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도 말린… '123층 롯데타워' 창문을 닦았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146층 유리창 292개 닦기, 두려움 속 숨구멍 턱턱…체력과 정신력에, 기술까지 갖춘 '자긍심'
덥고 무섭고 힘들고 어렵고, 초고층 건물 창문 닦기에 도전한 날. 땀을 비오듯 흘렸지만, 샤워고 뭐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사진=작업자 형님 |
"밑에 보지 마세요. 그럼 일 못해요."
30년 내공이 실린 묵직한 조언이 들려왔다. 흔들리던 동공이 그 말에 애써 멈췄다. 그곳은 73층, 높이 325미터(m) 지점이었다. 내 몸을 실은 곤돌라가 고공에 서서히 뛰어들었다. 눈높이서 마주한 하늘은 상상 이상으로 더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무릎이 굽혀졌고, 두 손에 닿은 무언가라도 꼭 잡아야 했다.
곤돌라는 건물 외벽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탑승하기 전 들었던 "안전하니 걱정 말라"는 말만 되새김질했다. 그리고는 '덜컹', 갑작스레 곤돌라가 툭 하고 한 뼘 정도 하강했다. "와아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다시 올려달라(살려달라) 하고 싶었다.
그걸 본 작업자 형님이 '피식'하고 웃었다. 검게 그을린 주름이 멋들어지게 깊어졌다. "일하러 왔다가, 하루 만에 도망간 사람도 많아요. 다음 날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니까? 하하."
생각해보면, 유리창이 저절로 깨끗한 게 아녔다. 누군가 손길이 다 필요한 거였다./사진=두 발을 떨고 있는 남형도 기자 |
롯데타워(123층, 555m)에서 창문을 닦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최고로, 전 세계에선 다섯 번째로 높단 그곳에. 창문 개수만 4만2000장이라는데, 누군가는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들 손사래 칠 때 기꺼이 닦겠다며 줄에 매달린, 그 '누군가'의 삶이 몹시 궁금했었다. 매일 목숨을 거는 일은 아무래도 흔치 않으니까.
체헐리즘 2년만에, 상사가 하지 말라고 말리는 체험은 처음이었다./사진=더 무서워진 남기자 |
그러니 실은 상사도 말린 체험이었다. 2년 넘게 기획하며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남형도씨, 아무래도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는 그리 만류했다. 난 완강히 하겠다고,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속으론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위험한 걸 누군가는 매일 하고 있으니까, 이야길 더 듣고 싶어요.' 편집국장까지 보고한 뒤에야 겨우 허락을 맡았다.
'음주 측정기'부터 불었다
참 높다, 아침에 바라본 롯데타워 전경./사진=남형도 기자 |
오전 6시50분에 롯데타워로 갔다. 밑에서 꼭대기까지 바라보려니 고갤 한참 젖혀야 했다. '참 높긴 높다'고 생각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지하로 가서 '특전사 출신'이라는 고운 롯데물산 담당을 만났다. 체격이 남다른 그가 내게 겁을 줬다. 우연히 곤돌라를 한 번 타봤는데, 진짜 무서웠다고 했다. "아, 정말요?"하며 남 일처럼 웃었지만, 내가 곧 겪을 일이었다. 웃음기가 이내 가셨다.
잠시 뒤 작업자 네 명이 출근했다. '이들이구나' 싶어 다시 보게 됐다. 전국은 물론, 해외 초고층 건물까지 다 누빈다고 했다. 안전 교육을 함께 받는데, 특이한 점은 '음주 측정기'로 한 명씩 체크를 했다. 술 마시고 작업하면 위험하니, 애초에 차단하는 거였다. 다행히 걸리는 이가 없었다(나 포함).
원래 아침엔 입맛이 없어 안 먹지만, 작업이 힘드니 꼭 챙겨 먹으라 했다. 막상 먹으니 모자랐다./사진=배고픈 남형도 기자 |
그리고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원래 안 먹는다고 고사하니, 작업자 중 누군가가 "밥 안 먹고 하면 힘들어요. 뭐라도 먹어둬요"라고 일렀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집었다. 막상 먹으니 맛났다. 단숨에 해치운 뒤 다른 도시락까지 두리번거렸다(돼지 본능).
