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가전 5가지 성공방정식 브랜드 고급화·틈새시장 공략 통했다
가전은 스마트폰이나 반도체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시장도 아니고 게임·콘텐츠나 소프트웨어(SW)처럼 영업이익률이 20~30%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가전 사업을 ‘계륵’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LG전자는 가전 사업을 그냥 ‘계륵’이 아닌 살코기 많은 ‘계륵’으로 바꿔놨다. LG전자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는 데 가전은 큰 힘이 됐다. LG전자가 가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가전 업계는 LG전자의 성공방정식을 5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성공방정식 1 | 퍼스트무버
LG 시그니처는 LG전자 브랜드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
발상의 전환으로 신제품 대거 출시
건조기, 스타일러, 무선청소기, 직수정수기, 뷰티관리기 등.
지난 몇년 새 LG전자가 내놓은 새로운 형태의 가전 기기다. 모두 기존에 없던 제품으로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수제맥주 제조기 등 아직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제품도 있다. 주목할 점은 LG전자가 내놓는 가전제품 대부분이 성공 가도를 달렸다는 점이다. 스타일러와 같은 제품은 삼성전자, 코웨이 등이 후발주자로 따라오기도 했다. 가전 업계에서 LG전자가 진정한 의미의 ‘퍼스트무버’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LG전자 의류관리기 브랜드인 ‘스타일러’다. 의류관리기는 건조기와 더불어 미세먼지에 민감해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신혼부부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제2의 스타일러로 꼽히는 미용가전 ‘프라엘’. 2년 전 처음 출시할 때만 해도 LG전자 내부에서조차 “가전 기업이 무슨 마스크를 파냐” “괜히 욕만 먹는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광학 제어 기술, 무선주파수 통신 기술 등을 탑재한 LED 마스크는 4종 패키지가 100만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집에서 피부를 관리하는 ‘홈케어’ 뷰티 디바이스 국내 시장 규모는 프라엘의 성공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올해 약 5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선보인 ‘홈브루’ 역시 이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가전 기기다. 캡슐 커피머신처럼 집에서 캡슐로 맥주를 직접 만들어 먹는 기기로 호평을 받았다.
현재 LG전자 H&A사업본부 국내 매출액 중 건조기 등 신가전 비중은 약 30% 정도로 추산된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신가전의 도움으로 LG전자 H&A사업본부 실적도 수직 상승했다”면서 “지난해 H&A 국내 매출액이 30~40% 증가했는데, 올해도 H&A 국내 매출액이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LG전자는 신사업과 관련해 ‘삼성이 해야 따라 한다’는 좋지 않은 평판이 따라다녔다. 이제는 가전 사업만큼은 오히려 LG전자가 완전히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정옥현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여러 신제품이 잇따라 히트를 치면서 LG전자 가전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가전 시장은 사실상 LG가 트렌드를 이끌고 나머지 기업들이 따라가는 모양새”라고 말한다. LG전자 관계자는 “유사 제품 등장 자체가 원조 제품이 그만큼 고객에게 어필한다는 방증이며, 시장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방정식 2 | 브랜드 고급화
건조기·스타일러 등 신가전이 LG전자 가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사진은 LG전자 가전이 진열된 베스트샵 매장. (사진 : 윤관식 기자) |
LG 시그니처로 품격 높여
“제품은 잘 만드는데 브랜드와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
기존 LG전자에 대한 또 다른 평가였다.
브랜드가 약했던 LG전자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심어준 브랜드가 있다. 바로 ‘LG 시그니처(LG SIGNATURE)’다. LG전자는 초고가 프리미엄 브랜드인 시그니처를 통해 생활가전 사업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시그니처 제품군의 매출 성장률은 50%가 넘는다.
시그니처를 필두로 파생 효과가 높은 브랜드 역시 잇따라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프리미엄 가전 기기를 대상으로 만든 브랜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지난해 10월 미국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에서 올해의 주방가전에 선정됐다.
LG전자는 앞으로도 ‘시그니처’ 라인업을 지속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존 냉장고, 세탁기, TV 등은 물론 에어컨에도 시그니처 브랜드를 추가했다.
시그니처 브랜드를 단 제품은 대체로 비싸다. 가장 최근 선보인 시그니처 브랜드의 에어컨은 1대당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시그니처’에 대한 LG전자의 목표는 비교적 명확하다. 제품 판매량 확대보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는 것에 중점을 뒀다.
LG전자의 고급화 전략은 꽤 성공적인 분위기다. LG전자가 자체 진행한 고객 조사 결과에 따르면 LG 시그니처가 LG 브랜드에 대한 고객 선호도를 약 10%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시그니처 브랜드 가치 향상 → LG전자 브랜드 가치 제고 → 전체 가전 판매량 향상’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LG전자 관계자는 “LG전자 가전 사업이 계속 성장하는 이유는 초프리미엄 제품의 낙수효과 영향도 있다”며 “LG 시그니처로 인해 브랜드 호감도와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고 분석했다.
성공방정식 3 | 강한 부품이 경쟁력
인버터·모터부터 시작해 AI 칩까지
부품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요즘 IT나 가전 시장 트렌드다. 소비자 관심을 많이 받는 제품을 보면 대체로 좋은 부품을 쓰는 경우가 많다. LG전자 가전이 질주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부품 경쟁력이다.
