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님께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 선생님께
2016년 1월 22일은,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주변에 소식을 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벌써 그렇게 되었어?" 하며 놀랄지 모릅니다. 그만큼 선생님의 부재(不在)가 주는 허전함은 크지 않았던 탓이지요. 선생님은 '여기' 계시지 않지만, 선생님의 흔적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여기' 계시지 않지만, 대신 '거기' 계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만의 사정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뵙고 싶은 마음만큼은 어쩌질 못하여, 선생님께서 이곳에 계실 때 남기신 말씀을 한데 묶었습니다. 찾아보니, 그동안 선생님의 후배 문인들이나 기자, 문학평론가들이 선생님을 찾아뵙고 나눈 대화의 결과는 참 많았습니다. 그 많은 기록 중에서 저희는, 서강대 국문과 김승희 교수님,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이사님, 장석남 시인님, 최재봉 한겨레 기자님, 김연수 소설가님, 정이현 소설가님, 씨네21 김혜리 기자님, 신형철 평론가님, 박혜경 평론가님, 이렇게 총 9분의 대담을 추렸습니다. 여기에, 5주기에 부치는 이병률 시인님 글까지 보태어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선생님의 30년이 이곳에 고스란히 모였습니다. 1980년이면 『나목』으로 문단에 데뷔하신 지 정확히 10년이 지났을 무렵이고, 2010년이면 영면에 드시기 꼭 한 해 전입니다.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선생님은, 첫째 따님께서 이 대담집을 엮으며 하셨던 말씀처럼 '변함이 없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변화했지만 요란하지 않'(7쪽)은 모습이셨습니다.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저 역시 선생님을 여러 번 만나고 온 것에 다름이 아닐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6.25를 몸소 겪어내고 또 그 이후 가족을 잃는 상처와 아픔을 딛고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비롯하여 수많은 명작을 탄생해내셨음은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 엄숙하고 거룩함이야 거듭 말해 무엇할까요. 다만 이번 대담집을 통해, 선생님 소설의 깊숙한 속이야기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이었습니다. 다소 생소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 어휘들, 어디 하나 걸림 없이 매끈하게 읽히는 문장의 맛, 결핌갑으로부터 생겨난 문학적 상상력 등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는 선생님의 소설을 더욱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새로 개봉한 영화를 찾아서 보거나 손녀딸을 얼러 재우며, 또 선생님 댁 앞으로 무작정 찾아온 독자마저도 살뜰히 챙기고, 살구를 따다 잼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는 등 소소한 일상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장면을 포착하여 저희에게 들려주신 대담자 선생님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집니다.
선생님께서는 또한, 사람다움을 짓밟는 힘에 맞서 갖춰야 할 부끄러움과 오기, 여성으로서 느껴야 할 한계는 없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집안일과 소설 쓰기를 잘 병행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한 불편한 지적, 항상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는 태도, 세대를 넘나들며 모든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 등을 이야기하고 계셨습니다. 저희에게 선생님이라는 인생의 나침반이 계시다는 기쁨과,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감싸안아주시는 위로와 안도를 동시에 느낍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저는 동시대를 지나왔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역사를 선생님은 관통해오셨으며, 작금의 어지러운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 저는 선생님 없이 당도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당대를 똑똑히 바라보고 기록하고 작은 실바람을 만들어내셨던 것처럼, 저도 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에게 주어진 당대를 또 열심히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과 제가 떨어져 있는, '여기'와 '거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대담집의 제목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에서 말하는 '우리'는 대담을 진행하고 글을 쓰신 10명의 필진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우리 모두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생전에 종종 하셨던 "죽는 날까지 현역 작가로 남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소설은 곧 선생님이어서, 이 한마디가 이토록 가슴에 맺혀 있습니다. 선생님이 '거기'로 건너가신 지 5년이 되었지만, 감히 말씀드리건대 선생님은 영원한 현역 작가입니다. 선생님을 향해, 제가 가진 두 개의 엄지를 모두 치켜올리고 싶어요. 오늘만큼은요.
편집자 김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