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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 길냥이의 외침... "누굴 위한 중성화냥"

개人주의

[편집자주] 100여년 전 영국의 사상가 헨리 솔트는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해야 우리도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주 금요일, 무심코 지나쳤던 동물의 목소리를 들어 봅니다.

10년간 6만5000마리 중성화…가시적 성과 이면에는 해서는 안될 행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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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임종철 디자인기자

집 근처 골목 어귀를 주름 잡는 터줏대감이 있다. '골목대장'이긴 한데 사람은 아니다. 반려동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생동물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바로 '도둑'으로 손가락질 받아온 길고양이다. 요즘은 '길냥이'(길+고양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린다.


뮤지컬 '캣츠'의 고양이들처럼, 길고양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이다. 하지만 사람과 마주친 뒤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거리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늘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길고양이의 눈동자에는 다급함과 불안이 섞여 있다.


길고양이는 사람과 도시가 빚은 그림자 중 하나다. 사람과 길고양이는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공유하지만 둘의 공존이 가능한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뚜렷한 답은 없었다. '눈에 띄지 않게 없애자'는 식의 안락사는 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지도 못한 채 비용 문제만 초래했다.


'TNR'(Trap-Neuter-Return)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고양이를 생명체로 존중하기 위해 사람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그럴싸한 TNR 사업의 이면을 보면 길고양이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부족하다.

'TNR'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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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는 사람에게 유기되거나, 유기된 고양이들의 후손이다. 길들여질 기회가 없어 야생동물에 가깝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서울시의 길고양이 서식현황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만 무려 13만9000여마리가 거리를 배회 중이다. 대다수가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생존 투쟁을 한다.


투쟁은 종종 사람과의 갈등을 낳는다. 스프레잉(영역표시)을 남기거나 쓰레기 봉투를 뜯는 일이 생기기 때문. 영역다툼·짝짓기로 인한 소음 때문에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2017년 시 동물관련 민원 5만402건 중 52%(2만6328건)가 길고양이 민원이었다. 이 때문에 길고양이를 포획해 안락사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양이 개체 수 증가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연구에 따르면 암컷 길고양이는 연평균 4.25마리를 출산한다. 인간의 개입이 없을 경우 1마리의 고양이는 12년 뒤 3200마리로 불어날 수 있다. 고양이를 잡아봤자, 잡힌 고양이의 영역은 다른 고양이가 유입돼 채워진다. 결국 안락사로 매년 수십만 마리의 고양이를 비인도적으로 살상하는 일만 반복될 뿐, 길고양이 문제는 그대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TNR이다. TNR은 '포획'(Trap)-'중성화'(Neuter)-'제자리 방사'(Return)의 줄임말이다. 안락사 등 살상 없이 길고양이의 번식 능력을 조절을 통해 인도적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실제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연구팀이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간 TNR 효과를 관찰한 결과 약 66%의 고양이 수가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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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사진= 머니투데이DB

서울시 TNR 사업 10년

이같은 효과에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TNR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먼저 사업을 시작한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2008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벌써 10년이 넘었다. 21개 자치구에서 길고양이 민원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5000~8000마리의 길고양이를 중성화수술 하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 TNR 사업을 하는 지자체는 농림축산식품부의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 요령' 고시를 따른다. △2kg 이상의 개체만 포획 △포획 과정에서 발판식 통 덫 등 길고양이와 포획자 모두에게 안전한 포획 틀 사용 △포획 48시간 이내 수술 실시 △수컷은 하루, 암컷은 3일 간 보호 및 예방접종 실시 △중성화 수술 개체임을 알 수 있게 왼쪽 귀 1㎝ 제거 △포획 장소에 방사 등이다.


TNR 사업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월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총 6만4670마리의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이 결과 2013년 25만마리에 달하던 시내 길고양이 수가 차츰 줄어들어 2015년 20만마리, 2017년 13만9000마리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효과를 바탕으로 서울시는 올해 약 8억6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TNR 사업을 확대했다. '길고양이 돌봄기준' 등을 마련하고 민관협력 군집별 집중 중성화사업 등을 통해 올해는 총 9700여마리의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목표로 잡았다.

