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100년 넘게 쓰는데… 한국 아파트 수명이 유독 짧은 진짜 이유
재건축 연한 30년
콘크리트 물리적 수명 100년
구조 문제없으나 설비 노후화 문제
정부 ‘장수명 아파트’ 추진
뉴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1930년대 지어져 90년도 더 된 건축물인데요. 1945년에는 미국 육군 항공대 소속의 중형 폭격기가 이 빌딩과 충돌했음에도 여전히 건재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눈을 돌려볼까요? 외국에는 지어진 지 한 세기를 향해 달려가는 초고층 건물도 여전히 건재한데 왜 한국은 지어진 지 20년이 갓 넘긴 아파트조차 재건축 대상으로 거론되는 걸까요? 재건축을 통해 아파트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게 업계 중론이지만, 과연 그 이유뿐인 것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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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노후 아파트 단지 관계자들은 지자체와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은데요. 재건축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인 정밀안전진단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탓에 재건축 사업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용적률을 높이고 층고 제한을 푸는 등 재건축 규제완화는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 소재로 등장하곤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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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은마아파트 주민들 앞에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할 것을 약속한 바 있으며,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줄곧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정치권의 모두가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데요. 현 정부에서 첫 국토부 장관을 지낸 김현미 전 장관은 “재건축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구조 안전성의 문제가 없음에도 추진하는 것은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안전진단 기준을 기존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선 아파트가 지어진 지 최소 30년은 돼야 하는데요. 김현미 전 장관의 말처럼 재건축 연한 기준은 초과했으나, 구조 안전에 문제가 없는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한다면 이를 사회적 자원 낭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관련 연구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우선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는 대체로 철근과 콘크리트의 재료를 일체화시켜 각각의 장점만을 뽑은 ‘철근콘크리트’라는 성분으로 지어지는데요. 이때 아파트 주재료인 철근콘크리트의 평균 물리적 수명이 100년이라는 점에서 지어진 지 30년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가 건물을 허물고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것은 낭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콘크리트협회는 지난 2001년 ‘북미주 콘크리트 구조물 실태조사보고서’를 공개하며 한국의 대다수 국민은 아파트 수명을 30년 안팎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북미주 국민들은 건물 수명을 100년 이상을 본다는 점을 지적했는데요. 해당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의 아파트의 콘크리트 강도는 400~500㎏f/㎠에 달하며 동남아 역시 300~400㎏f/㎠ 수준을 유지합니다.
국내 아파트의 콘크리트 강도는 210~270㎏f/㎠로 해외 건축물에 비교해 다소 낮다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아파트 설계·층수·규모에 따라 강도를 상황에 맞게 조절함으로써 건물의 100년 이상의 수명은 거뜬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죠.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은 아파트 교체 수명이 26년인 반면 영국과 독일은 100년을 훨씬 넘어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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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파트의 주재료인 철 큰 콘크리트의 수명이 100년에 달한다는 이유로 지어진 지 30년이 된 아파트의 재건축을 무조건적인 낭비라고만 은 볼 수 없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콘크리트 때문에 아파트 구조는 멀쩡할지언정 각종 설비들이 노후화돼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인데요.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녹물이 나오고, 하수구가 잘 막히는 탓에 폭우가 내릴 때 물이 역류하기도 하며, 밀폐 기능이 떨어져 곰팡이도 쉽게 번집니다. 난방과 냉방 기능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준공 30년이 지난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각종 배선과 배관들이 콘크리트 속에 매설돼 있어 콘크리트를 뜯어내지 않는 이상 보수가 쉽지 않은데요. 국내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건축학과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은 배선과 배관이 주택 내부에 노출돼 있어 문제가 일어나도 교체하기 쉬운 반면 한국은 배선이나 배관을 교체하려면 벽이나 바닥을 뜯어야 하는데 공사 자체도 어렵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건축 단계에서부터 긴 수명을 염두에 둔 아파트들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세종 다정동에 ‘세종 블루시티’ 아파트에서 장수명 주택 준공식을 개최했는데요.
이 아파트는 1천80가구 중 116가구가 장수명 주택으로 지어졌으며, 장수명 주택은 100년을 목표로 일반 아파트보다 유지·보수를 쉽게 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손쉬운 유지 보수 관리를 위해 배관, 배선을 위한 설비 공간도 따로 마련했고, 철근 피복 두께를 비롯해 콘크리트 강도도 키워 내구성도 더 튼튼히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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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문가들은 재건축을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해 선 안된다고 지적하는데요. 정부의 재건축 안전기준 강화 움직임 역시 재건축이 확정된 지역의 인근 부동산 시세가 한순간에 뛰어오를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4년 ‘9·1 부동산 대책’으로 재건축 건축 연한을 기존보다 10년 단축한 이후 이는 곧바로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는데요. 해당 제도 시행 이후 3년간 ‘강남 3구’로 꼽히는 강남, 서초, 송파 등의 구역에서 재건축 아파트값의 상승률이 약 30%에 달했다고 하죠.
지금까지 해외와 비교해 국내 아파트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유지 보수가 어렵게 설계된 기존의 국내 아파트 특성이 재건축을 시기를 앞당기는데 주효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향후 아파트 설계에 있어서 유지 보수관리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관건일 것으로 점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