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는' 청와대 앞 고성집회에 '아이들은 길을 잃었다'
서울맹학교학부모회와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무분별한 집회에 대한 대응 집회'를 열고 집회 소음과 교통 통제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맹학교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500미터 떨어진 시각장애인 특수학교로 무분별한 집회로 아이들의 학습권 등이 침해된다며 종로경찰서에 탄원서를 제출했었다. / 사진=뉴스1 |
연일 이어지는 청와대 앞 집회·시위에 시각장애인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섰다. 학습권·보행권 보장을 경찰과 지자체에 호소했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참다 참다 못해' 직접 행동에 나선 셈이다.
국립서울맹학교 학부모회와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학습권과 이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너희는 한 번이지만 우리는 매일이다', '집회하는 당신들, 자식 키우면서 남의 자식 눈물 나게 하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도 가졌다. 최소한의 맹학교 학생들의 학습권과 보행권을 배려해달라는 취지다.
이번 기자회견은 학부모회가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시각 장애 학습 및 이동권을 방해하는 무분별한 집회 금지 처분 요청' 공문과 호소문을 제출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수개월째 청와대 야외 농성…아이들은 소리 못 듣고 길 헤매
서울맹학교는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모이거나 다니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사거리까지는 200미터 남짓이다. 이 길은 학생들의 통학로이기도 하다. 범투본이 대규모 스피커를 동원해 시위를 하고 있는 효자동 삼거리와 청와대 사랑채와도 500미터 가량돼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사진=네이버지도 캡처 |
맹학교에서 불과 500m(미터) 거리인 청와대 사랑채 옆 도로에서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가 10월3일 개천절부터 점거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여름부터 집회를 가져왔다.
집회 소음은 학습과 보행 등 생활의 대부분을 소리에 의존하는 맹학교 학생들에게 치명적이다. 학교 측은 해당 지역에서 이뤄지는 보행수업은 졸업 후에도 인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지형·지물 등을 익히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집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무분별한 소음에 길을 잃는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김경숙 학부모회장은 "아이들이 보행수업을 하는 게 성인이 됐을 때 독립하고 자립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를 것"이라고 호소했다.
인근 주민들도 불편함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효자동에 거주하는 윤모씨(45)는 "(시위대가) 밤늦게까지 떠드는 통에 맘 놓고 돌아다니기조차 쉽지 않다"며 "살기 좋았던 동네가 시위 중심지로 돼 버렸다"고 말했다.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
'학습권 vs 시위권' 갈등 양상으로…우선하는 가치는?
경찰은 범투본에 제한통고를 하는 등 중재에 나서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말 범투본 측에 '야간 집회를 중단해달라'는 취지로 제한통고를 했다. 맹학교 학생의 보행권과 학습권을 보장해달라는 조치다. 하지만 범투본 측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앞세우며 제한통고에도 아랑곳없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범투본 측과 맹학교 학부모 사이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범투본 측은 지난 21일 맹학교 집회에도 난입해 학부모들을 향해 "빨갱이"라고 외치는 등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맹학교 학부모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매주 토요일 맞불 집회를 예고했다.
위험 수위에 이른 갈등 상황에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강제조치에 나설 전망이다. 경찰은 소음 피해로 112신고 또는 민원이 들어오면 확성기 전원을 차단하고 방송 차량을 견인하겠다고 방침을 세웠다. 서울시도 차도 적재물에 대한 강제철거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시위권과 생활권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라도 타인에 피해를 준다면 적절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시위를 하시는 분들도 적절한 집회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canelo@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