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밀려나지 않겠다"…십시일반 33억 건물 사버린 사람들
임대료 고통 협동조합 3곳 '해빗투게더' 이름 내걸고 공동투자
성산동서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떠오른 '시민자산화' 실험 주목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인근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0.9.2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다른 것보다 임대료가 문제'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서울의 주요 상권들에는 '임대' 딱지가 붙은 빈 건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득은 반 토막이 났지만 코로나19 전부터 오를 대로 오른 임대료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활동하던 협동조합 세 곳이 해빗투게더란 이름으로 뭉치게 된 것도 '임대료' 때문이다.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삼십육쩜육도씨 의료생활협동조합'라는 단체로 각자 활동하던 이들은 마포구 성산동에서 '시민자산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자산화는 공동체가 함께 자산을 소유해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공동체를 위해 재투자하는 개념이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해빗투게더로 뭉친 3개 협동조합은 치솟는 임대료로 마포구 인근에서만 여러 번 터전을 옮긴 공통된 경험이 있다.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는 2011년 5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우리동네 나무그늘 카페'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를 잡았던 나무그늘 카페는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주민들끼리 생활 강좌와 마을 축제도 열고, 부모들이 모여 공동 육아도 했다.
죽어있던 골목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5년 뒤 적자가 해결되며 정점에 올랐을 무렵, 건물주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90만원이었던 임대료를 보증금 1억에 월세 350만원까지 올려 불렀다.
나무그늘 카페는 5년 동안 추억을 쌓아온 골목에서 밀려나듯 나왔다. 그러면서 이 짓을 5년마다 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고 생각했다. 당시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 기한은 5년이었다. 박영민 나무그늘협동조합 이사는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며 "이때까지 함께했던 주민들과 함께 공간을 소유하고 꾸려보자는 고민에서 시민자산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건물을 통째로 구입하는 일이기 때문에 혼자 하기는 벅찼다. 치솟는 임대료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홍대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와 힘을 모았다. '3분 진료'가 아닌 '30분 진료'로 지역 주민들의 주치의가 되길 꿈꿨지만, 역시 임대료 때문에 홍대에서 염리동까지 밀려난 '삼십육쩜육도씨 의료생활협동조합'도 합세했다.
2017년초, 이들은 함께 소유한 건물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꿈꿔왔던 것을 마음껏 하겠다며 시민자산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3년 만인 지난 9월, 마포구 성산동에 33억원짜리 4층짜리 건물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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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투게더는 시민건물주가 돼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재건해보려 한다. 성산동 건물에는 '모두의 놀이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보통의 임대 방식은 임대료를 지불한 만큼 "내 땅이다"라며 운영권을 주장하고 공간별로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나 모두의 놀이터는 4층짜리 건물 어디든 접근할 수 있는 개방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해빗투게더는 지역 기반의 식당·문화시설·기업이 왁자지껄하게 토론하고 협업하는 방식을 목표하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소유하고 꾸려나간다는 가치에 부합하려면 더 많은 시민들의 합심이 필요하다. 건물을 구입하긴 했지만 조합원 출자금과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액수는 약 1억원으로 대부분의 사업비는 정부와 서울시로부터 융자를 받아 충당했다.
박 이사는 "수백명의 지역의 주체들이 확신을 갖고 참여해야 건드릴 수없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며 "속도가 느리더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함께 시민건물주가 되보고 싶다"고 말했다. 해빗투게더는 올해 연말쯤 2차 시민펀딩을 계획 중이다.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wh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