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맞이한 주인에게 또'..파양 당해 낙담한 백구
무려 6년 간 보호소 생활을 하다 찾은 새가족에게 9개월 만에 파양 당해 다시 보호소로 온 강아지의 축 처진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시 소재 행동하는동물사랑(이하 행동사)이 운영하는 쉼터. 모자 달린 하늘색 조끼를 입은 말쑥한 백구 한 마리가 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백구는 차가 달려온 길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빠방 온다" 관계자의 떨리는 이 한 마디에 그제야 백구는 발걸음을 뗐다. 쉼터 견사 울타리 문이 열리고, 백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러나 익숙한 것처럼 맨 앞 견사를 찾아들어갔다.
흙이 깔린 견사 바닥에 차마 앉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이 녀석의 모습에 관계자들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난 3월 경기도 위례로 입양을 갔던 9살 백구 진희는 이렇게 다시 원래 머물던 쉼터로 왔다.
"빠방 온다"는 말은 쉼터에서 살 때 견사에 들어가기 전 늘 들었던 말이었다. 견사를 익숙하게 찾아들어간 것 역시 진희가 원래 머물던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진희는 행동사에서 2013년 4월 파주시 광탄면의 한 어린이집에서 구조된 이후 무려 6년 간 이 곳에서 생활했다. 행동사는 그동안 쉼터를 세 번 옮긴 끝에 현재 자리에 터를 잡았는데 진희는 그때마다 함께 짐을 쌌다. 행동사 관계자들 가운데서도 고참에 속할 만큼 긴 세월이었다.
2018년 10월 쉼터 시절의 진희. |
이곳에 봉사 온 이들 전부가 진희를 알았다. 진희 산책이 맨 처음 일로 맡겨졌기 때문이다. 진희가 똑똑하고 사회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3월 진희를 데려간 입양자 역시 봉사를 왔다가 진희 사연을 알게 되고 하면서 임시보호기간을 거쳐 입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던 입양자 가족은 실외배변 습관 때문에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시켜줘야 하고, 이웃들의 대형견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 등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9개월 만에 진희를 포기했다.
행동사 관계자는 "차에 타지 않으려 으르렁거리는 진희를 파양자 아버지가 간신히 태워줬다"며 "위례에서 파주로 오는 차 안에서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표정으로 숨죽여 왔다"고 말했다.
자기가 다시 어디로 가는 것인지 똑똑한 진희가 알았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이 관계자는 "죽기 전 쉼터에서 나가 집이란 곳에서 밥 먹어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입양을 보냈다"며 "이 상처를 도대체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행동사는 이 녀석이 받은 상처를 보듬어 주는 한편, 여전히 쉼터를 나가 집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새가족 찾는 일도 병행할 계획이다. (문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행동하는동물사랑)
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