의 충격이 가라앉고 소비 심리가 회복되면서, 세련되게 손질한 무쏘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세금이 저렴한 2인승 밴과 7인승 모델의 인기에 힘입어 출시 6년차인 1999년과 이듬해 2년 연속으로 국내 SUV 판매량 1위에 올랐고, 2001년에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도로 관리용으로 쓰던 무쏘가 "88만 7,000km 엔진 무보링" 주행 기록을 세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끌게 됩니다.

2002년 출시된 픽업 버전, 무쏘 스포츠. 무쏘 시리즈는 출시 후 13년이 지난 2006년에야 완전히 단종됩니다.

결국 쌍용차는 당초 무쏘의 후속으로 기획됐던 렉스턴(코드명 Y200)이 출시된 뒤에도 무쏘를 중형 SUV로 재배치해 계속 판매하기로 합니다. 편의 사양을 줄인 저가형 무쏘는 2005년까지 계속 생산됐고, 2002년에는 무쏘 기반의 픽업트럭인 무쏘 스포츠까지 만들어집니다. 무쏘 스포츠도 2006년 액티언 스포츠에게 자리를 넘겨준 뒤 단종되면서, 국내 첫 고급 SUV 무쏘의 역사는 13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무쏘는 해외에서도 쌍용차의 인지도를 키워 준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유럽 시장에서 오랫동안 사랑 받은 건 물론이고 베트남, 중국, 이란, 러시아 등 신흥 시장에서도 현지 생산되며 쌍용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심지어 동남아 일부 지역에는 메르세데스-벤츠 뱃지를 달고 판매될 정도로, 제휴선인 메르세데스-벤츠에게도 품질과 상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현재도 무쏘가 렉스턴 스포츠의 수출명으로 쓰일 만큼, 쌍용에게 '무쏘'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별한 의미입니다.

공식적으로 무쏘의 후속은 카이런이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국산 고급 SUV의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쌍용차의 공식 자료에서는 무쏘의 후속 모델로 카이런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체급으로만 본다면 중형급이 맞으니, 카이런의 후속 격인 토레스가 곧 무쏘의 후속이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승용 SUV 시장이 태동하던 1990년대 초, 앞선 기술과 디자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급 SUV 시대를 연 무쏘의 정신적 후계작은 렉스턴이라 할 수 있고, 더 크게 보자면 오늘날 인기를 끌고 있는 모든 국산 프리미엄 SUV의 시조라 할 수 있겠습니다.​

토레스는 무쏘처럼 쌍용의 재기를 이끌 수 있을까요?

쌍용차의 역사는 격동의 역사라 해도 될 정도로, 지난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존폐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쌍용차는 기적처럼 부활해냈고, 무쏘는 그 주역 중 하나였습니다. 험한 파고를 넘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간 무쏘의 정신을 이어받아, 쌍용의 신차들이 다시 한 번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해 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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