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원에 산 아파트가 3년만에 1억원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라는 말, 여러 번 들어봤을 것이다. 경기둔화에서 고령화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겪은 어려움이 고스란히 한국에 전해질 것이라는, 다소 암울한 이야기이다. 우리보다 먼저 호황을 누리고 ‘잃어버린 20년’을 지나 서서히 경기를 회복하고 있는 일본 경제를 보며 혹자는 90년대 초 극에 달한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진 것처럼, 한국의 부동산 가격도 멀지 않은 미래에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 내다보기도 한다. 과연 전문가들은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경제의 미래와 일본 경제는 정말 그토록 닮아있는지 살펴보자.
‘잃어버린 20년’
일본 부동산 폭등
일본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지만,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1985년 플라자 합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으로 구성된 G5 재무 장관들이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결의한 이 사건은 수출 독주로 승승장구하던 일본 경제에 타격을 입혔는데, 플라자 합의 직전 1달러 대비 240엔대였던 엔화는 일주일 만에 8.7% 오르더니 88년에는 120엔대로 100% 평가 절상되었다. 전에 비해 비싸진 일본 물건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출이 둔화되자 내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본은 5%대였던 대출 금리를 2.5%까지 인하한다. 그리고 이렇게 풀린 자금들은 다 같이 부동산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때부터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5년 새 4배 가까이 올랐다.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1990년에는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皇居)의 토지를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 땅을 전부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SBS |
부동산 융자 규제 시작
6억에서 1억, 아파트 가격 폭락
언제까지고 수요가 넘쳐날 것 같던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었지만, 거품이 일정 수준에 다다른 91년부터는 매수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게다가 일본 중앙은행은 89년 2.5%였던 금리를 3.25%까지 인상했고, 이어 90년에는 6.0%까지 올려버렸다.
90년 4월부터는 부동산 융자에 대한 총량 규제가 시작되었고, 92년 1월 보유세까지 오르자 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되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린 결과 1991년부터 25년간 일본의 부동산 주택 가격은 약 50%가량 하락한다. 심한 경우 6억 원 상당이었던 아파트 가격이 버블 붕괴 3년 후에는 1억 원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한국의 부동산, 금리 상황
언젠가는 일본처럼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일정한 가격에 도달하고 나면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데,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지금 그래프의 어디쯤 와 있는 걸까?
한국감정원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지수에 따르면 올 6월까지 경북 집값 최고점 대비 23.2%, 경남, 충북도 20% 이상 떨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은 사정이 조금 다르죠. 한국개발연구원의 <경제동향> 10월 호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 전문가 10명 중 6명은 ‘1년 뒤 서울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응답자 전체의 54.3%가 현재 서울의 주택 매매가 상승률이 ‘높다’고 판단하면서도 1년 뒤에도 계속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 내다봤다.
금리 상황은 어떨까?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인하했다. 지난 8일 있었던 국회 기획 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국내 경제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면서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도 내비쳤다.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한 세금 부담이 더해졌다는 점은 일본의 버블 붕괴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인 보유세 인상과 궤를 같이 한다.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주택 가격과 추가 금리 인하는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겨 버블의 정점으로 내달리게 만들 것이라 보는 관점도 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되리라는 것이다.
일본과 같은 급락은 없어
‘한국형 디플레’ 우려
하지만 우리와 일본은 다르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87년 한 해에만 대도시 땅값이 평균 30.7% 올랐던 일본에 비해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값, 땅값 상승률은 각각 8%, 6% 상승으로 그쳤으니, 한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그 속도가 완만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에도 한동안 경기 부양 명목의 건설투자와 그로 인한 주택 공급이 늘어났지만, 우리는 2005년 이후 건설 투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일본과 같은 급락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보는 관점도 있다.
버블이 터진다 해도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이 일본보다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린 주체가 주로 기업으로, 이들이 도심 부동산을 앞다퉈 사들였다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자 곧바로 은행권의 부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투자의 주체가 주로 개인인데다 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 등을 통해 부동산 가격 하락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침체를 끌고 들어올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당분간 버블 붕괴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또 부동산 가격 하락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적더라도 한국 경제에는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많다. 지난 8월과 9월 연속으로 마이너스 소비자 물가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버블 붕괴 없는 ‘한국형 디플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데, 1년 뒤 서울 부동산 가격은 어떤 양상을 띨지,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장기 경기 침체 돌입을 막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MONEYGROUND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