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주소까지 공개’ 노태우 전대통령이 투기꾼 명단 대놓고 공개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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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25일부터 1993년 2월 25일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13대 대통령 노태우. 당시 노태우 정권은 보수 우익에게는 ‘유약한 정부’, 진보 좌익으로부터는 ‘군정의 잔재’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는데요. 그만큼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죠. 현재의 의료보험 제도를 만든 대통령이지만, 반대로 쿠데타의 주역 중 한 명이기도 한 노태우 전 대통령. 이번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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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그동안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해왔는데요. 최근 병세가 악화되며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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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2월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보안 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는데요. 1979년 12월 12일 육군 9사단장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신군부 ‘하나회’를 만들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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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체육부 장관, 민정당 대표를 맡으며 군인이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1980년대 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을 정권 후계자로 급부상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후 그해 연말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5천억 비자금과 광주 민주화 운동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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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5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경북고등학교의 동창회 모임에서 “문화혁명 때 수천만 명이 희생 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광주사태 별것 아니다”라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나중에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니 자신이 그런 얘기를 했었는가”라며 “어떻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랐다”라는 반응을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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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 대신 장남 노재헌 씨가 국립 5.18 민주묘지를 꾸준히 찾아 참배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2020년 5월 18일에는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40년 만에 ‘13대 대통령 노태우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라는 내용의 조화를 헌화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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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0월 19일 ‘노태우 비자금’이라 부르는 사건도 발생했는데요. 당시 신한은행 이사가 300억 원이 입금된 차명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있다고 증언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었던 이현우 씨 역시 비자금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약 5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라고 밝히며 사과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이로 인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구속되어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 원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그해 김영상 대통령 임기 만료를 2개월 앞두고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전두환과 함께 석방됐죠.
의료보험제도 전 국민에게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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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오바마 케어’를 추진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극찬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제도입니다. 코로나19 시대에서 한국 방역의 큰 성공 요인으로도 뽑히는데요. 이런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전 국민에게 적용되기 시작한 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1989년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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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의료보험료 납부 능력이 부족한 농어민, 도시 자영업자들 역시 의료보험 혜택을 주기 위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역별로 의료보험 조합을 결성하게 한 후 필요한 의료보험료 수입의 50%를 세금으로 보조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결과 1989년 의료보험 적용 대상자가 전 국민의 92.4%까지 상승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부동산 정책은?
한국일보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는 3저 호황(저달러·저금리·저유가)으로 부동산 시장과 증시가 과열된 시기였습니다. 당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는데요.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분당, 일산, 평촌 등 신도시를 건설해 20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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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동산 공급대책은 기반 시설 부족, 수도권 인구 집중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집값 안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주택이 공급되기 시작한 1991년을 고비로 집값이 하락세로 반전했다”라고 전했는데요. 전문가들 역시 강남 집값을 10년 이상 잡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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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는 부동산 투기꾼 문제가 심각해지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부동산 상습투기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실제로 국세청은 137명의 부동산 상습 투기꾼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이 명단에는 이름뿐 아니라 나이, 집 주소까지 담겨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국세청은 부동산 투기의 문제를 알리고 개인 명예보다 공공 이익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공개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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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만큼 공과가 명확한 사람이 없는 듯” “어쨌든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니까 의미가 있긴하지” “비판받을 부분이 많은 사람이긴해도 아예 욕만 하기는 그런 듯”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