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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광기(狂氣)와 바그너의 음악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ebelungen)

전쟁의 광기(狂氣)와 바그너의 음악

최근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Ridley Scoot)> 감독의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Alien: Covenant)> 에는 감성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 이 등장하여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초반에 조용하게 시작된 피아노 연주는 후반부에 오케스트라 연주로 바뀌면서 영화 속 공포감을 극대화 시킨다.

이때 사용된 음악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ebelungen)> 시리즈 중에서 전야제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에 포함된 <신들의 발할라 입성(Entry of the Gods into Valhalla)>이란 곡이다.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은 창조주와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새로운 창조주가 되고자 한다. 유일한 창조주가 되기 위하여 그는 인간의 창조주를 멸망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광기(狂氣)”에 가까운 끔찍한 내용의 영화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더욱 빛을 발한다.


전쟁의 광기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프란시스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1938.4.7.-)>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에서도 바그너의 음악은 살육의 현장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전쟁의 광기(狂氣)와 바그너의 음악

이때 사용된 음악도 <니벨룽겐의 반지> 시리즈 중에서 제1일 <발퀴레(Die Walküre)>에 포함된 <발퀴레의 기행>이란 곡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는 <발퀴레의 기행>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그너 음악들이 사용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프란시드 코폴라 감독은 영화 <대부(The Godfather, 1972)>에 이어 또 한 번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개봉 전까지 베트남전과 관련된 미국의 영화는 대부분 패전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 받기 위한 과장된 영웅담들이었다. 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의 개봉 이후에는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 참가와 전쟁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전쟁의 광기를 표현하는데 바그너의 음악들이 자주 사용된 이유는 바그너의 오페라들이 가지는 웅장함과 장엄함의 이유도 있겠지만, 히틀러의 음악이라 불릴 만큼 나치 시대에 자주 연주되었던 음악이란 점도 무관하지 않다.

히틀러는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로 바그너의 음악만을 틀었다고 한다. 

공포에 떨고 있는 수용소의 유태인들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그 어떤 소리보다도 끔찍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한동안 바그너 음악은 히틀러 덕분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그너가 만든 음악들은 전쟁이나 독재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뿐더러 오페라의 완성도와 가치가 워낙 높기 때문에, 여전히 전 세계 오페라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을 자주 하였으나, 대부분 사적인 감정에 의한 것들이었다)

매년 독일 바이에른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그너 오페라를 위한 음악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 Festival)> 은 세계 3대 음악제로 자리를 잡았으며, 이 음악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축제 기간 4일 동안 매일 밤 열리는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 공연이다.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은 꿈의 무대이며, 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서는 10년 전에 예매를 해야 될 정도라고 한다.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ebelungen, The Ring of Nibelung)

바그너의 대표 작품인 <니벨룽겐의 반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작품은 독일 오페라 부흥을 위해 만들어진 중세 독일 또는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대서사시다. 

1848년 작곡을 시작하여 1876년에 완성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는 역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덧붙이자면 영화와 소설로 유명한 <반지의 제왕> 도 동일한 신화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거대한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오페라 극장 시설로는 부족하여, 바그너는 직접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를 설득하여 새로운 오페라 극장을 바이로이트에 건립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바이로이트 축전 극장(Das Bayreuther Festspielhaus)> 에서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이 초연되었다.

전쟁의 광기(狂氣)와 바그너의 음악

201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중 오페라 <발퀴레> 공연 장면

<니벨룽겐의 반지>는 4개의 악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흘과 하룻밤의 서야를 위한 무대 축전극” 이란 제목처럼 4일간 공연된다.

 

그 일정은 다음과 같다.

1부 전야제 악극 「라인의 황금」 연주 시간 약 2시간 30분

2부 제1일 악극 「발퀴레」 연주 시간 약 3시간 40분 

3부 제2일 악극 「지크프리트」 연주 시간 약 3시간 50분

4부 제3일 악극 「신들의 황혼」 연주 시간 약 5시간 20분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을 다 듣기 위해서는 15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웬만큼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전곡을 다 듣기 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 전편을 다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에 의해 다소 왜곡된 음악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바그너의 음악들은 지친 현대사회에서 신화와 영웅을 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바그너의 오페라는 19세기 음악사에서 <고전주의 음악>을 끝내고 <낭만주의 음악>과 <국민악파 음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바그너의 가장 큰 업적은 음악을 가수와 오케스트라의 조화 뿐만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한 점이다.

19세기 많은 오페라들은 가수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가수를 위해서 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그너는 총체예술이라고 불리는 문학과 음악, 그리고 철학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관을 창조해냈다.

이러한 총체예술을 위해서 바그너는 수많은 문학을 이해하고 게르만 민족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전쟁의 광기를 표현하는데 바그너의 음악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러한 총체예술이 갖는 철학적 의미들을 잘 표현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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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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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트랜드와 기술, 인사이트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틈틈이 클래식 음악 이야기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