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스톱!!
임회록의 영화 사랑
<후쿠시마에서 부르는 자장가>(카나 토모코, 2014)
아직도, 여전히 원전이 문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동쪽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해안가로 밀려왔다. 쓰나미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삶의 터전을 삼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안전한 줄로만 믿었던 원자로까지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가동 40주년을 앞두고 있었던 후쿠시마의 원전 1호기의 원래 수명은 35년이었지만,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핑계로 수명연장을 했던 그 1호기가 폭발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폭발로 유출된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일본 전역을 뒤덮었다. 방사능을 피해 후쿠시마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했으며 후쿠시마 지역의 번호판을 달고 있으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것도 힘들었다. 이런 차별과 편견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일본을 넘어 주변국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만이 후쿠시마사태 이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탈원전을 선언 한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다.
원자로 폭발이라는 미증유의 재난 이후 일본에서는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후쿠시마의 참상을 재현함과 동시에 일본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담아내고 있다. 카나 토모코 감독의 <후쿠시마에서 부르는 자장가>도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영화의 원래 의도는 후쿠시마의 처참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카메라 앵글은 후쿠시마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 자신에게로 향하는 셀프다큐멘터리가 된다.
후쿠시마원전에서 260Km 떨어진 도쿄에 살고 있었던 카나 토모코 감독은 원전 폭발로 인한 피해를 후쿠시마 주민만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그녀는 대지진 이후 원전에 의지해 살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도 가해자”라는 생각으로 ‘후쿠시마’를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또 다른 쓰나미가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후쿠시마로 향한다. 감독은 출입금지 지역으로 분류된 곳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몸 곳곳에 방사능을 측정하는 것을 두고 마치 재난영화에 출연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무시무시한 광경이라고 덧붙인다. 그녀는 그나마 쓸만한 가재도구를 챙기려 잠시 집으로 돌아가는 피난민에 섞여 20Km 이내의 제한구역에 들어간다. 원전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원전에서 7Km 떨어진 근처에서 쓰나미가 휩쓸고 간 그곳의 널부러진 세간들과 인적 끊긴 거리에 배회하는 가축들의 처참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촬영을 하느라 방진 마스크가 흘러내린 것도 개의치 않았던 그녀는 후쿠시마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 온 직후 자신이 임신 4주차임을 알게 된다.
후쿠시마 지역민의 희생을 딛고, 원전이 생산한 전기의 편리함을 누렸다는 부채 의식에서 자신도 가해자라 생각했던 감독은 이제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부터 감독에게 ‘후쿠시마’ 사태는 도쿄에서 260Km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전에 감독은 카메라에 ‘후쿠시마’를 담아 그곳의 참상을 알리는 것으로 자신의 부채를 갚으려 했다면, 이제 감독은 카메라를 감독 자신에게 향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래서 영화의 대부분은 임신에서 출산까지 지난한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담아낸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은 엄마로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쿄도 더 이상 방사선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교토로 피난을 간다. 카나 토모코 감독에게 태어난 고향 도쿄를 떠난다는 것은 그곳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과의 인연, 관계 등의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이주를 결심한 것이다. 교토에서 보여주는 토모코 감독의 일상은 소소하다. 하루하루 불러오는 배를 보며 아이와 대면하기만을 기다리는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태아의 기형을 판별하는 양수검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 앞에서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낱낱이 보여준다. 임신이라는 뜻밖의 축복이 재앙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국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분노, 임신한 줄도 모르고 고농도의 방사선이 나오는 지역에 들어갔다는 죄책감 등의 감정들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토모코 감독의 고민과 감정들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분명 감독은 자신의 ‘출산기’를 카메라에 담았지만 감독이 왜 저런 고민을 해야 하고, 왜 저런 분노를 느끼고 죄책감을 느껴야하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등을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전에도 인류에게는 ‘스리마일’, ‘체르노빌’이라는 대 재앙을 몇 차례 경험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호들갑 몇 번에 곧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서서 다시 원전을 세웠다. 일본 또한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탈원전 논의를 하는 듯 했지만, 금세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력수급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다. <후쿠시마에서 부르는 자장가>를 보는 내내 ‘국민의 의무’만 강요하는 일본 정부가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어떻게 내팽겨치고 기만하는지를 보았다. 원전 폭발이라는 사태는 발생했으나 이에 대해 일본 정부도 도쿄전력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정부는 오히려 학생들의 방사능 연간 피폭량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 상향조정하여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연간 피폭량을 결정하는 것은 학자들이 아니라 정부가 정하는 것이라는 양심 있는 학자의 발언처럼 국가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을 뿐이다. ‘후쿠시마’사태 이후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는 탈핵(탈원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해인 2012년에는 도쿄에 20만 명이 운집해 일본정부에 항의를 하기도 했으며, 탈핵(탈원전)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언론의 조직적인 합작으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는 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카야 토모코 감독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여될지 미지수라고 말한다. 일 본정부는 정부의 노선과는 다른 목소리를 철저히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현재 한국에서는 25개의 원전이 상업가동 중이다. 원전의 설치 개수로는 미국(99개), 프랑스(58개), 일본(42개) 등에 비해 적을지 모르겠지만 단위 면적으로 따지면 단연 1위다. 아무리 인구가 많고 국토가 좁다는 핑계를 대더라도 너무나 많은 수의 원전이 한국의 해안에 빼곡히 세워져있다. 또한 현재 30개가 넘는 원전을 가동 중인 중국은 앞으로 엄청난 수의 원전을 그들의 동해 바닷가에(우리의 서해 바다 쪽) 계속 세울 계획이라 한다. 한반도에서 원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도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탈원전)을 선언했다. 설계 수명이 다된 원전은 더 이상 연장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원전 건설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은 원자력에 기대 공생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탈핵(탈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들은 탈핵(탈원전)의 시대가 되면 전기료가 엄청 오를 것이고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기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들은 ‘사고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라는 단서를 달고 최고의 효율적인 에너지는 여전히 원자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탈핵(탈원전)은 너무 이른 선언이며 좀 더 천천히 경제성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16년 9월, 진도 5.8로 시작된 경주지진은 9개월째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25개의 원전 중 원전 하나만 잘 못돼도 숨을 곳 하나 없는 나라에서 탈핵(탈원전)을 선언한 것이 시기상조일까. 지금 탈핵을 선언하더라도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시기상조라니.
별점 |
대중성 |
●●●◐○ 7 |
평균 |
최종 별점 |
예술성 |
●●●●○ 8 |
7.5 |
8.0 |
임회록(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