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우리에게 발레 '호이 랑'이 있습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세계 사람들 쉽게 공감 가능"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 안무
한아름 작가·서재형 연출, 스태프 쟁쟁
발레 '호이 랑' (사진 = 국립발레단·BAKi) |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으로 알려진 중국 여전사 화목란 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조선시대 홀아비와 살던 효녀로,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역을 맡는 '부랑'.
한아름 작가가 부랑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이 안무한 국립발레단 전막 발레 '호이 랑'은 잘 빠진 '엔터테인먼트적 발레'다.
지난 5월 전남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 초연과 같은 달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관객의 호응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국립발레단 제181회 정기공연으로 11월 6~10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서울 관객을 만난다.
'뮬란'을 연상케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국적 변형으로도 볼 수 있다. 빤한 이야기를 한국식으로 잘 포장해서 변주했다고? 그런 지레짐작은 사양한다.
한국적인 이야기지만 굳이 외형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적극 내세우지 않는다. 의상은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브람스, 홀스트, 차이콥스키 등 과감히 클래식 음악을 사용한 것이 보기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30일 예술의전당에서 "글로벌 세상에서 어느 나라 사람들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181회 정기공연 '호이 랑' 기자간담회에서 강수진 예술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10.30.chocrystal@newsis.com |
"동화 같은 작품이에요. 월트 디즈니 같은 느낌도 나죠. 새로운 도전이고 국립발레단이 한 스텝을 앞으로 나가는 것과도 같죠.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며 흡족해했다.
강 감독은 지난 23일 열린 세계적 발레 행사로 국립발레단이 참여한 '월드 발레 데이(World ballet day)'에서 세계 발레계가 공통된 정서를 품을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호이 랑'도 세계에서 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월드 발레 데이'는 세계 각국의 유명 발레단이 클래스와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으로 생중계하는 날을 가리킨다.
"5년째 돼 가는 프로젝트인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계 발레단의 클래스와 리허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볼 수 있어요. 세상이 달라진 거죠. 이런 분위기에서 '호이 랑'은 상상했던 것처럼 공감을 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한국적 정서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호이 랑'에는 이 정서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강 감독이 강효형을 안무가로 택한 이유다. 강효형의 안무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 내세워 '한국적인 발레' 운운하지 않는 세련된 태도다.
국악과 전통춤의 호흡법을 가미한 '요동치다'와 '빛을 가르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2018)의 '침향무' 등을 삽입한 '허난설헌-수월경화' 등에서도 한국적인 오리지낼리티를 풍겼으나, 오리엔털리즘이 배어있지는 않았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181회 정기공연 '호이 랑'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연출가 서재형, 한아름 작가, 강수진 예술감독, 안무 강효형, 의상및 소품을 맡은 루이자 스피나텔리 의상디자이너, 정승호 무대감독. 2019.10.30.chocrystal@newsis.com |
강 단장은 "효형 씨의 '요동치다'를 봤을 때 한국적인 특별함을 봤다"면서 "똑같이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를 뒤로 들어올리는 동작)를 해도 한국 사람은 다르다. 자기 나름대로 전달이 되는 것이에요. 이번 작품도 특별한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떤 장르의 공연이든 신작 초연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이번 국립발레단의 지역 초연 실험이 주목받았다. 강 감독은 "여수, 울산에서 공연하면서 수정의 기회도 있었고 지역 분들도 굉장히 좋아해서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호이랑'은 '랑' 역의 발레리나가 발레리노 이상으로 스태미나를 뽐내는 점도 특징이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는 저마다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 차별이 아니다. 태생적인 신체적 조건에 의한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20명가량의 발레리노 군무진에 둘러싸여 그들과 똑같은 스텝과 동작으로 춤을 추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선을 살려 리듬을 꾀하는 '호이 랑' 속 랑의 기술과 표현력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칼·활을 든 진취적 발레리나는 비상한다. 지난 5월 초연 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들인 박슬기, 신승원이 이를 감당했다. 이번에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박예은이 랑 역에 새로 가세했다.
강효형은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디베르티스망(내용과 상관없는 볼거리 위주의 춤)을 절제하는 대신 남성 군무의 스펙터클하고 박진감을 강조해 즐거움을 표현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181회 정기공연 '호이 랑' 기자간담회에서 안무를 맡은 강효형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10.30.chocrystal@newsis.com |
강효형은 "전쟁 신을 보면 굉장한 에너지가 넘쳐요. 무엇보다 '호이 랑'을 관통하는 지점은 스피드예요. 전체가 스피디하게 흘러가고 동시에 그 안에서 춤 또한 흘러가죠. 군무, 솔리스트 , 주역 너나할 것 없이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는 춤을 춥니다. 관객들이 숨을 참게 되고 탄성을 내뱉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랑'은 기존 발레계에 비하면 훨씬 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며 능동적인 것은 분명하다"면서 "제가 바라는 것은 이 작품을 발판으로 조금 더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가 나왔으면 해요. 아울러 더 많은 발레리나가 발레리노의 춤을 한 무대에서 출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여기에 그로테스크한 연출법으로 자신만의 인장이 분명했던 서재형 연출의 따듯한 시선이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한 작가와 공연계에서 유명한 부부 콤비인 서 연출은 "좋은 스토리가 있으니 관객들이 편하게 오래도록 보는 발레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무대 정승호, 의상·소품 루이자 스피나텔리 등 시각 스태프들도 쟁쟁하다.
'호이 랑'이라는 공연 제목에도 많은 고민이 묻어나 있다. 호이는 독일어권에서 '안녕'을 뜻하는 '호이(hoi)'에서 따왔다. '아자!' 등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는 단어다. 극의 밝은 기운을 전달하는데 제격이다.
한편 국립발레단은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잡다한컷' 등으로 잘 알려진 웹툰 작가인 '그림왕 양치기' 양경수와 협업을 해 '호이 랑'을 알린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