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지근? 담백·시원?" 맛본 소감 제각각, 제주 자리회
뉴트로 푸드
칙칙한 자리 색깔, 된장 듬뿍한 국물이라 비주얼은 '꽝'
제주 토박이 즐겼지면 관광객도 '홀랑 빠지는' 신기한 맛
'수눌음 문화' 한 양푼 가득 만들어 동네에 나눠야 제 맛
향수 음식으로 전해지는 물회, 이젠 '웰빙 음식' 반열에
'보목동-모슬포' 서로가 '원조·으뜸' 이라며 맛내기 경쟁
[제주=뉴시스] 자리돔. kjm@newsis.com |
제주도 사람들에겐 여름이 자리물회를 즐길 수 있는 제철이다. 보리가 익어서 수확을 하는 5월말부터 7월초까지 자리(자리돔)가 크고 탱탱하게 살이 붙는다.
자리회는 염서(炎暑)인 요즘까지 인기를 끌며 제주시내 자리물회로 유명한 식당은 언제나 만원이다. 이 더위에는 얼음과 함께 시원한 맛을 내는 자리회가 일종의 ‘보양식’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리물회’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자리회’라고 부른다.
우리의 여름 정취를 매미소리, 수박, 모깃불로 대변한다 했던가? 제주도의 여름 정취는 매미소리와 모깃불에다 수박을 자리회로 대신하면 된다.
제주도에서는 수박은 간혹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고, 여름 먹거리로 자리회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제주도 토박이로 살아온, 사향가(思鄕歌)를 부를 정도의 연배의 사람이라면 여기에 주저 없이 동의한다.
제주 사람들에게 자리회는 그저 끼니를 때우고 영양을 공급하는 식재료서의 기능적 의미보다 이런 ‘향수(鄕愁)의 맛’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낫다.
자리돔으로 만드는 음식은 자리물회, 자리구이, 자리젓 등으로 나뉜다. 이 셋은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식품이 우리의 손쉬운 먹 거리가 되기 오래 전, 제주에서 사랑받던 서민음식이었다.
특히 이 중 자리회는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발라내고 도마에서 이가 약한 어른도 씹을 수 있도록 채를 썰어 정성을 다해 만드는 음식이어서 제주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지천인 풍족한 사회에서는 ‘토속음식’으로 귀한 위치에 자리 매김 된다. 토속음식이란 향수(鄕愁)에다 ‘신토불이’ 웰빙을 플러스시킨 건강식을 일컫는다. 자리회는 서민은 물론 관광객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에 사랑받는 만인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제주=뉴시스] 보목동 자리물회(왼쪽)와 모슬포 자리물회. kjm@newsis.com |
자리는 작은 물고기라서 바다생물의 먹이사슬의 맨 끝에 있다. 맨 끝에 있다는 것은 독성물질인 수은(Hg)의 함량이 아주 낮다는 뜻이니, 요즘 바다오염이 무서운 시대에 비교적 안전한 먹거리라는 얘기도 된다.
상어와 고래 등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는 바다생물이 가장 수은함량이 높고 멸치 같은 끝에 있는 작은 어종들이 그 함량이 낮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자리는 풍부한 단백질은 물론 뼈째 먹을 수 있어 칼슘을 풍부하고, 기름도 많아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메가3’ 등 사람에게 좋은 영양을 완벽하게 갖췄다. ‘안티 에이징’ 음식으로 손색없다.
자리는 ‘한자리에 모여 산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
도미과에 속하는 자리돔은 연중 제주도 연안에서 잡히는 물고기다. 어떤 자료에는 자리돔은 5월부터 8월까지 잡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지금은 어획술이 발달해 가을과 겨울에도 잡힌다.
자리 물 회도 여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을에서 초겨울에도 만들어 먹는다. 무를 채로 썰어 달게 맛낸 이때의 자리물회도 아주 맛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회 하면 늦봄에서 여름 초입까지 먹는 것으로 여긴다.
자리라는 이름은 ‘한자리에 모여 산다’라고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이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재 이것이 다수설로 인정된다. 자리돔은 회류성 어종이 아니라 여(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에서 태어나면 그 자리에 정착한다. 정착성 어종으로 분류 할 수 있겠다.
