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품 백화점에서 ‘아미, 발렌시아가’ 꺾고 매출 1위 했다는 국내 브랜드
우영미 패션 디자이너
남성복 디자이너 된 한국 최초의 여성
43세, 파리로 건너가 ‘우영미’론칭
전 세계 16개국 매장에 45여 개 매장 운영
지금껏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만 골라 협업해온 삼성이 돌연 지난달 국내 한 패션 브랜드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는 삼성 내부의 젊은 직원들이 ‘삼성 폰 사용층 연령대를 낮추려면 반드시 이 브랜드와 협업해야 한다’고 콕 집었기 때문이라는데요. 한국보다 패션의 본 고장인 파리에서 더 큰 명성을 떨치고 있는 패션 브랜드 ‘우영미’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지만, 현재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 43세에 프랑스 파리로 향한 우영미 디자이너는 본인의 이름을 내건 패션 브랜드로 현재 한국이 낳은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반열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불어 한마디 할 줄 몰랐던 그녀가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사진출처_한국경제 |
전 세계 주류 패션계에서 남성복을 만드는 여성 디자이너로는 우영미 대표가 독보적인 존재로 꼽히는데요. 그녀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중에서도 남성복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하는 데는 우 대표의 아버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우 대표의 아버지는 영화배우에 버금갈 정도로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는데요. 집안에 쌀독이 비어도 딸의 옷은 사줄 정도로 현실감각은 다소 떨어졌지만, 아버지가 쌓아놓고 읽던 ‘보그’, ‘마리 끌레르’ 같은 외국 잡지들은 그녀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음알음 알게 해줬습니다.
우 대표는 “아버지의 무절제와 허세 덕에 우리 가족은 빚쟁이에게 몰리기도 했고, 값비싼 그릇에 밥을 나눠먹기도 했지만, 결국 그 덕에 우리 남매는 모두 진짜 멋있고 근사한 게 뭔지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출처_매일경제 |
패션에 대한 관심과 센스가 남달랐던 아버지 덕분인지 우 대표의 패션에 대한 재능은 학교에 입학하고부터 금세 두각을 드러냈는데요. 소심하고 조용한 우등생에 속했던 우 대표는 원래는 미대를 가려 했으나 1978년 성균관대 의상학과에 입학합니다. 이후 1986년에 이르러선 한국 대학생 대표로 선발돼 나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패션 콘테스트에서 쟁쟁한 지원자들을 제치고 3등을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졸업 후 지금의 LG패션의 전신인 반도패션, 뼝뼝과 같은 회사를 다니던 우 대표는 1988년 ‘솔리드 옴므’라는 본인만의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솔리드 옴므는 그때 당시 한국에선 최초로 여성 디자이너가 만드는 남성복 브랜드였는데요.
우 대표는 “보통 여성복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커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관찰자의 입장을 즐기는 터라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디얼 맨(ideal man)’’을 상상하며 그를 위한 옷을 만든다”라며 “아무래도 등록금은 내주지 않으셔도 본인의 비싼 옷만은 사야 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어떠한 남자의 역할에 대한 결핍에서 ‘아이디얼 맨’에 대한 이상이 내게 짙어졌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출처_조선일보 |
솔리드옴므는 섬세하고도 중성적인 디자인으로 국내 패션업계에서 단단히 입지를 굳혀 이문세, 이승철, 윤상 등 80~90년대를 주름잡던 발라드 가수가 앞다퉈 우 대표의 옷을 입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안착시킨 우 대표는 2002년 43세의 나이로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로 가 자신이 이름을 딴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를 론칭한 것이죠.
처음 파리로 떠나겠다는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알렸을 당시 ‘이만하면 됐으니 한국에서 편하게 살라’며 거의 모든 주변인들의 그녀를 말렸으나 그녀의 도전의식은 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첫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는데요. 당시 파리 패션업계 종사자들로부터 “한국에도 디자이너가 있나?”라는 질문을 들을 정도로 예상보다 더 척박한 현실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처음엔 옷을 만들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 호텔방 한편에 재봉틀을 놓고 작업했다고 하는데요 . 우 대표는 “쇼 당일 다리미조차 제대로 빌릴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적도 있다 ”라며 “쇼만 해선 안되고 편집숍에 옷을 납품해야 하는데 처음엔 매일같이 거절당하다가 3년쯤 시간이 지나서야 내 꾸준함과 상품 퀄리티를 인정해 준 편집숍 매니저들이 옷을 받아주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사진출처_스타일조선 |
그렇게 2006년 프랑스 봉마르쎄 백화점에 입점한 ‘우영미’는 같은 해 파리 마레 지역에 단독 매장을 내는데 성공했는데요. 처음엔 고객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쇼룸 구석에 자리했던 ‘우영미’옷은 매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시키더니 현재는 전 세계 16개국 매장에 45여 개에 달하는 매장을 두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불어닥치면서 전 세계 패션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와중에서도 ‘우영미’만큼은 매출이 오히려 전년보다 8% 늘어난 540억 원을 달성했기도 한데요. 특히 지난 2020년 르 봉 마르셰 남성관에서 ‘우영미’가 아미, 발렌시아가 등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를 꺾고 매출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죠.
사진출처_방탄소년단 브이앱화면 |
우 대표는 ‘우영미’가 지금처럼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이유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때 라이선스를 대기업에 넘기거나 TV 홈쇼핑에 상품을 납품해 회사를 빠르게 키우는 방법을 일체 외면해 미련하게 사업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우 대표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는데요. 그녀는 “고급 의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선 매출보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단기간에 브랜드 덩치를 키운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 대표는 남성복을 넘어서 이젠 여성복 라인 강화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우 대표는 여성복 라인과 주얼리 라인을 강화해 ‘우영미’를 토털 패션 하우스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녀는 “그간 패션이 유럽만의 리그였다면, 우영미와 솔리드 옴므가 오랜 히스토리와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싶다”라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 우영미 대표에 관한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국내외 패션 피플들에게 인정을 받은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