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2016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됐나요?
“뭐가 되고 싶었어요?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됐나요?”
영화 속에서 반복하여 읊어지는 질문입니다. 배우들 간의 질문이 어느 새 내 자신에게 메아리 쳐 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차에 엔딩 크레딧과 함께 슬그머니 등장한 어쿠스틱 주제가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다가온 이 영화는, ‘태풍 따위 괜찮아, 그 속으로 들어가 봐’ 하는 마음으로 관객들을 놔줍니다. ‘태풍 속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면 그렇게 해’라는 식으로.
‘환상의 빛(1995)’,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로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016년에도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각종 영화제의 단골 손님이고 국내 평단에서도 이 분의 영화엔 거의 고정적으로 높은 평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거의 항상 ‘가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강한 끌림을 주지 못하지만, 한번 필름이 돌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2시간을 빼앗아 가는 중독성이 있죠. 사실 이번에도 아니 특히 이번엔 ‘루저’가 주인공인 듯 하여 ‘태풍이 지나가고’의 높은 평점에도 보기를 주저하였었습니다. 얼굴 맞대고 앉아있기 힘든 무엇을 마주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지. 우리 시대의 ‘루저’.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우리 시대의 ‘루저’
주인공 료타는 오래 전 문학상을 받아 반짝 유명했던 소설가입니다. 그후 유명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지금은 ‘소설 취재’ 차 사설탐정을 한답시고 고등학생에게서 삥을 뜯거나 불륜 부부 사이에서 이중거래를 하며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니다. 손에 돈이 쥐어지면 경륜장으로 달려가 ‘홀라당’ 아들 양육비와 집세를 날려버리는 무책임한 아버지이기도 하지요. 자신은 대기만성형이라고 허세를 부리거나, 툭하면 ‘6천만 일본 인구’가 자신의 취미에 동조한다는 식의 거짓부렁을 하는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기도 합니다.
홀로 사는 어머니의 집 구석구석에서 돈 될 만한 물건들을 슬쩍슬쩍 빼가는 것까지 보게 되면 그야말로 극단적 찌질한 ‘루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사실 료타는 ‘우리 시대’라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망가진 사람이라고 보기엔 스스로 부족해진 측면이 크긴 합니다.
하지만, 경륜이며 복권에 ‘꿈’을 결부시키는 그의 반복된 고집에 관객들은 혼란을 느끼고 속기 시작합니다. ‘그게 꿈인거야? 그런거야? ‘이 시대’가 너에게 그런 꿈을 줬던 거구나.’ 씁쓸한 뒷맛. 아버지를 닮기 싫어했지만, 결국 아버지와 같은 꿈을 꾸며 살게 된 료타는 이제 아들에게 ‘꿈’에 대한 물음을 받게 됩니다. 그가 꿈에 대해 아들에게 제대로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료타가 한 고등학생의 비난에 대한 대거리로 빽! 소리를 칩니다. 료타 자신이 잘못 자라난 어른의 표상이기 때문에 변명으로 들릴 수 대사입니다.
그러나 또한 숙연하게 정곡을 찔러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태풍 속에서 관객들이 왈칵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꼬여버렸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과거 속의 나’는 ‘지금의 나’를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혹은 인정. 바로 잡으려면 도박이나 복권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료타도⋯그게 어려서 꿈은 아니었을테지 하는 동정심까지. 복잡 다단한 심경 속에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른이 되면 겪어야 하는 또 한번의 성장통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도 우리는 어떤 대답이나 확신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은 차치하고 말이죠.
여러모로 되고싶은 어른이 되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태풍의 가장 아늑한 한가운데
제목처럼, 태풍이 옵니다. 영화 속의 태풍은 왠지 아늑합니다. 태풍의 핵처럼 포근한 지점에 모인 인물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꼬여버렸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이놈의 인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태풍은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현상임과 동시에 다시 처음부터 추스려야 하는 계기가 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놈의 인생’은 40년 넘게 살아온 안식처의 문을 열고 태풍을 마주하려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료타와 어머니 키키, 전처 요코, 아들 싱고. 이들 3대는 어떤 모습으로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걷게 될까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주제가인 하나레 구미의 ‘심호흡’이 흘러나올 때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さよなら 昨日のぼくよ。(잘가 어제의 나여)”
바지가 젖고 어깨가 축축해오며 더 이상 내려치는 비를 방어할 의미가 없어졌을 때 ‘에라 모르겠다’ 우산을 걷어버리고 몇 km를 걸어갔더니 뭔지 모를 쾌감이 몰려오더라는 치기(稚氣)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머리라도 지키자며 끝까지 우산을 두 손으로 받쳐 쥐는 ‘지금의 나’는 그런 적절한 포기와 추스림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글. M (뜨내기 영화꾼)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 네이버 영화, 수입/배급 : 티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