"대변과 소변 다 봐요, 못 올라오니까"
저, 집에 가도 되나요?/사진=동공 흔들리는 남기자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특수부대 출신 고운 담당 |
먹었으니 일할 차례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3층에 도착했다. 거기엔 BMU(빌딩 무슨...유닛)라 하는 '곤돌라'가 있었다. 순전히 외벽 청소를 위해 설치된 장비란다. 123층 최상부에 3대, 73층에 4대가 있다. 이걸 타고 외벽을 따라 내려가며 창문을 닦는 것이다.
뭣보다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안전모를 쓰고, 엑스(X)자 모양의 가슴 줄을 착용했다. 작업 도중 추락 위험이 있으니, 그대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준단 거였다. 그게 '생명 줄'이었다. 단단히 채운 뒤 줄을 당겨 다시 확인했다.
마지막으론 '대·소변'을 미리 해결해야 했다. 작업자는 "한 번 내려가면, 끝난 뒤에야 올라오니 볼일을 봐둬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방광 및 대장이 반응했다. 없는 것까지 짜내어 다 깔끔하게 배출했다. 그러고도 '중간에 마려우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들었다. 괄약근에 최후의 자극까지 가했다.
커다란 73층 창문이 마침내 열리고, 탑승할 곤돌라가 준비됐다. 통상 한 대당 두 명이 타는데, 제한 무게가 250kg이었다. 이를 초과하면 아예 작동이 멈춘단다. 나와 작업자 두 명이 함께 타기로 했다. 둘은 한 살 터울 형제인데, 경력이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베테랑'이었다. 편의상 형님과 동생이라 일컫도록 하겠다.
곤돌라에 오르니 형님이 "창문 매일 닦으면, 살이 저절로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전 배가 많이 나와서 직업을 바꿔야겠네요"라고 농담하듯 답했다. 그러나 그게 농담이 아니란 걸, 1시간도 안 되어 알게 됐다.
조개 가루로 창문 닦기, 손끝에서 펼쳐진 고도의 '기술'
밑은 보지 말라고 했는데./사진=남형도 기자 |
오전 작업은 73층부터 1층까지, 한 층에 창문 두 장씩 총 146개를 닦는 거였다.
셋을 태운 곤돌라는 천천히 옮겨져 외벽에 붙었다. 곤돌라 앞쪽엔 길고 둥근 바퀴가 붙어 있었다. 창문을 타고 내려가며 작업할 수 있었다.
막연히 창문을 벅벅 닦으면 되려니 했는데, 그게 아녔다. '고도의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거였다.
이유는 이랬다. 흰 천에 조개 빻은 가루를 묻혀 닦는데(물청소는 하늘에서 사방에 튀기 때문에 못함), 힘 조절하는 게 보통 일이 아녔다. 분명 닦았는데, 흰 가루가 사방에 다시 묻어났다. 작업자 형님은 내게 "너무 힘을 줘도 안 되고, 힘을 덜 줘도 안 된다"고 했다. 적당한 힘이 요령인데, 한 1년은 익혀야 감이 생긴단다. 여러 번 해봐도 잘 안 됐다.
적당한 힘, 손바닥 전체를 이용한 창문 닦기, 그게 다 전문 기술이었다. 힘을 계속해서 쓰니 팔이 빠질 것 같았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슴에 부착된 카메라 |
별수 없이, 아무것도 안 묻은 천으로 창문을 닦았다. 폐 끼치지 않으려 열심히 닦는데 금세 오른쪽 어깨가 저려왔다. 형님이 또 조언해줬다. "힘을 주지 말고,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 살며시 닦아요. 그래야 빠지는 부분도 없고, 편해요." 시범을 보여주는 그의 손길은 창문을 어루만지듯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역시 잘 안 되었다.
죽을 듯 힘든데, 무섭다는 것
전문가는 전문가, 마치 스케이트날이 빙판을 가르듯 부드럽게 창문을 닦아갔다. 얼마나 깨끗해지던지./사진=남형도 기자 |
건물을 둘러싼 창문들은 숨 막힐 듯 참 거대했다. 한 층에 고작 2개인데, 곤돌라를 두 번 멈춰야 다 닦을 수 있었다. 창문마다 뿌연 흙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왼쪽은 형님이, 오른쪽은 동생이, 난 중간 부분을 바삐 닦아냈다. 순식간에 천이 새까매졌다.
두 층 정도(창문 4개) 닦으니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별수 없이 팔을 바꿨다. 그러다 아프면 다시 또 바꿨다. 안전모 사이에선, 달궈진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 닦으면 곤돌라가 다시 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면 다시 같은 작업의 반복이었다.
