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 설거지남인가요?” 월수입 700만원 남편이 밝힌 뜻밖의 고민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설거지론 논쟁
월 700 버는데 용돈 40만원 ‘씁쓸함’토로
설거지론 미러링 용어 ‘짬처리론’ 등장
젠더 갈등 또다시 부추긴다는 우려 제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젠더 이슈를 놓고 날선 의견이 오고 가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요. 최근에는 ‘설거지남’이라는 표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남성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음 등장한 ‘설거지론’은 대학에 이어 직장 내 커뮤니티로까지 번져가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쟁을 폭발하게 만든 설거지론이 대체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사진출처_진중권 페이스북 페이지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설거지론이 대체 무엇이냐”라며 “설거지론을 놓고 여기저기서 논쟁 중인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못 알아 덧는 표현이 늘어난다”라고 한숨 쉬었습니다. 진 전 교수가 궁금증을 표한 설거지론은 청년 시절 각고의 노력을 통해 스펙을 쌓고 결국은 고소득 직장을 얻어낸 남성들이 젊어서 성적으로 문란한 시절을 보낸 여성과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신조어인데요.
사진출처_굿뉴스닷컴/뉴스1 |
이와 비슷한 유사어로는 부인이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설거지를 하는 남편을 일컫는 ‘퐁퐁남’이 있습니다. 퐁퐁남은 세재 이름 ‘퐁퐁’과 남성을 합친 단어로 이들을 집합적으로 ‘퐁퐁단’이라고 칭하거나 퐁퐁남이 유독 많은 도시를 ‘퐁퐁시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국내 모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는 ‘XX대 남학생들은 설거지 당하는 게 본인 미래 아니냐‘, ’XX대가 퐁퐁남 최다 배출 학교인 듯‘ 등의 내용이 담긴 글들이 게재되기도 했는데요.
사진출처_채널A ‘아빠본색’ |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월 700만 원을 벌고 한 달 용돈으로 40만 원을 받고 있다는 변리사 A 씨가 설거지론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는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글 작성자는 ’설거지론 읽고 오늘 연가 썼다‘를 제목으로 하는 글에서 “학생 때부터 외모도 특출나지 않고 잘하는 것도 별로 없었으나 공부는 곧잘 해서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공대를 들어갔다”라며 “군대에서 선임이 변리사 공부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시작해 3년간 피나는 노력을 해서 겨우 시험에 붙었다”라고 운을 뗐는데요.
이어 “시험에 붙은 뒤 연수를 다녀와서 인근 주변 대학의 여학생들과 미팅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여자와 결혼했다”라며 “아내는 학벌도, 집안도 그리 좋지 못했지만 나한테 살갑게 대해주는 게 좋았던 것 같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700만 원 벌어다 주고 용돈으로 40만 원 받아 타 쓰면서 2천 원짜리 커피도 돈 아까워했다”라며 “와이프는 가방이 늘어가고 골프를 치러 다녀도 이런 게 가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설거지론을 접하고 내 얘기 같더라. 오늘은 집에 안 들어 갈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요.
사진출처_비즈니스뉴스 |
A 씨는 다음날에 연이어 글을 게재했는데요. 그는 ’어제 글 쓴 변리사, 후기 올린다‘는 제목의 글에서 “어제 술 먹고 집 근처 호텔에서 자고 들어갔더니 아내가 술은 왜 이렇게 비싼 거 먹었냐며 엄청 닦달하더라”라며 “친구랑 둘이서 술 마시면서 술값이 20만 원 안 되게 나왔는데 월에 700만 원씩 가져다주는데 내가 그거 하나 못하나 싶어서 열이 받았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분을 삭이면서 그간 모은 돈을 보여달랬더니 8천만 원뿐이었다”라며 “7년간 열심히 해서 내게 남은 것은 월세 집, 아내가 타고 다니는 벤츠 할부, 내가 타고 다니는 중고 소나타뿐”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은 이혼 전문 변호사인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라며 글을 마무리 지었는데요.
이 게시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지금에라도 당장 이혼해야 한다”, “내 주변 남자들도 다들 저렇게 살더라”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여혐 단어 하나 봤다고 이혼을 생각하나”, “이런 경우는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라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사진출처_woman.mynavi.jp |
논쟁의 선상에 선 설거지론을 두고 일부 여성들은 이 용어에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가 담겨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설거지론을 두고 “남성은 호구고 여성은 남성의 능력에 무임승차한다는 그간에 있어왔던 여성비하적 인식의 연속선상에서 나온 폄훼”라고 지적했는데요. 또 다른 대중문화평론가는 “설거지론은 고액 연봉 등 지위 상승으로 결혼에 골인한 흔남 출신 유부남도 결국은 재력 없으면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20대 남성들의 피해자적 서사가 깃들여 있다”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설거지론에 반발해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설거지론에 대한 미러링에 대한 일환으로 ’짬처리론‘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연애 경험이 많은 남자가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선 어리고 순진한 여자를 꾀어서 결혼하려 한다는 뜻을 내포한 단어로, 순진한 여성과 결혼한 뒤 육아는 부인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놀러 다닌다는 남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설거지론으로 촉발된 최근의 젠더 이슈를 두고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서울 소재의 모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이미 여러 차례 젠더 갈등 이슈를 겪으며 서로 상당히 예민해져있는 상태”라며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회 현실이 다른 성 집단, 다른 세대에 투영 돼 이 같은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다른 사회학과 교수 역시 “설거지론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주장에 불과하니 논란이 이보다 격화되면 사회적 대립과 분열이 더 극심해질 수 있다”라고 우려하며 “설거지론에 남남갈등, 남녀 갈등 식으로 프레임을 덧씌우다 보면 싸움을 계속해서 부추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설거지론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여러분들은 특정 성별을 폄하하는 신조어가 더는 생겨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