인버터 DD모터. LG전자가 자랑하는 부품 중 하나다. LG전자 세탁기를 세계 1위로 올려놓은 1등 공신이기도 하다. DD모터는 일반모터 대비 진동이 없고 소음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 에너지 손실 낭비를 막아준다.
LG전자 가전 기기 중 동력을 사용하는 제품에는 대부분 DD모터가 들어간다. 1998년 처음 생산한 DD모터는 누적 생산량이 8000만대에 육박한다. 지난 몇 년간 생산량이 빠르게 늘면서 매년 1000만대 가까운 DD모터를 생산해 각종 가전 기기에 탑재하고 있다.
LG전자는 부산대 감각과학연구실과 공동으로 식기세척기 세척력과 효율성이 손 설거지보다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식기세척기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이유는 손 설거지보다 세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실험 결과는 세간 평가를 뒤집었다. 실험에 사용된 LG전자 식기세척기의 세척력이 남다른 이유도 바로 인버터 DD모터 때문이다. LG전자 DD모터는 다른 모터와 비교해 효율성 측면에서 30% 이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터와 컴프레서(기체를 압축해 압력을 높이는 장치)의 작동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해 제품 성능과 효율을 끌어올리는 인버터 기술도 장점이다. LG전자 인버터 기술은 이미 업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LG전자가 선보인 인버터 리니어 컴프레서는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적어 일반 컴프레서보다 효율성이 높다. 그래서 냉장고 등에 주로 사용된다. 모터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냉장고 온도를 보다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이제는 필수 가전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건조기 또한 좋은 부품으로부터 탄생한 제품이다. 핵심 부품 가운데 하나인 콘덴서는 빨래에서 나온 습기를 물로 변환시킨다. 옷감의 습기를 빨아들인 고온다습한 공기가 차가운 콘덴서를 통과하면 습기가 물로 바뀐 후 배출된다. 차가운 얼음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원리와 비슷하다. 콘덴서를 통과하며 건조해진 공기가 다시 건조기 내부로 들어가 습기를 빨아들이는 구조다. 기존 건조기는 사용자가 주기적으로 콘덴서를 직접 세척해야 하는 불편함이 컸다. 하지만 LG전자 건조기의 콘덴서 자동세척 시스템은 건조할 때마다 콘덴서를 자동으로 씻어준다.
LG전자는 동력에 사용되는 부품뿐 아니라 반도체 등으로 눈을 넓히고 있다. 로봇청소기나 세탁기, 냉장고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칩’을 개발했다. LG전자는 앞으로 AI 칩이 적용된 로봇청소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을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성공방정식 4 | 좋은 이미지 구축
광고 집행 늘리며 소비자 접점 확대
시그니처란 브랜드가 LG전자 가전의 고급화에 기여했다면 판매량 확대에 기여한 것은 바로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 구축이다.
LG전자 가전은 요즘 ‘팬덤’이 형성될 만큼 많은 화제를 모은다. 젊은 신혼부부 사이에서 신혼집 살림을 LG전자 가전으로 도배하는 가정이 부쩍 늘었다. 일각에서는 수입 소형 가전과 비교해도 LG전자 제품 경쟁력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내놓는다. 제품만 잘 만든다고 해서 해당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소비자와 많이 접하며 접점을 쌓아야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최근 한 의미 있는 통계가 발표됐다. 지난해 LG전자 국내 광고비가 삼성전자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국내 4대 매체(TV·라디오·신문·잡지) 광고비로 2161억6600만원을 지출했다. 삼성전자(2016억2962만원)보다 큰 규모다. LG전자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반면, 삼성전자 광고비는 소폭 감소했다.
물론 광고비를 많이 책정하는 것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고 집행을 확대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에게 보여줄 제품이 많다는 것이고 제품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제품이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LG전자가 가전 분야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공방정식 5 | 융복합 전략
가구 같은 가전 ‘오브제’
2014년 LG전자는 세탁기와 냉장고를 담당하는 HA사업본부와 에어컨을 총괄하는 AE사업본부를 H&A사업본부로 통합했다. 부서 통합과 함께 핵심 전략으로 ‘융복합’을 앞세웠다.
LG전자 가전의 성공 배경 중 하나는 융복합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H&A사업본부가 통합 출범하면서 제조 현장에서는 부품을 함께 사용하고 제조 과정 전반에 걸쳐 표준화 작업이 진행됐다. 모듈러 디자인도 도입되며 LG전자 가전은 생산 공정 과정을 절반으로 줄이고 제품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을 30% 이상 단축시켰다. LG전자 가전이 다른 경쟁사와 비교해 높은 수익을 거둔 배경이다.
융복합 전략은 단지 제조 공정에서만 활용된 것이 아니다. 최근 LG전자는 가전과 가구를 결합한 신개념 브랜드를 선보였다. 바로 ‘오브제’다. 시그니처에 이어 밀고 있는 또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로 융복합 가전 기기를 전문으로 다룬다. 오브제는 가전 기기지만 예술작품 또는 인테리어의 일부가 돼 그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LG 오브제 브랜드로 나오는 제품은 냉장고, 가습공기청정기, 오디오, TV 등 종류가 다양하다. 모두 가구 같은 가전, 가전 같은 가구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요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며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반응이 뜨겁다.
LG전자에 따르면 LG 오브제 판매량은 내부 판매 목표량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 관계자는 “가전 기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디자인을 강조한 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는 추세”라며 “가구형 가전과 같이 융복합 가전 시장은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