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맘 먹고 루이비통 가방 찢었습니다” 2030이 명품 가방 자르는 이유
과거 고가의 명품 브랜드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명품 업계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친 ‘MZ세대’가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MZ세대’세대의 명품을 다루는 방식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최근 젊은 층의 명품 선호현상은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또 한쪽에서는 수백만 원짜리 진품 명품백을 과감히 자르고 개조해 형태를 바꾸는 리폼이 유행 중이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 리폼한 명품백을 공유해 반응을 얻는 것을 즐기고 중고시장에 다시 되팔기도 한다. 이처럼 비싼 명품을 고쳐 쓰고, 파는 것을 즐기는 2030세대의 속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명품 중고거래 늘고
리폼 전문업체 증가
젊은 층의 명품 리폼이 유행을 탄 것은 중고시장의 발달이 한몫했다. MZ 세대의 소비특성 상 유행주기가 매우 빠른 만큼, 최근엔 중고시장에도 명품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진품을 중고로 내놓을 시 가치는 상당히 절하되어, 제값을 받을 수 없다. 이에 젊은 층은 차라리 리폼을 통해 희소성과 가치를 높여 되팔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이에 최근엔 가방 리폼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특히 루이비통은 리폼 의뢰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는데, 루이비통 가방은 주로 PVC(폴리염화비닐)로 만들어져 유연한 재질이 많다. 덕분에 자르고 붙이기가 쉬워 수선에는 제격이라고 한다. 그중 가장 많이 리폼 되는 백은 2000년대 중반 길거리에서 3초마다 보여 일명 ‘3초백’으로 유행을 이끈 ‘스피디백’이고, 이 외에도 루이비통 네버풀과 프라다 미란다커백, 갤러리아백 등이 단골 리폼 의뢰 가방에 속한다.
소비자들은 커다란 구찌 쇼퍼백도 세척과 바느질을 거치면 최근 유행하는 아이템인 버킷백으로 바뀌고, 새 가방뿐 아니라 남은 가죽으로 카드지갑과 키링 등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명품 리폼의 장점으로 꼽고 있다. 이에 자신의 루이비통 가방을 리폼 전문 공방에 맡긴 한 여성은 “애물단지였던 장롱 속 명품백을 작은 크로스백(한쪽 어깨에 메는 가방)과 지갑으로 바꾸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폼 시 AS불가
2030, 유행 더 중시
사실 리폼한 가방과 지갑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짝퉁'(모조품)에 속한다. 때문에 매장에서도 리폼한 상품에 대한 정식 사후서비스(AS)는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리폼 시장에 대한 인기는 전혀 식지 않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최근 MZ세대는 명품 리폼을 ‘업그레이드’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이러한 행위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진품을 고집하기보단 친환경·재활용·커스터마이징(개인화)을 통해 보다 자신에게 더 쓸모있는 제품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과거 빅팩이 유행했던 것과 달리, 요즘엔 손바닥만 한 마이크로백 또는 스마트폰만 겨우 들어가는 폰홀더백이 유행을 타고 있다고 한다. 이에 한 리폼 전문 업체 A사는 “10년 전에는 빅팩이 유행했는데, 최신 트렌드에 맞춰 작은 데일리백으로 리폼을 원하는 수요가 많다.”라고 말하며, 최근 “견적의뢰 건수가 전년 동월 대비 3배나 급증했다.”고도 전했다.
또 이 같은 리폼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명품 리폼을 부업으로 삼는 직장인들도 생기고 있다. 가죽 잡화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해온 30데 B씨는 최근 집 근처 오래된 상가 1층에 10평(약 33m²) 남짓의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거기에서 B씨는 명품 가방 리폼(reform)’을 부업으로 하고 있는데, 그녀는“리폼 제작이 용돈 벌이도 되지만, 오래된 명품 가방을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MZ세대 중심으로
명품 수선 증가할 것
<트렌드코리아> 시리즈로도 유명한 서울대학교 소비학과 김난도 교수는 코로나 시대, 새로운 트렌드 강화의 주체로서 ‘MZ세대’를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이 세대는 “돈과 소비에 편견이 없는 새로운 소비자이자, 자본주의 논리가 체화된 세대로 이들이 바로 자본주의 키즈”라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MZ세대는 중고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여러 번 반복 소비돼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인 ‘N차 신상’ 소비를 즐긴다.”고 언급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중고시장의 발달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그는 “과거 기성세대가 명품 소비 시 진품을 중시하고 남과 비교해 우월성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최근 젊은 층은 명품 소비에서도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의 즐길 거리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업계에선 명품 시장이 커질수록 리폼 등 수선 시장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 규모는 13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6% 성장했는데, 이는 전 세계 8위 규모다. 이에 패션업계에선 명품 수선 시장 규모를 연 300억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