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6위였던 기업을 11년간 적자 놓이게 한 사업
.
현대차와 기아차는
2
분기에 각각 영업이익 2360억 원,
영업손실 96억 원을 낸 것으로 추정되며
,
이외 포크스 바겐
,
도요타 등 해외 주요 업체들도
2
분기 연속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
그중 쌍용차는 올해 상반기 기준 영업 손실 2158억 원,
순손실은 2024억 원으로
14
분기 연속 적자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
한때는 무쏘
,
뉴코란도를 출시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가던 쌍용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
당시 잘나가던 재계 서열 6위, 쌍용그룹
1980년대 쌍용 자동차 출범
지금의 쌍용자동차로 알려진 회사는 원래는 하동환 이름의 회사로
1962
년에 설립됐다
.
일본
,
미국 등지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였는데 현대자동차
,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
이에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김성곤 전 쌍용그룹 회장이 하동환자동차를 인수했으며 쌍용자동차로 재출범시켰다
.
당시 쌍용그룹은 제계 서열
6
위에 랭크될 만큼 승승장구하고 있던 기업이다
.
건설경기가 초호황을 누리던
60
년대와
70
년대에 양회 산업으로 큰돈을 벌었기 때문에 탄탄한 자본금을 갖고 있었으며
,
그러한 자본금을 기반으로 여느 대기업과 다름없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
이후 쌍용자동차는 코란도 훼미리
,
독일 메르세데스
–
벤츠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탄생한
SUV
무쏘 등을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다
.
현대, 기아, 대우 자동차 출범
생존 위해 무리한 투자비, 고정비 지출
성장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무쏘와 코란도로 부상하던 쌍용자동차는
80
년대 후반 현대정공이 비슷한 형태의 갤로퍼라는 모델을 내놓으며 실적에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
여기에 쌍용보다 규모가 크던 현대
,
대우를 비롯해 전통 자동차 기업인 기아의 공세가 펼쳐짐에 따라 쌍용자동차의 입지가 위축되어 갔다
.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눈을 돌려 벤츠와 기술제휴를 맺고 승용차 시장에 승부수를 걸었다
.
그는 막대한 투자비와 고정비를 감당하기 위해 그룹의 전 재산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으며
,
쌍용그룹 하면 떠오르는 용평리조트도 당시 담보로 포함됐다
.
.
그때마다 최소 2천억 원의 투자비가 소모됐으며 결국
90
년대 중반 무렵부터 쌍용그룹은 대부분의 자산의 은행 담보로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영난이 심화된 상태였다
.
결국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던 쌍용자동차는
1998
년 대우그룹에게 매각되었고,
쌍용그룹은
2000
년도부터 해체 절차를 밟게 되었다
.
해체 절차를 밟던 당시 쌍용 그룹의 김 전 회장이 구조조정 때 재산을 은닉했다던 혐의가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쌍용 그룹 전체가 빠르게 부실화되던
1998
년 이후부터 자신의 주변 사람을 통해 회사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
쌍용 그룹 김 전 회장 구속
영업 이익 하락세 이어가는 쌍용자동차
주변 사람들에게 헐값에 회사 토지
,
건물 등을 팔아 차액을 남기는 방법으로 총 360억 원의 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김 전 회장은
2004
년 구속되었으며
,
쌍용 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대부분 매각됨에 따라 완전히 해체됐다
.
대우 그룹에 인수됐던 쌍용 자동차는 이후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매각되어 운영을 이어나갔지만 노조 파업
,
강제 해고 등의 문제로 지속적인 경영 악화를 겪었다
.
인력 문제뿐만 아니라 러시아
,
이란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현지 경제 여건 악화 및 정치적 상황 등에 발목을 잡힘에 따라 수출이 급감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에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100%
가 넘었던 쌍용차 평택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80.8%
까지 감소했다
.
SUV
신차를 출시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인건비 감축 외에도 부산 물류센터와 서울 서비스센터를 매각하는 등 자본금 확보를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