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경쟁하던 팬택이 2012년 몰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
팬택, 큐리텔, 스카이(SKY). 200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에게는 생소할 핸드폰 브랜드들이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은 크게 삼성과 애플사로 나뉘지만, 스마트폰 탄생 이전에는 각양각색의 핸드폰들이 있었다. 그때 인기 있던 핸드폰 브랜드들은 스마트폰에 뒤처져 사라진 것일까? 전설의 브랜드로 남은 그때 그 핸드폰 브랜드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찾아보았다.
팬택, 큐리텔과 스카이 인수 본격화
1991년 설립된 팬택은 2000년대 중후반 국내 휴대전화 시장 2위를 차지했다. 설립 초기에는 IT 열풍을 타고 각종 전자제품을 만드는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특히 휴대전화를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는 것을 주력으로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휴대전화 수출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겨 현대 큐리텔을 인수해 ‘팬택 앤 큐리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5년에는 스카이로 유명한 SK텔레텍을 SK텔레콤으로부터 인수하며 휴대전화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저가형 브랜드였던 큐리텔과 프리미엄 브랜드 스카이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었다. 2009년 12월에는 계열사인 ㈜팬택앤큐리텔 등을 합병해 통합 법인 ㈜팬택으로 공식 출범했다.
두 번의 워크아웃 겪은 위기의 팬택
큐리텔은 ‘정말 구리다 구리텔’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반면 스카이는 숱한 잔고장에도 희소성과 디자인 프리미엄으로 인기가 많았다. 스카이로 휴대전화 흥행을 이어가던 팬택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베가’ 시리즈를 내놓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4년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간 팬택은 결국 2015년 11월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팬택의 워크아웃은 2014년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2월에도 워크아웃에 돌입한 적이 있다. 첫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 팬택은 휴대전화 사업 성공에 힘입어 2005년 3조 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1992년 28억 원에서 13년 만에 100배 이상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모토로라가 일으킨 ‘레이저’ 열풍에 팬택은 판매 부진과 재고 부담, 유동성 악화로 이어지는 악재를 겪었다. 이에 첫 번째 워크아웃을 시작하고, 5년간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쳤다.
팬택은 2011년 12월 첫 번째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새로운 발돋움을 위해 기술 개발을 개을리하지 않았다. 2002년 33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한 카메라폰을 처음으로 국내 출시했고, 2003년에는 3D 듀얼 사운드 기능을 갖춘 제품을 출시했다. 또한, 2005년 블루투스 기능을 갖춘 DMB폰을 최초로 출시하는 등 ‘최초’ 타이틀을 단 제품을 제법 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3월 산업은행을 비롯한 팬택의 채권단은 논의 끝에 팬택의 두 번째 워크아웃을 결정했다.
팬택이 위기에 빠진 이유
팬택의 경영 위기 원인으로는 무리한 사업 확장이 꼽힌다. 팬택은 2001년 현대 큐리텔의 큐리텔을 인수할 때부터 자신보다 규모가 더 큰 회사를 인수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후 스카이까지 인수하며 사업 영역이 유사한 3개의 브랜드(팬택, 큐리텔, 스카이)를 운영했다. 세 브랜드의 중복투자로 인해 효율성이 높진 않았다. 더불어 스카이로 급속한 성장을 이룬 뒤에는 최초 타이틀을 위해 기술 개발에 과도하게 투자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재기에 성공
팬택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는 동시에 재기에 성공한다. 2010년 ‘베가’와 ‘베가 X’, 2011년 ‘베가 레이서’를 출시해 인기를 끌면서다. 베가 레이서는 누적 판매량 180만 대를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LG전자를 누르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에 오르는 성과를 내며 2011년 12월에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초반 기세와 달리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은 금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2012년 후반부터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팬택과 2위 경쟁을 하던 LG전자가 초반의 부진을 극복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자금력이 약한 팬택은 2012년부터 국내 3위로 밀려났다.
또한, 스마트폰은 신제품 투입 주기가 짧다 보니 충분한 검증을 받지 못한 팬택의 전략 제품들이 품질 면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베가 레이서’, ‘베가 LTE’ 등의 전략 제품은 마케팅에 힘입어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배터리가 너무 빨리 소모되는 등의 문제로 팬택의 이미지가 실추됐다. 이후에 나온 ‘베가 R3’와 ‘베가 아이언’ 등의 모델들은 전작의 단점을 개선했으나 소비자들이 이미 외면한 상태였다.
스마트폰 시장 침체기에 큰 타격
2012년을 기점으로 팬택에는 긴장감이 고조됐다. 2013년에 삼성전자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직원들에게 무급 휴직을 실시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불어 2014년에는 정부의 정책으로 더 큰 위기를 겪는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불법 보조금 경쟁을 한다는 이유로 2014년 3월부터 약 2개월간 이동통신 3사에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같은 해 10월에는 단말기 보조금의 상향선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스마트폰 시장은 침체를 겪는다. 경쟁사에 비해 덩치가 작은 팬택은 큰 타격을 입고 결국 2014년 두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두 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내리막길만 걷던 팬택은 2015년 6월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 인수 1년 후 팬택은 ‘스카이 아임백(IM-100)’을 출시하며 재기를 꿈꾼다. 그러나 3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한 이 제품은 13만 2,011대를 판매하는 데 그치며, 2016년 8월부터는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생긴 적자와 자금 유동성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200여 건의 특허권까지 팔아치웠다. 당시 팬택은 3,000여 건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2019년 마지막 부활 꿈꿨던 스카이
스카이 아임백은 팬택의 마지막 제품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2019년, 팬택은 스카이 브랜드 부활 소식을 알렸다. 스마트폰과 폴더폰, 무선이어폰을 출시한 것이다. 팬택은 국내 스타트업 착한텔레콤과 스카이 브랜드 라이선스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새롭게 부활하는 듯했던 스카이는 착한텔레콤의 ‘막장’ 운영으로 빠르게 막을 내렸다. 착한텔레콤에서 스카이 브랜드와 전혀 상관없는 제품들에 스카이 상표를 부착 판매한 것이다. 이를 꼬집는 비판에 대해서는 거짓말로 대응하는 등 실망감을 안겼다. 2019년 11월, 착한텔레콤 박종일 CEO가 출시할 계획이던 스카이원(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출시가 무산되었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