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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간 길렀던 머리카락 25cm를 잘랐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김선혜씨(가명·25)는 10일 서울의 한 미용실에서 2년 간 곱게 기른 머리카락을 잘랐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은 어깨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짧아졌다. 김씨는 이 머리카락을 지퍼백에 넣어 우편 등기로 소아암 환자에게 보냈다.


김씨는 흰머리가 자라기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할 계획이다. 김씨는 "머리를 기르면 주변에서 짧게 자르라, 펌을 하라 말이 많았지만 이제는 '기부한다' 한 마디면 충분하다"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벗어나 편한 면이 있다"고 웃었다.


혜리·김원중도 잘랐다…SNS 타고 번지는 '모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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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혜씨(가명, 25)가 10일 강남구의 한 미용실에서 소아암 환우에게 기부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모습. / 사진 = 박수현 기자

김씨처럼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발 기부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고 있다. 소아암 환자를 위해 모발을 기증받고 있는 '어머나(어린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2만여명의 기증자 중 대다수가 20대~30대다.


SNS에서도 '소아암 모발기부'라는 해쉬태그(#)로 수천 건 이상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25cm이상의 머리카락을 길러야 기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여성이며, 머리카락을 기부한 뒤 어머나 운동본부가 발급하는 '모발 기부증서'를 올리기도 한다.


젊은층 사이에서 모발 기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데에는 유명인들이 잇따라 동참한 점 등이 꼽힌다. 지난해 12월에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김원중이 1년간 기른 머리카락을 기부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가수 혜리가 5년간 기른 머리를 짧게 잘랐다. 앞서 2018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김광현 선수가 모발 기부해 화제가 됐다.


김씨는 "인터넷에서 모발 기부를 우연히 접하고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됐다"며 "펌이나 염색을 해 아직은 동참하지 못하지만, 기부를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많이 있다"고 했다.


김씨의 설명대로 기부에 가장 좋은 머리카락은 펌이나 염색을 안한 생머리다. 기부된 모발 중에 실제 가발에 쓸 수 있는 모발이 1/10 정도이기 때문에, 모발 양이 많고 길이가 길수록 가발을 만들기가 용이하다.


다만 펌이나 염색을 한 머리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발로 만들 수 있다. 1명의 기증자가 보내는 모발이 보통 100~200가닥이므로 최소 100~200명 이상의 기증자가 모여야 2만가닥의 가발이 된다. 머리의 품질보다는 기증자가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관심 늘었지만 물량·기부처는 줄었다…'봉사점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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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를 위해 지퍼백에 넣은 김선혜씨(가명,25)의 머리카락. / 사진 = 박수현 기자

젊은층을 중심으로 모발 기부에 대한 관심은 늘었으나 전체 물량은 되레 줄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기부 물량 자체가 줄어든데다 모발 기증을 받는 일부 단체가 재정상의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기부 단체가 어머나 운동본부 1곳으로 줄어든 탓이다.


미흡한 제도 등도 한몫한다. 대학생들의 경우 1365 자원봉사·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VMS) 등이 인증하는 봉사점수가 취업·졸업요건 등에 반영되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발기부는 봉사점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발 기부를 계획 중인 대학생 A씨(28)는 "머리카락이 길면 샴푸·린스 사용량에서부터 건조까지 손이 많이 간다"며 "봉사점수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기부를 위한 1~2년의 노력에 비해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기부 단체 관계자는 "나일론 등 합성재료로 만들어진 공장 가발에 비해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은 관리도 편하고 건강을 해치는 요소도 적다"며 "가발 물량이 줄어들면 중국 등 해외에서 머리카락을 수입해 소아암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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