특히 내려갈수록 창문이 커져서, 곤돌라를 왼쪽으로 민 뒤 닦아야 했다. 형님이 밀어달라고 하면, 나와 동생이 함께 힘을 줘서 곤돌라를 움직였다. 갸우뚱한 상태에서, 형님이 왼쪽 유리창을 마저 닦았다. 다시 원위치할 땐 몸이 좌우로 흔들려 아찔했다. 두려울 틈도 없이, 다시 더러운 창문이 또 등장했다.
얼마나 남았나 보려고 밑을 봤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같은 창문이 수없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무섭고 아득했다.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곤돌라를 잡았다. "밑에 보지 마요." 아까 들었던 이야기가, 또 들려왔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며, 봤던 걸 잊으려 했다.
떨어지는 상상은 발밑을 붕 뜨게 했고,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창문을 닦느라 숨구멍이 턱턱 막혔다. 3분의 1 정도 마친 뒤 처음 쉬었다. 물 한 통을 벌컥벌컥 순식간에 비웠다. 동생은 곤돌라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 뒤돌아 전경을 보며 잠시 숨을 돌렸다. '저 많은 건물에 저렇게 많은 창문이 붙어 있구나', 그게 새삼 눈에 들어왔다.
40분간 이어진 '고공 인터뷰'
끝이 보인다. 가운데가 남기자./사진=이상봉 기자 |
두 베테랑의 노련한 손길과 이를 쫓는 내 몸짓이 유리창에 반복해 비추었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앞에서 움직이는 게 내 손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낄 무렵, 마침내 1층에 다다랐다. 곤돌라에 처음 오를 때만 해도 "비좁은데 세 명이 어떻게 타느냐"며 툴툴대던 동생은 "셋이 하니 둘보다 낫다"고 했다. 피해 끼치진 않았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이 나갔다. 형님은 "이야기하면서 작업하니, 빨리 내려왔다"며 빙그레 웃었다.
다시 73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40분, 그보다 더 속도를 내면 위험하다 했다. 맘을 편히 먹고, 탁 트인 전망에 눈을 돌렸다. 속이 뻥 뚫렸다. 나른하고 후련한 기분이었다. 이를 벗 삼아, 형제 이야길 잠시 들었다.
창문 닦는 일은 형님이 먼저 시작했다. 요리에도 재주가 많아 한때 꿈을 꿨으나, 시험에 떨어진 걸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다. 동생은 그런 형님을 따라 이 일을 택했단다. "형님이 이거 안 했으면, 나도 딴 거했지." 그렇게 툭하면 툴툴거렸다. 이에 형님은 "야, 넌 나 아니었음, 어디 가서 밥 먹고 살겠냐"며 응수했다. 이것만 끝나면 같이 안 한다고, 갈 테면 가라고 하며 형제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텼다.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껴 있던 난 봤다. 서로 조금이나마 덜 닦으라고, 투박하게나마 배려하는 손길을.
73층의 '비밀 요강'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작업자와 남기자. 무사하단 말이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사진=이상봉 기자 |
그리 73층에 다시 올라왔다. 곤돌라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밟을 수 있는 땅이구나 싶어, 비로소 안도했다. 바깥에 나오자마자 몸이 널브러졌다. 흔들리는 장비에 계속 서 있었던 탓인지, 다리가 잠시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덧 정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배는 몹시 고픈데 입맛도 별로 없었다. 통상 어디에 안 가고, 그 자리에서 간단히 해결한다고 했다. 두 형제는 빵을 먹었다. 나도 아침에 사둔 크림빵에 초코 우유를 먹었다(초딩 입맛, 또 먹고 싶다).
점심도 잘 먹히지 않아서, 빵만 간단히 먹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그리고는 창문 쪽을 등진 채 쉬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의 힘을 쭉 뺐다. 어쩐지 저절로 그리되었다.
홍보팀 고운 담당이 "오후에도 내려가시겠느냐"고 물었다. 당차게 "당연히 이분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야지요"라 즉답했다. 속으론 솔직히 망설였다. '힘들다, 그만 내려가고 싶다'는 게 속마음이었다. 몸은 거부하고, 마음은 망설이고, 머리는 가라고 채찍질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제대로 알고 싶었다.
