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샤워신’으로 유명해진 특이 구조 아파트, 지금은…
특이한 구조로 주목받은 아파트가 있다. 전지현이 샤워한 아파트다. 전지현이 영화 도둑들에서 떨어지는 물로 샤워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도둑들의 감독은 해당 도둑들을 촬영한 것으로도 모자라 차기작도 이 아파트에서 촬영할 계획을 세웠다.
영화감독이 이 아파트에 집중한 까닭은 해당 아파트 특유의 느낌도 있지만,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 아파트만의 구조도 큰 영향을 끼쳤다. 건물 중앙에 천장이 뻥 뚫린 광장이 바로 그것이다. 특이한 구조로 유명한 이 부산 아파트를 조금 더 알아본다.
전지현의 ‘그 아파트’
전지현 샤워신으로 유명한 장소는 부산 데파트다. 1969년 개장한 건물로 70년대 부산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꼭 들려야 하는 쇼핑 명소로 이름을 떨쳤다. 데파트는 부산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기존 동광동 공설시장 3,008㎡ 부지를 철거하고 지어졌다. 건설 과정에서 가장 먼저 완공된 상가만 69년 우선 개장됐으며 상층부의 아파트는 71년에나 준공됐다.
당시 부산에 마땅한 건설업체가 없었던 만큼, 부산 데파트는 민간 업체가 아닌 부산상공회의소의 주관으로 지어졌다. 부산상공회의소는 부산 최초의 백화점 형태 시장을 기념하며 해당 건물에 ‘데파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파트는 Department store의 일본식 발음이 강하게 들어간 이름이다.
부산 최초의 백화점으로 준공됐지만, 부산 시민의 쇼핑 중심지는 아니었다. 부산 시민은 데파트 인근의 국제시장이나 서면 상권을 주로 찾았다. 이에 부산 터미널과 가까웠던 데파트 상가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주력으로 삼았다. 인삼, 전통 민예품, 고미술품이 상가를 채웠다. 덕분에 데파트 상가는 관광객 특히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데파트 상가에선 당시 판매되던 상품을 곳곳에서 판매하고 있다.
남달랐던 부산 데파트
데파트는 지하 1층, 지상 7층 구조다. 주상 복합이었던 만큼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는 상가로 사용됐다. 3~4층은 사무실이었다. 주민들은 5층부터 거주했다. 상가 116실, 사무실 30실, 아파트 80세대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옥상의 일부 건축물은 옥탑방으로 사용됐다. 건축 당시엔 주변에 별다른 고층 건물이 없어 바다와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덕분에 준공 초기 데파트 거주자는 부산 고소득층이었다.
데파트는 부산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주상복합 아파트이기도 했다. 다만 6층까지만 운행해 7, 8(옥탑방) 층 거주자는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그마저 1기 밖에 없었으나 2019년 1기를 추가 설치했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6층 광장이다. 부산 데파트는 6층에 외부의 시선, 소음을 피할 수 있는 광장을 만들었다. 덕분에 데파트 아파트는 동이나 층에 관계없이 구조가 모두 다르다.
데파트의 아파트 구조는 주민들의 사생활과 개방감을 위함이었다. 당시 부산은 아파트라는 개념이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업을 할 마당이 필요했다. 데파트의 중심 광장은 이를 위한 공동 마당 역할을 수행했다. 거주 구역으로 광장을 둘러싸 상가를 드나드는 외부인으로부터 입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부산 데파트는 연식에 맞지 않게 상태가 양호했다. 데파트 거주민도 “못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라며 아파트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 칠이 벗겨진 자국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건물 자체가 망가지거나 금이 간 부분은 연식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해당 건물은 이제 부산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지속된 상가 침체와 노후화
부산 1호 건물인 만큼 데파트는 다른 노후 건물보다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와 비교해 여전히 현역이란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당시 기술력의 한계와 혹시 모를 안전상의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입주민과 상인들 또한 2008년부터 뜻을 모아 재건축을 추진했다. 2018년에는 재건축 추진 위원회까지 결성되어 설립 승인까지 받았다.
건축물 노후 문제도 있지만 가장 중점이 된 건 상가 공동화다. 경쟁 업체가 증가함에 따라 70년대 호황을 누렸던 데파트 상가 수요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공간이 좁고 시설이 노후화된 영향이 크다. 상가 공동화현상까지 일었다. 부산이 데파트 상가에 청년몰을 추진했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맞은편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가 자리 잡았다.
데파트 시설 절반이 상가, 사무실인 만큼 상권 침체가 지속되면 슬럼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데파트가 주상복합시설이면서 ‘전통시장’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반 재건축은 ‘되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라 추진되어 안전진단 의무부터 재건축 추진위, 조합 설립에 필요한 동의율 기준이 높다. 그러나 데파트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안전진단 의무도 없고 추진위,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율 기준이 낮다.
부산 데파트,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재건축 추진위에 따르면 데파트는 지하 5층, 지상 37층 규모 2개 동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재건축에 따라 기존 80세대였던 아파트는 아파트 250세대, 오피스텔 150세대로 크게 늘어난다. 추진위는 데파트와 동일하게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3개 층을 상가로 배정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만큼, 완공 시 1층에는 부산 데파트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메모리얼 보드가 설치된다.
다만 재건축 건물의 디자인에 대해선 다소 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재건축될 데파트 디자인은 하부에 상가시설, 상부에 주거시설이 배치된 대표적인 주상복합시설 디자인이다. 일각에선 부산 데파트 특유의 내부 광장 등의 요소를 이어받아야 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글 임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