[제주=뉴시스] 서귀포시 보목동 부두에서 아낙들이 자리돔을 자리횟감으로 만들기 위해 비늘을 벗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kjm@newsis.com |
자리는 오글오글 떼를 지어 몰려다니기 때문에 자리를 ‘잡는다’고 하지 않고 ‘뜬다’라고 한다지만, 보통 ‘자리를 잡으러 간다’고 말한다. 혹은 ‘자리 거리러 간다’고도 말하는데 이는 그물로 잡아 올린다는 말이다. ‘거리다’는 그물로 잡아 올린다는 제주방언이다.
이제 자리회 맛을 논해보자. 제주에 이미 보급된 자리회를 소개하는 책자에 자리회를 ‘베지근한 맛’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이 말은 고기국물처럼 기름기가 녹아든 국물 맛을 표현하는 제주 사투리로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 포화지방이 많은 동물성 식품의 요리에 표현한다. 자리회 맛을 베지근하다고 하는 표현은 좀 어색한 느낌이다.
자리물회를 처음 대하는 관광객들은 “뭐 이런 음식이 있느냐?”며 짐짓 놀란다. 자리돔의 칙칙한 색이며 메주된장을 듬뿍 넣어 만든 비주얼에 선뜻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는 맛의 첫 상견(相見)인데도 상미(嘗味)의 경계를 넘어 그 맛에 홀랑 빠져버리는 이도 허다하다.
제주 투어 중 이 맛을 안 일행의 꼬임에 무작정 동행했다가 먹지 못했다는 관광객도 있지만, 후에 들려오는 소식은 이런 사람도 이제는 제주도에 오면 우선 자리회를 찾는다고 한다. 추정치지만 자리회를 찾는 손님 중 30%는 관광객이다.
그럼 자리물회는 어떤 맛일까? 맛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느껴지지만 자리회를 쓴 글을 보면 무난한 게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라는 표현이다. 이런 맛 표현은 뭇 음식의 맛을 가늠해 볼 때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상투적 문장이어서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달리 비유해 보일 글귀가 떠오르질 않는다.
자리의 고장으로 서귀포시 보목동이나 모슬포에 가면 사람들이 말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리회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맛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모든 요리가 뭐 그렇겠지만 자리회는 더욱 그러하다.
[제주=뉴시스] 보목동 자리물회 상차림(왼쪽)과 모슬포 자리물회 상차림. kjm@newsis.com |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자리는 값도 쳐주지 않았지만 자리회는 사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지금이야 금값으로 치는 옥돔이나 은갈치 등속의 제주연안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팔아도 큰돈이 안됐고, 인심 좋은 이웃은 그저 말만 좋게 하면 얻어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어종도 그러한데, 자리는 지금은 엔진을 갖춘 통통선들이 나가 잡아오지만 이때는 장년에 이른 친구들 몇이 때로는 심심파적으로 ‘태우(통나무 몇 개를 엮어서 만든 떼배)’를 타고 가서도 잡아올 정도로 흔한 어종이었다.
게다가 제주도에는 제사떡도 동네를 돌리며 나눠먹는 ‘수눌음 문화’가 어지간한 터여서 자리를 잡아다 동네에 인심 쓰는 것은 다반사였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 자리회를 한 양푼어치 가득하게 만들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눠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명물이 되다 보니 자리돔 값이 치솟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 돈이 되다 보니 동네사람들이 모여 나눠먹는 풍속은 이젠 추억일 뿐이다.
보목동 자리회 vs 모슬포 자리회... 맛 자부심 경쟁도 치열
[제주=뉴시스]자리강회. kjm@newsis.com |
이제는 자리회를 놓고 ‘원조 다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른바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만드는 자리물회와 모슬포에서 만드는 자리물회의 ‘자부심’ 경쟁이다.
서귀포시 보목동은 매해 5월말 자리돔 축제를 하고 있는 자리의 본고장으로 자부한다. 모슬포는 원래 자리회는 모슬포가 원조였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제주도에 와서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느 쪽에 사는지를 알아맞히는 기막힌 ‘퀴즈’가 있다. “한라산이 어디서 보면 가장 웅장하게 보입니까”를 묻는 것이다, 십중팔구가 자신의 동네를 말하는데,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은 자신의 동네에서 봐야만 제격”이라는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를 아는 방법은 “어디 자리회가 가장 맛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대부분 과거 시 승격전의 서귀읍을 중심으로 한 동네의 사람들은 보목동 자리회라고 할 것이고. 모슬포를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 사람들은 모슬포라고 할 것이다.
