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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허위진술에 놀아난 경찰…수사력 '도마 위'

사흘째 세워진 피해자 차량 무시하고, 엉뚱한 곳 수색

'덮치려 했다' 진술 의존한 채 유족에 상황 파악도 안해

그사이 시신 유기 후 도주…경찰 "제대로 했다" 변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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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얼굴이 공개된 고유정. (사진=고상현 기자)

경찰이 '고유정 사건' 초동 수사 당시 피해자 차량을 발견하고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심지어 고유정의 거짓 진술에 놀아난 정황이 1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피해자 유가족이 수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경찰에 찾아준 데 이어 경찰의 수사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범행 후 사흘째 세워진 피해자 차량 그냥 지나쳐

경찰이 고유정과 최초로 통화한 건 지난달 27일 오후 11시쯤이다. 그때는 이미 고유정이 전 남편을 제주시의 한 펜션에서 살해해 시신을 훼손한 후였다.


피해자 남동생이 이날 오후 8시쯤 112에 실종 신고를 한 이후 경찰이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고유정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해 전화 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고유정은 경찰에 "(피해자와) 아이 면접교섭으로 25일 만났다. (피해자가) 덮치려고 했는데 미수에 그치자 당일 밤 먼저 펜션을 나왔다"고 허위 진술했다.


문제는 이후 이어진 경찰의 수사다. 경찰이 피해자의 행적에 수상한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는데도 고유정 진술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경찰은 실종 신고가 이뤄진 27일 밤 제주시의 한 마트 주차장에 피해자의 모닝 차량이 범행 당일인 25일 이후 사흘째 그대로 세워져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25일 오전 고 씨는 이혼 후 2년 만에 아들(6)을 보여주겠다고 서귀포시의 한 테마파크로 피해자를 불러내고 마트에 피해자 차량을 세워두게 한 뒤 자신의 차량으로 범행 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고 씨의 말마따나 25일 밤 피해자가 홀로 펜션을 나왔으면 모닝 차량을 몰고 갈 법한데 차량이 그대로 세워져 있는 것이다.


수상하다고 생각해야 할 경찰은 피해자 차량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심지어 차량 블랙박스 영상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블랙박스 영상 확인은 실종신고 다음 날인 28일 오후가 돼서야 유가족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조작 문자에 엉뚱한 곳 수색하며 시간 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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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 서장. (사진=자료사진)

특히 경찰은 고 씨의 조작 문자로 엉뚱한 곳을 수색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경찰은 27일 밤부터 다음날 오후 1시까지 마지막으로 잡힌 피해자의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 위치인 제주시 이도1동을 중심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최종 기지국 신호가 이도1동으로 잡힌 건 고유정이 범죄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조작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고유정은 27일 오후 4시쯤 피해자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덮치려 한 거로) 고소하지 말아 달라'고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바 있다.


또 경찰은 고 씨의 진술만 의존한 채 신고자인 피해자 유가족으로부터 정확한 상황 파악도 하지 않았다.


고 씨의 허위 진술을 듣고 다음날인 28일 경찰은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형이) 사건에 휘말린 거 아느냐"고 물었고, 동생이 "모른다"고 하자 "이것 봐 몰라"고 말한 뒤 전화를 그냥 끊었다.


경찰이 당시 남동생에게 피해자가 덮치려고 했다는 고씨의 주장을 정확하게 전달했다면 남동생이 고유정의 평소 폭력 성향을 설명하며 사건이 조기에 형사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결국 경찰은 고유정이 훼손한 시신을 완도행 여객선에 싣고 도주한 다음 날인 29일 오후가 돼서야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마저도 유가족이 경찰에게 위치를 알려준 펜션 인근 주택 CCTV 영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뤄졌다.


해당 영상에는 고 씨가 25일 오후 피해자와 함께 펜션에 들어간 뒤 27일 홀로 빠져나오는 '수상한' 모습이 담겨 있다.


피해자가 펜션에서 나왔는지 여부 등 기본적인 내용조차 유족이 찾아준 CCTV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부실한 초동수사에도 변명으로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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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고유정이 범행 사흘 전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흉기 등을 구매하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사진=연합뉴스)

경찰이 허위진술에 놀아나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고유정은 유유히 제주를 빠져나와 제주항~완도항 항로, 경기도 김포시 아버지 소유의 집 인근 등에서 시신을 유기했다.


부실한 초동수사로 고유정이 '완벽범죄'를 꿈꾸며 여러 장소에 걸쳐 수일 동안 시신을 유기할 수 있었지만, 경찰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신들은 실종자 수색 매뉴얼에 따라 피해자의 휴대전화 최종 기지국 신호 위치를 중심으로 수색하는 등 수사를 제대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 서장은 9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당시엔 한정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최종 기지국 신호를 중심으로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29일이 돼서야 신고자가 고유정의 평소 폭력 성향 등을 얘기하고 유가족이 확인해 달라고 한 CCTV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되자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실종신고 이후 사전에 고유정의 수상한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한편 고유정(36‧여)은 지난달 25일 저녁 제주시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36)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여러 장소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유정이 사전에 시신 훼손과 유기 방법을 찾아보는 등 주도면밀하게 범죄를 계획한 정황이 수사가 진행되면서 확인되고 있다.


현재 경찰은 시신 수색에 나서고 있지만, 인천시의 한 재활용 업체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일부만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한 상태다.


이마저도 이미 고열로 소각 처리된 터라 피해자의 것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제주CBS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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