비밀요강에 쉬이이이./사진=시원한 남형도 기자 |
다시 곤돌라에 오르기 전, 형님이 날 '비밀스런 장소'로 데려갔다. 자신들만 아는 곳이라 했다. 그곳엔 큰 플라스틱 물통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서 소변 보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해줬다. 이른바 '요강' 같은 거였다. 다른 층에 안 가도 되니 어찌나 편하던지. 노란 줄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집중해 조준했다(TMI). 그러고 있자니, 형님이 저쪽에서 "기자님, 완전히 작업자 다 됐다"며 웃었다. 그게 좋아 나도 따라 웃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아주 '땡볕'이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땡볕. 검은 차양막도 소용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사진=남형도 기자 |
오후엔, 다른 방향에서 7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며 창문을 닦는다고 했다.
'땡볕'과의 극심한 싸움이 시작됐다. 등 뒤에 태양을 이고, 뻘뻘 일하는 것 같았다. 강한 햇빛은 건물 유리창에 반사돼 앞쪽으로도 쑤셔댔다. 온몸에 열기가 이글이글 올랐다. 곤돌라가 계속 움직이니 땀 닦을 새도 없었다.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속도로 해야 작업을 마칠 수 있는지.
게다가 체력이 오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시작한 지 10분 만에, 전신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쉬며 충전됐다 여겼는데, 순식간에 방전된 느낌이랄까. 속으로 '왜 이러지, 왜 이렇게 힘들지'하며 버텼다. 같은 창문은 끝없이 반복되고, 찜통더위에 갇히니 오히려 무서운 건 덜했다. 곤돌라가 흔들리고, 쿵쿵거리며 부딪혀도 그러려니 하게 됐다.
물 한 통을 원샷, 그만큼 덥고 목이 탔다./사진=목에 때낀 남기자 |
양손을 바꿔가며 천을 잡다, 손힘이 풀려 놓칠 뻔했다. 형님의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심해요, 여기서 뭐 하나 떨어지면 대형 사고 납니다." 아무렴, 중력 가속도는 9.8㎨이란 걸 과학 수업 때 배웠으니까요.
작고 조마조마한 공간에서, 말수가 급격히 줄어갔다. 셋 다 그랬다. 빨리 끝나버리라는 듯 창문만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형님에게 "제가 원래 이렇게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 안 나올 만큼 힘들다"고 했다. 그런 내게 그는, 껄껄 웃었다. 어쩐지 알아주는 이가 생겨 썩 좋다는 듯한 미소였다.
무사히 하루를 보낸 '대가'
작업을 마치고 꾀죄죄해진 팔. 그러나 그만큼, 창문은 깨끗해져서 기분 좋았다./사진=남형도 기자 |
어쨌거나 1층에 도달했다. 총 146층에 걸쳐, 292개의 유리창을 닦았다. "아, 끝났다!"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에겐 초고층이 아닌 가장 낮은 곳이, "야호"하고 싶은 기분이 들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다시 73층을 향해 곤돌라를 움직였다. 그제야 조심스레 물었다. "이렇게 해서 하루에 받는 돈이 얼마인가요?"라고. 한 번 내려올 때 35만원, 두 번 내려왔으니 70만원이라 했다. 롯데타워라 그 정도 금액이고, 대다수는 그에 못 미친다고.
온전히 함께 일했기에, 그게 많은지 적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내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주저 없이 든 생각이 이랬다. '그냥 그 돈 안 받고, 이렇게 안 하고 싶다.' 그러니까 절대, 많이 받는 게 아녔다.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곤돌라 밧줄 하나에 삶을 지탱하는 것이기에.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건물들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위험한 적 없었느냐고. 형님이 답했다. "여기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추락해 죽은 동료들도 있었지요." 그도 역시 밧줄이 빙빙 꼬여 찰나의 순간 떨어질 뻔 했단다. 그 다음 말이 서늘했다. "우린 작은 사고가 없어요. 죽거나, 크게 다치거나 둘 중 하나라서."
화제를 돌리려는 듯, 형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래도, 오늘도 무사히 끝났네요"라고. 하루를 보낸 이의 무사하다는 말이, 그리 가깝게 와닿은 건 처음이었다.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면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정말 소수만 할 수 있는 일이라 확신해요. 해보니 정말 그랬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
그리 고생하는 이들을, 맘 아프게 하는 건 이런 것들이다. 형님과 동생이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이른바 초고층에서의 일갈이랄까. 기분이 묘하게 시원했다.
아파트 단지서 유리창을 닦으면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 번은 "왜 창문에 흠집을 냈느냐"며 한 주민이 난리를 치며 항의했다. 억울했다. 부드러운 천으로 닦는 거라, 작업자가 흠집낸 게 아녔다. 더러워져 있던 게 깨끗해지니 비로소 드러난 거라고. 그러나 관리사무소도 그 주민을 막지 못했다.
