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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F1 무대, 모나코 서킷

낭만이 넘치는 꿈의 레이스 무대, 모나코 서킷입니다.

매년 전 세계를 돌며 경합을 벌이는 포뮬러원(F1) 챔피언십에서 가장 매력적인 서킷은 어디일까요? 유서깊은 몬차, 아시아 최장 스즈카, 아찔한 배틀이 벌어지는 바쿠, 화려한 야스마리나 등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서킷들이 많죠.

모나코 서킷은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자타공인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서킷은 단연 모나코 서킷(Circuit de Monaco)일 것입니다. 긴 역사와 상징성,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관, 난공불락의 난이도, 시가지 서킷의 특수성 등이 결합된 모나코는 모든 모터스포츠 팬과 레이서들의 로망이 담긴 경주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사진 한 장에 국토 전체가 들어올 정도로 작은 모나코는 어떻게 모터스포츠의 전당이 됐을까요?

모나코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해안에 있는 소국입니다. 국토 면적이 2.2km²에 불과한데요. 2.9 km² 면적의 여의도보다도 작은 셈이죠.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도로를 막고 코스를 만드는 건 보통 결단이 아니었을텐데요. 어떻게 소국 모나코는 모터스포츠 역사 상 가장 사랑받는 서킷을 갖게 됐을까요?


때는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동차 보급과 모터스포츠 경쟁이 한창 활발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자연스럽게 탄생한 자동차 클럽은 차를 모는 사업가·귀족들의 사교 모임이자 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였고, 또 지역 모터스포츠를 주관하는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몬테 카를로 랠리는 현재까지도 WRC 개막전으로 역사가 이어집니다.

모나코 자동차 클럽(Automobile Club de Monaco, 이하 ACM) 역시 이런 역할을 맡았는데요. 클럽의 창립자인 알렉산드르 노게스(Alexandre Noghès)는 국제 랠리 대회 '몬테 카를로 랠리'를 개최합니다. 당시 몬테 카를로 랠리는 유럽 각지에서 출발해 목적지인 모나코 몬테 카를로를 향해 달리는 대회였는데요. 이 대회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가 됐습니다.​

안토니 노게스(왼쪽)와 모나코 자동차 클럽의 사진. 노게스 가문은 ACM의 부흥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ACM의 위상도 함께 높아지면서, 알렉산드르 노게스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인 안토니 노게스(Antony Noghès, 레이스 종료 시 사용하는 체커기를 최초로 제안한 사람이기도 합니다)는 FIA의 전신인 국제 인증 자동차 클럽 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Automobiles Clubs Reconnus, AIACR)에 '프랑스의 지역 클럽'으로 등록돼있던 ACM을 '모나코의 국가 대표 클럽'으로 승격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AIACR은 ACM이 개최하는 '제대로 된'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합니다. 몬테 카를로 랠리는 코스의 대부분이 다른 유럽 나라였고, 모나코는 종점으로만 '들르는' 곳이니, 오롯이 모나코만의 모터스포츠 대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였죠.


이에 노게스는 모나코 국경 안에서 국제 그랑프리 대회를 열기로 하는데요. 넓은 영토를 지닌 다른 나라들에 비하자면 한 뼘도 되지 않는 모나코 땅에 전용 경기장을 짓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몬테 카를로 도심의 도로를 통제하고 가설 시가지 서킷을 만들어 해결하고자 합니다.

초창기 모나코 그랑프리의 모습. 이때나 지금이나 모나코 서킷의 레이아웃은 대동소이합니다.

노게스는 이를 위해 인맥 찬스를 쓰는데, 그 인맥은 다름 아닌 모나코를 통치하던 그리말디 공작가문이었습니다. 루이 2세 대공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1929년, 제1회 모나코 그랑프리가 개최됩니다. 역시... 인맥의 힘은 그 시절에도 대단했죠(여담이지만 노게스는 훗날 아들을 루이 2세의 손녀와 결혼시키기까지 합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만들어진 모나코 서킷은 큰 성공을 거뒀고, F1 체제가 만들어진 1950년부터 꾸준히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며 F1의 대표 서킷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또 몬테 카를로 랠리와 더불어 모나코가 유럽 모터스포츠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에 크게 기여합니다.​

모나코 서킷의 레이아웃. 주변 호텔 발코니도 관중석으로 활용되는 게 이색적입니다.