880g일 뿐인데

가시적인 성과는 분명하지만, TNR 사업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효율성과 행정적 편의에 가려져 TNR의 원래 취지인 '인도주의'적 측면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 중성화 수술을 해서는 안되는 어리거나 다친 길고양이까지 무분별하게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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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A구에서 활동하는 캣맘이 구조한 길고양이 기적이의 모습(위) 구조 당시 측정된 몸무게는 880g에 불과하지만 동물관리시스템에는 2.45kg으로 공고돼 있다. /사진= 캣맘 도야고야

지난달 29일 캣맘(길고양히 보호 활동가)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TNR 규정 위반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서울에서 수년 째 길고양이 구조·보호 활동을 하고 있는 이모씨는 한 동네에서 작은 고양이(기적이)를 발견해 구조했다. 기적이의 체중은 고작 880g에 불과했다. 몸무게를 보면 아직 중성화수술을 해서는 안되는 개체다. 하지만 기적이의 한 쪽 귀는 잘려 있었다. 누군가가 중성화수술을 한 것이다.


이씨는 TNR 진행상황을 살필 수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관리시스템(APMS)에서 해당 고양이를 검색했고 포획 공고에 2.45㎏으로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몸무게를 조작한 TNR 규정 위반이었다. 이씨는 다음날 기적이를 수술한 병원이 또 다른 작은 고양이의 몸무게를 2.33㎏으로 올린 것을 보고 의심이 들어 동물병원을 찾았다. 이 곳에서 발견된 고양이의 체중 역시 공고된 것과 달리 1.1㎏에 불과했다.


길고양이에 대한 해당 병원의 비인도적인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씨에 따르면 병원은 중증구내염을 앓고 있는 고양이(쁘니)를 수술하기도 했다. 구내염은 고양이에게 특히 위험한 질병인데 이 상태에서 배를 가르는 중성화 수술을 무리하게 하면 고양이에게 위험하다. 또 다른 길고양이는 제대로 수술 3일 만에 수술 부위가 터져 고름이 흘러 내렸다. 해당 고양이는 구조 후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돈벌이로 변질, 시스템 갖춰야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TNR 사업이 본래 취지와 달리 돈벌이로 전락하며 이같은 일이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동네고양이서울연대에서 활동하는 캣맘 이씨는 "사업에 참여하는 동물병원들 중 운영이 어려워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많다보니 규정 위반을 서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TNR 지정 병원은 길고양이를 중성화수술 할 경우 자치구 사업 예산에 맞춰 10만~15만원가량의 보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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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80g의 몸무게에도 강제적으로 중성화수술을 당해 생명이 위태로웠던 고양이 기적이. 활동가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사진= 캣맘 도야고야

실제 TNR 사업에 참여한 지정병원들의 수익을 목적으로 한 규정 위반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8월 부산시는 중성화수술 한 길고양이에게 일반항생제가 아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부작용 위험이 있는 '돼지항생제'를 사용한 병원을 적발했다. 지난 5월에는 집고양이를 길고양이인 것처럼 꾸며 중성화수술을 하고 지원금을 받은 혐의를 받는 수의사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양적인 성과보다 질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씨는 "자치구 대부분이 TNR사업을 지역경제과에서 다루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지고 인력도 부족해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비도덕적인 수의사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사업 자체를 위탁이 아닌 당국의 직영운영으로 바꾸고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없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당국도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가 불거진 자치구 관계자는 "사건 적발 후 해당 병원의 계약해지 및 사업보증금 환수 등 절차를 진행하고 향후 TNR사업 등 공공기관 입찰도 금지 조치했다"며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중성화 민원을 전적으로 구청에서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TNR 사업을 총괄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캣맘 등 시민의견을 적극 수렴해 향후 TNR 사업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유승목 기자의 '추신'


기사에 소개된 880g 의 여린 몸에도 중성화수술을 당한 '기적이'는 기적처럼 아픔을 견뎌내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중증구내염을 앓는 중에 강제적으로 중성화수술을 당한 고양이 '쁘니'도 활동가들의 보살핌으로 지금은 원래 살던 곳에 방사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기적이와 쁘니 같은 '길냥이' 외에도 우리가 지켜봐야 할 동물은 없을까요? 알리고 싶은 동물의 이야기를 댓글이나 메일로 알려주세요. 더 좋은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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