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는 되고, 조두순은 안 된다?
2010년 특강법 신설 후 적용 기준 '들쑥날쑥'…"모호하고 엄격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이름과 얼굴이 공개된 피의자들. 왼쪽부터 '여중생 살인사건' 피의자 이영학,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과천 토막살인사건' 피의자 변경석./사진=머니투데이DB, 뉴스1 |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의 얼굴이 공개됐다. 이에 흉악범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 22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에서 신상공개 여부를 논의한 끝에 김씨의 이름과 나이, 사진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씨 얼굴은 경찰이 사진을 언론에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닌, 김씨가 언론에 노출될 때 얼굴을 가리지 않는 방식을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위해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면서 모자나 마스크 등을 착용하지 않고 얼굴을 드러냈다.
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에 근거, 일선 경찰서별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특강법 제8조의 2 제1항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할 것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 네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 피의자의 신상을 검찰과 경찰이 공개할 수 있다. 제2항에서는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관련 법에 따라 얼굴과 이름이 공개된 흉악범은 김씨를 비롯해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토막 살인범인 오원춘·박춘풍·김하일, 용인 일가족 살인범 김성관 등이 있다. 지난해 발생한 여중생 살인사건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올해 8월 과천 토막살인사건 피의자 변경석의 신상 정보도 공개됐다.
지존파·막가파 얼굴 공개됐던 1990년대…이후 '인권보호' 이유로 피의자 얼굴 가려져
경찰이 처음부터 피의자 얼굴을 공개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에는 수사 초기부터 흉악범 얼굴이 공개되기도 했다. 1994년 부유층을 납치, 살해 및 유기했던 '지존파'는 현장 검증 당시 얼굴이 공개됐다. 이를 모방한 막가파 사건(1996년)도 피의자 얼굴과 이름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런 관행은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이후 바뀌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신상이 노출되면서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 여기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05년 경찰청이 훈령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제정해 피의자 보호 규정을 마련하면서 흉악범 얼굴은 가려지게 됐다.
이에 따라 연쇄살인범 유영철(2004년)과 정남규(2006)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초등학생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도 범행 당시인 2008년 관련 규정이 없어 얼굴이 공개되지 못했다. 조두순의 신상정보는 2020년 12월 출소 후에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마스크·모자를 제공하고 점퍼를 머리에 덮어씌우는 등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막아왔다. 하지만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흉악범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경찰은 관련 법령을 정비, 2010년 4월 신설된 특강법 제8조 2를 통해 흉악범의 경우 얼굴과 이름을 공개할 수 있게 했다.
신상공개, 애매모호한 기준…"너무 엄격한 거 아니냐"는 비판도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의 공범 박모양과 김모양이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살인방조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
관련 법이 신설돼 시행되고 있지만 흉악범 얼굴 공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특히 신상공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각 경찰서 심의위원회가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2016년 '수락산 살인' 피의자인 김학봉의 신상이 공개됐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된 바 있다. 두 사건 모두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었음에도 신상공개에 대한 경찰의 결정이 다르게 나타났다.
피의자 신상공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경우 주범 김모양(18)과 공범 박모양(20)은 범행 당시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건 피의자들은 어린 초등학생을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한 뒤 시체를 훼손하고 유기했지만 특강법 제8조의 2, 제1항 4호에 의거 '청소년'(만 19세 미만)에 해당돼 신상공개를 피할 수 있었다.
신상정보공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라는 여론과 피의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충돌해서다. 실제로 2016년 경기도 토막 주검 살해사건으로 구속된 조성호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피의자의 가족과 지인 등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피의자 신상공개와 관련해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지금 법상에는 '범행수단이 잔인할 것' 등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신상공개 대상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며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하면 '유사 범죄를 저지르면 나도 얼굴이 공개될 수 있구나'하는 일종의 범죄 억지력이 발생한다. 또 피의자의 얼굴이 알려지면 추가 제보 등으로 여죄 수사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