보목동 자리물회는 옛날 이곳 사람들이 먹던 방식을 따라 양푼에 가득히 나온다. 쇠소깍과 서귀포올레를 잇는 11㎞의 올레6코스에 보목동 자리회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제주=뉴시스]한성훈 서귀포시 보목동 어촌계장. kjm@newsis.com |
한성훈 보목동 어촌계장은 “요즘엔 하루 최고 2000명이 이곳 자리회를 먹으려고 들어온다”며 “4월부터 7월, 가을철에는 11월부터 1월까지는 자리회를 찾는 지역주민과 관광객들로 이곳 도로가 차량이 막힐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목동 자리회는 자리돔의 뼈가 부드러워서 제주도 사람들은 물회하면 보목동 자리물회를 우선 꼽는다”고 자랑했다.
모슬포 자리물회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했더니 “모슬포 자리물회는 뼈가 거세 구이용으로 알맞다. 물회감으로는 아무래도 보목동 자리가 최고”라고 주장했다.
모슬포 자리물회는 깔끔하게 일인분씩 나온다. 모슬포 항구 주변에 촘촘이 모여있는 이곳 식당들은 자리물회는 물회대로 팔면서 자리물회에 구이, 강회에다, 국수 등을 포함한 모듬세트 등의 메뉴도 개발해 판다. 이곳은 자리회 전문식당만 20여곳이 된다.
이기용 모슬포어선주협회 회장은 “‘자리’라고 하면 모슬포가 모든 것의 원조다”라며 "이곳 식당이 모두 20여곳이 되는데, 4월에서 7월초까지 한 식당에 하루 최고 1000명이 오고 이 중 70%가 관광객이거나 모슬포 외의 지역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이 회장에게 보목동 자리회 평가를 요청했더니 ”보목동 자리는 작아서 뼈가 약하다. 모슬포사람들은 큰 자리돔을 좋아한다. 자리 어물전이 널려있는 제주시 전통시장에서도 모슬포자리가 많이 팔린다“고 자랑했다.
비늘·내장 제거 후 여러 가지 야채로 양념장을 만들고 국물 만들어
[제주=뉴시스]이기용 모슬포어선주협회 회장.kjm@newsis.com |
만드는 법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날것의 자리를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데는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자리가 비늘이 있는 물고기인데다, 물회로 만들어지기까지에는 손이 많이 가야한다. 그래서 “자리회 맛은 손 맛”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 방법을 ‘제주도와 제주대가 2015년 공동으로 펴낸 ’제주향토음식 20선‘에서 인용한다.
‘자리물회는 자리의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떼어 낸 후 깨끗이 씻은 다음 어슷썰기로 썰어서 오이 등의 야채와 된장, 고추장 등의 양념을 버무리고 물을 부우면 자리물회가 된다. 제주에서 물 회를 만드는 방법은 다른 지역하고는 차이가 있다. 동해안 지역의 물회는 식초와 설탕과 고추장으로 새콤달콤하게 맛을 내는데 비하여 제주에서는 된장을 풀어 맛을 내는데, 요즘에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더 많이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맛이 강해졌다. 기호에 따라 톡쏘는 매운 향과 상쾌하고 시원한 맛이 있는 향신료인 초피를 넣기도 하는데 제주에서는 '제피'라고 한다. 특히 된장과 '제피썹(초피입)'은 자리의 비린내 제거에 도움이 된다. 자리물회에 들어가는 식초는 옛날에는 쉰다리 식초로 맛을 냈으나 그 후 빙초산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빙초산 사용이 금지되어 일반 식초를 사용한다.’
여기서 쉰다리는 식은 밥을 발효해 만든 요구르트의 일종으로, 오래 놔두면 식초처럼 시큼하게 변하는 제주 토속음식이다.
자리는 비늘과 내장, 머리를 제거한 후 채로 썬다. 오이, 미나리, 배, 양파, 깻잎은 가는 채를 썰고 부추와 청양고추는 얇게 송송썬다. 다진마늘, 다진생강, 된장, 고추장, 설탕, 레몬즙, 참깨, 고춧가루, 후추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 후 분량의 물을 부어 자리물회 국물을 만든다. 썰어둔 자리와 야채를 그릇에 담은 후 준비해 둔 자리물회 국물을 붓는다.
처음 맛본 관광객들도 맛 들이면 다시 와 반드시 찾는다는 자리회는 이로써 완성된다.
[제주=뉴시스] 강정만 기자 = kj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