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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美·日 대사 대화, "전두환, 미치광이가 되고 있다"

광주에서 계엄군 집단발포가 벌어지고 3일 뒤인 1980년 5월 24일,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주한 일본대사에게 “전두환 등 신군부 핵심 세력들이 미쳐가고 있다”고 발언한 기록이 일본외무성 문서에서 발견됐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80년 5월 18일에는 주한 일본 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전국 비상계엄령의 이름을 빌린 쿠데타”라는 내용을 타전한 사실도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80년 5월~6월 일본외무성 문서에는 한국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있던 미국과 일본이 광주항쟁, 그리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움직임을 평가한 내용이 담긴 기록이 여럿 들어 있다. 미국 대사와 일본 대사가 만나 나눈 대화내용은 물론 일본이 각종 정보를 입수, 취합해 내린 결론 등을 볼 수 있는 자료로 향후 5·18진상규명 과정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록이다.


뉴스타파는 광주항쟁 40년을 맞아 일본정부를 상대로 1년 넘게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1980년 5월~6월 당시 일본외무성 문서를 ‘일본외무성 전두환파일’이란 제목으로 지난 12일부터 연속 보도하고 있다. 40년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소위 ‘ 5·18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해, “북한군의 움직임이 없다”고 기록된 1980년 5월 당시 미국과 일본의 정보보고서, ( https://newstapa.org/article/yNup7 참조) 북한군 개입설 국내 유포의 원조격 발언으로 보이는 80년 5월 24일 전두환의 발언 내용( https://newstapa.org/article/xhhoU 참조),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80년 5월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전에 훈타(JUNTA), 즉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 전두환을 의장에 취임시켜 권력 찬탈을 기도했던 사실( https://newstapa.org/article/eKyDI 참조) 등이 기록된 일본외무성 문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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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4일 오후 7시 20분.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미국 대사 비밀이야기’라는 제목의 정보보고를 타전했다. 마에다 당시 주한 일본대사가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나눈 대화내용이다. 마에다는 먼저 미국대사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고 기록했다.


● 미국대사는 모두 발언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고, 최근에는 그것이 정말이 아닐 것이라고 확인될 때까지는 믿을 수밖에 없는 기분이 되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 일본 외무성 문서 (1980년 5월 24일)


미국대사는 광주항쟁으로 터져나온 한국 국민의 힘도 언급했다.


● 현재 한국에는 3개의 권력이 있다. 제1은 형식적인 권력이지만 대통령 및 내각, 제2는 군부, 그리고 제3은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가진 국민이 존재하고 있다. 군부는 지금까지 국민의 파워를 무시해 온 경향이 있지만, 최근의 광주 사건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 일본 외무성 문서 (1980년 5월 24일)


일본대사는 이어 글라이스틴 미국대사가 전두환 세력을 평가한 내용도 본국에 보고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한마디로 “미쳐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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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입수한 ‘광주사태’라는 제목의 일본외무성 문서철에는 80년 5~6월 사이 일본 외교라인이 입수한 각종 한국 관련 정세가 기록돼 있다. 일본은 당시 한국 상황, 특히 광주 상황과 신군부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했다.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벌어진 5월 21일에는 자체 정보원을 직접 광주에 보냈다. 이 정보원들이 전해 온 광주상황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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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 주한 일본대사관은 미국대사 등에게서 얻은 정보를 수시로 본국에 보냈다. 그 중 상당수는 미국과 일본이 80년 5월 당시 한국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담은 내용이었다. 일본대사관 측은 당시 상황을 ‘명백한 전두환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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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당시 한국 상황을 사실상 전두환에 의한 군사쿠데타로 결론 내린 일본은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데도 열을 올렸다. 그리고 여러 정보를 취합해 내린 결론을 문서 곳곳에 기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이 파악한 핵심 인물은 3명으로 좁혀졌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정호용 특전사령관이었다.


● 이번 강경책(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중추는 전두환 중장과 OOO 참모차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노태우 소장, 차(규헌) 중장, 유(학성) 중장은 이 두 사람과 비교하면 약간은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이다. 이 중에서 유 중장은 처세에 뛰어난 인물이다. 이희성 참모총장은 형식적인 입장에 있다. 군 내부에 있어서 국군 보안사령관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다.

- 일본 외무성 문서 (80년 5월 20일)


● 군부 내에서는 역시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이 세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세 사람의 사고방식은 너무나도 닮아 있어, 말하자면 제1선의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방해되는 자는 힘으로 닥치는 대로 완전히 때려 부숴버린다.

- 일본 외무성 문서 (80년 5월 24일)


● 본 위원회(국보위)는 전두환 등 군수뇌가 국가 행정 전반을 기구적으로 장악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직이고, 사실상 한국 정부의 최고 의결 결정 기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한국의 정치는 지금부터 전두환 그룹에 의한 군정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본 위원회의 또 다른 그룹인 상임위원회가 계속해서 설치되고 상임위원장에 전두환, 상임위원에 노태우 및 정호용이 임명된 것은 한국 정치의 실권을 이 세 사람이 쥐고 있다...

- 일본 외무성 문서 (80년 5월 31일)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쿠데타 핵심 3인방”


전두환은 지난 40년간 광주학살은 물론, 군사쿠데타의 수괴 역할을 부정해 왔다. 하지만 일본외무성 문서를 보면 80년 5월 당시 일본과 미국은 당시 상황이 ‘전두환 쿠데타’라는 점을 이미 간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국보위 이전에 훈타(JUNTA), 즉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사실상 군부정권 수립을 기도하려 했다는 사실,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장들을 모아 놓고 광주진압 작전 계획을 직접 설명한 사실 등이 이런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가 입수, 공개한 일본 외무성 문서는 앞으로 진행될 5.18진상규명 활동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부터 전두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두환과 그 세력들에게 다시 역사적 책임을 묻기 위해 ‘전두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뉴스타파는 이번에 입수한 일본외무성 문서 등을 토대로 쿠데타 과정에서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일본 정부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엔 전두환을 어떻게 자국의 이익에 맞게 이용했는지도 분석해 보도할 예정이다.


뉴스타파 한상진 greenfish@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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