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유일한 클래식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벌써 2016년 마지막 달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해보다 올해가 특별할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여러 행사가 있지만, 전세계적인 공통점 중에 하나가 <송년음악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음악인들에게 음악으로 관객과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벤트로 이 보다 더 좋은 행사는 없을 것이다.
<송년음악회> 레퍼토리로 최고를 뽑아본다면,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교향곡 9번 '합창'(Symphonie No. 9 D-minor 'Choral')>이 단연코 1순위일 것이다. <교향곡 9번 '합창'>을 좋아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경우 12월에만 150회 이상이 전문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연주된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연말에 20회 이상이 연주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유추해보면 12월에 지구에는 수천 번의 <환희의 송가>가 불러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단 <교향곡 9번 '합창'>에서 가장 유명한 4악장 '환희의 송가' 성악부를 감상해보자. 카라얀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 13년간 상임지휘자로 활동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2000년 실황공연이다.
물론 헨델의 <메시아(Messiah)>와 하이든의 <천지창조(Die Schöpfung)>도 송년음악회 단골 레퍼토리지만, 대중적으로는 <교향곡 9번 '합창'>을 따라올 수는 없다. <교향곡 9번 '합창'>이 <송년음악회>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이 곡에 담긴 '자선과 박애정신'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가치 때문에 <송년음악회>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러퍼진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날 그리고 1989년 독일이 통일 되던 날에도 이 곡은 평화와 자유를 음악으로 선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 1981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당선 축하 공연, 2005년 유네스코 창설 60주년' 등 평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행사에서 단골로 연주된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성악부에서 연주되는 쉴러의 메시지를 통해서 왜 이곡이 '자유, 평화, 박애정신'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다.
백만의 사람들이여, 껴안아라!
이 입맞춤을 전 세계에!
형제들이여, 별하늘 위에는
사랑하는 아버지이신 신이 반드시 계시네.
땅에 꿇어 엎드리는가, 백만의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조물주를 예감하는가, 세상사람들이여?
별하늘 위에서 그를 구하는 것이다!
별 위에 그는 반드시 계시네.
베토벤 합창교향곡의 자필 악보 -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라고 쓰여진 베토벤의 직접 쓴 글들이 보인다 |
연말 <송년음악회> 유례는 1918년 12월 31일 라히프치히에서 열린 '평화와 자유의 축제'가 효시가 되었다. 이때부터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되기 시작하였으며, 밤 11시에 음악회를 시작해 자정 정각에 4악장이 시작되도록 꾸몄다. 4악장 성악부인 <환희의 송가>는 새해를 맞이하기에 가장 극적인 음악이 아닐 수 없다. 올해도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TV에서 지겹게(?) <환희의 송가>를 배경음악으로 다양한 프로그램 광고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너무 흔하게 사용되어서 이 거대한 작품이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든다.
<교향곡 9번 '합창'>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별명은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긴 제목을 가진 교향곡이다. 원래의 제목은 <쉴러의 송가 '환희에 붙임'을 끝악장으로 대관현악,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을 위해 작곡된 플이센 왕 빌헬름 로드비히 3세 페하께 가장 존경심으로 베토벤이 헌정한 교향곡 125> 이다. 당시에 이런 제목을 붙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사상 독창자와 합창을 동반한 교향곡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1793년 23세의 나이에 <교향곡 9번 '합창'>을 착안하여, 1823년 53세때 완성된 교향곡으로 제작기간으로만 거의 30년이 소요된 곡이다. '악성'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능력을 감안하면 이 교향곡을 만들기 위해서 베토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이 위대한 걸작을 1824년 5월 27일 빈 케른토너 극장에서 베토벤이 직접 참관하여 초연을 지켜봤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들을 수 없었다. 당시 그는 이미 귀머거리 수준으로 청력이 상실된 상태였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또 다른 조력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영화 '카핑 베토벤'의 한 장면 |
<장 크리스토프>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로망 롤랑(Romain Rolland)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인류애와 사해동포주의, 이성과 환희로 건설된 이 땅 위에 선포한 천국 복음”이라고 극찬하였고, 리하르트 바그너는 "모든 음악이 사라지더라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반드시 구해야 된다"고 얘기하였다.
유명한 영화감독들이 이 명곡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리 없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에서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을 사용하였다. 주인공이자 악인인 알렉스를 통해서 이 음악이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전달 할 수 있음을 표현한다. 난해한 이 영화의 내용을 100% 이해하기엔 어렵지만, 그가 이 음악을 얼마나 영화속에서 드라마틱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커트 위머 감독은 크리스찬 베일을 세계적으로 알린 저예산 영화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02)>에서 <교향곡 9번 '합창'> 1악장을 사용하였다. 감정이 제거된 미래 사회에서 독재자의 특수 요원인 주인공은 우연히 이 음악을 듣게 된 뒤에 심리적인 변화가 생기게 되어 반군의 협조자가 된다. 바그너가 주장했던 인류를 구할 마지막 음악이 <교향곡 9번 '합창'>이라는 내용을 잘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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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거장 지휘자들이 명반을 남겼지만, 베토벤 음악 그리고 <교향곡 9번 '합창'> 연주에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라는 이름을 빼 놓을 수는 없다.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아르투르 토스카니니(1867-1957)와 정반대의 연주 스타일과 해석으로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종신 지휘자였던 그가 사망한 뒤에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이 그 뒤를 이어서 클래식 음악계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위대한 유산 중에는 유독 베토벤 연주가 많은데, 그 중에서 최고의 연주로 꼽히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단되었던 바이로이트 축제가 다시 열리게 된 1951년 개막 공연으로 연주된 <교향곡 9번 '합창'>이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연주는 여전히 <교향곡 9번 '합창'>의 베스트셀러 음반이다.
1951년 푸르트벵글러-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오리지널 앨범 디자인 |
지휘자의 개성과 시대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변함없는 가치는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메시지 일 것이다. 헌정 이래 가장 힘든 정치적 혼란 속에서 2016년이 저물어가고 있지만, 이 시간들도 <환희의 송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통일 독일처럼 남북한 통일 기념 연주회로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러 퍼지길 기원해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추천음반
1.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rutwangler) -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PO), 1942년 멜로디아
195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EMI) 연주가 가장 유명하지만, 감성의 피날레는 1946년 연주를 능가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패망한 독일의 방송국에 보관중인 녹음 기록을 구. 소련군이 가져가서 러시아 레코드 회사에서 복각한 음반. 전시 상황에서 연주된 지휘자의 감정은 베토벤과 동격 수준이다.
2. 클라우스 텐슈테트(Klaus Tennstedt) -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LPO), 1985 BBC
로열 알버트홀 실황 연주, 거장의 숨소리까지 들린다. 이보다 더 웅장하고 장엄할 수는 없다. 폭풍 속의 베토벤을 듣고 싶다면 강추.
3. 로저 노링턴(Roger Norrington) - 런던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1990 ERATO/EMI
베토벤 생전에 사용된 당대 악기로 연주된 원전 연주. 원전 연주라고 해서 스케일이 작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대규모 편성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거대한 연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