모나코 서킷은 유서 깊은 도시 한가운데에 조성되는 시가지 서킷이기 때문에 긴 역사에도 레이아웃이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1929년과 현재의 레이아웃을 겹쳐봐도 대부분의 구간이 그대로죠. 2021년 현재, F1 레이아웃을 기준으로 총연장은 3.337km, 총 19개의 코너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라보 오트(T5), 그랜드 호텔 헤어핀(T6), 미라보 바스(T7)로 이어지는 구간. 해안절벽 시가지 특성 상 고저차가 심합니다.

최근 시가지 서킷이 여럿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모나코 서킷은 가속 구간이 짧고, 깊은 코너가 많으며, 노면이 나쁘고 노폭도 좁아 평균속도가 매우 낮고 추월이 어렵기로 악명높습니다. 그래서 레이서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서킷이고, 인디 500·르망 24시와 더불어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죠.

F1 서킷 중 가장 평균속도가 느린 그랜드 호텔 헤어핀. 극적인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관객들에게는 볼거리가 아주 많은 서킷입니다. 평균속도가 낮고 길이가 짧은 덕에 무려 78랩이나 돌아야 하고(F1 기준), 이는 질주하는 레이스카를 더 자주,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특히 드라마틱한 장면이 자주 연출되는 6번 코너, '그랜드 호텔 헤어핀'에서는 세계 모든 F1 서킷을 통틀어 가장 느린 45km/h 정도의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터널 구간과 더불어 모나코 서킷 최고의 뷰포인트로 유명합니다.​

아일톤 세나가 1992년 모나코 GP에서 나이젤 만셀과 경합하는 모습. 세나는 모나코에서 유독 강한 드라이버였습니다.

전설적인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는 이 모나코 서킷에서 6번이나 우승했는데요. 세나보다 훨씬 긴 커리어를 지닌 미하엘 슈마허(5회 우승)나 현역 최강으로 꼽히는 루이스 해밀턴(3회 우승)조차도 세나의 전적을 넘어서지 못했죠. 세나가 모나코에서 환상적인 배틀을 펼치는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현역 시절 세나의 별명 중 하나가 '미스터 모나코'였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독특한 분위기는 모나코를 가장 매력적인 레이스 무대로 만들어 줍니다.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 덕에 모나코 GP는 F1 캘린더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대회인데요. 여타 GP와 달리 타이틀 스폰서도 없이 개최하는 데다, 대회 기간에 벌어 들이는 관광 수입이 모나코 연간 수입의 17%나 될 정도입니다. 안 그래도 물가가 비싼 동네인데, 대회 기간에는 호텔은 물론 카페의 자릿세마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네요.

짝수 해에 개최되는 모나코 히스토릭 GP. 클래식 F1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꼭 가 보세요!

현재 모나코 서킷에서는 크게 3개의 이벤트만 열리고 있습니다(서포트 시리즈 제외). 유구한 역사의 F1 GP가 매년 개최되고, 홀수 해에는 포뮬러e가, 짝수 해에는 클래식 행사인 모나코 히스토릭 그랑프리(아이언맨 2에 나왔던 그 이벤트 레이스)가 추가로 열립니다. 비상설 시가지 서킷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달려볼 수 없는 서킷이죠. 뭐... 경기가 없을 때 코스를 따라 관광할 수는 있지만요.

모나코 서킷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가 동경하는 삶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아무나 달릴 수 없다는 희소성과 더불어, 초호화 호텔들 사이를 포뮬러 머신들이 내달리고 수백억 원대의 요트들이 지중해 바다 위에서 레이스를 지켜보는 모습까지... 어쩌면 이렇게 비현실적인 모나코 서킷의 풍경이 사람들이 동경하는 특별한 삶의 축소판이기에 90년 넘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서 아름다운 모나코 서킷을 직접 두 눈에 담아보고 싶네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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