사실상 회사에 소속된 직원처럼 일하지만, 작업자들은 프리랜서 개념이란다. 건물-중간업체-작업자, 이런 방식으로 계약하는 거다. 그런데 월급을 제때 안 주고 떼먹는 중간업체들이 많다. 4~5개월 늦는 건 예삿일이고, 아예 안 주는 경우까지. 그런데도 일이 끊길까 싶어, 제대로 된 항의도 못 했다. 형님은 "아마 30년 동안 못 받은 돈만 수천만원은 될 것"이라고 했다. 고용 구조와 보호망이 취약해 보였다.
그런 얘기들을 듣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그 X 정말 웃기는 X이네요",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면, 그럴 수 없을걸요"라고. 형님은 "그러니까요"라고 씁쓸히 웃었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나이 들어서까지 일하잖아요. 일할 수 있으니 감사하지요"라고. 그 선(善)한 마음을 알아서 지켜주는 세상이면 좋으련만 또 그렇지는 않으니. 괜스레 더 속상해졌다.
더러운 건물을 씻기는, '특수부대'랄까
누군가 매일 바라보는 창문은, 풍경은, 덕분에 깨끗해졌을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 |
그날 닦은 창문을 매일 바라볼 이들은 이랬다. '수학의 정석' 책을 공부하다 하늘보며 숨 돌릴 수험생이었고, 답답한 일터서 잠시 바깥을 바라볼 직장인이었고, 화장실에서 근심을 해결할 이였고, 창가에 LP판을 가져다 놓은, 음악을 좋아하는 누군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매일 더러워지는 건물을 그대로 둔다면 어떻게 될까.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집 안에서 창밖만 많이 볼 터인데, 그마저 뿌연 광경이라면 얼마나 답답할까. 창문은 양쪽이라서, 바깥쪽을 안 닦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 로봇도 할 수 없는, 결국 사람 손이 구석구석, 일일이 닿아야 하는 일이니 말이다.
창문 안쪽이 안전하단 걸 본능적으로 알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바깥에 매달린 이들. 그래서 묵은 때를 능숙하게 벗기고, 눈 뜨면 마주하는 깨끗한 풍경을 선물하는 이들. 그것도 우리나라서 가장 높단 건물들까지, 기꺼이 마다 않고 뛰어든 이들.
강한 체력은 기본이요, 정신력은 갑(甲)이요, 거기에 고급 기술과 세월이 정직히 쌓아놓은 노하우까지 겸비해야 가능한, 극소수만 할 수 있는 걸 매일 해내는 이들. 그런 이들이, 이 세상엔 다행히 있었다.
그런 맘으로 내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니, 어쩐지 위기에 빠진 초고층 건물 외벽에 침투한 '특수부대'처럼 멋져 보였다. 그래서 그들의 이런 칭찬에 행복해졌다. "기자님, 오전만 하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끝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내일은 안 와요? 아르바이트하러 와도 되겠어, 꼭 와요."
어쩐지 '명예 특수부대원'쯤은 된 것 같아서, 그날 집에 오자마자 바로 뻗어버렸음에도 꿈속에선 초고층 건물 몇 개쯤은 더 구했던 것 같다.
300m 넘는 상공에서 까치발까지 해가며, "빈 곳 없이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던 형님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
에필로그(epilogue)
초고층 건물서 일한 첫날이었다. 형님 역시 줄에 매달려 일하는 게 두려워 덜덜 떨었다. 다음 날, 일터에서 오는 모든 연락을 피했다. 그대로 그만둘 참이었다.
아내에겐 차마 말도 못 하고 숨겼다. 걱정할 게 뻔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에 매달려, 창문을 닦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누군가 그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아내였다. 누가 저렇게 위험하게 일하나 싶어 쳐다봤더란다. 근데 그게 다름아닌 남편이었다. 아내는 울음을 터트리며 "위험한데 안 하면 안 되느냐"고 했다. 말리지 못했다.
30년이 넘도록 그의 두려움을 이기게 한 건 뭐였을까. 300m 상공서 나눈 수많은 대화 중, 어딘가에서 답을 찾았다. 일순간 자랑스레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들이 둘이에요. 그래도 이 일 해서 다 잘 키웠죠."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옆모습이, 거인(巨人)처럼 무척 커 보였다. 초고층 건물보다도.
남형도 기자 hum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