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직원에서 시작해 ‘회장님’ 등극한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샐러리맨 신화를 꿈꾼다. 월급쟁이들에게 임원직이란 높은 연봉과 명예를 함께 거머질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단 사원이 임원직이 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연공서열이 더 중요했던 과거엔 샐러리맨 신화를 이루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물론 그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이들이 있다. 샐러리맨 신화를 이뤄낸 회장님들의 비결을 살펴보도록 하자.
CJ그룹 이채욱 부회장
이채욱 부회장은 ‘샐러리맨 신화’에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1972년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한 그는 삼성물산에서 근무한다. 당시 고선박을 수입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태풍으로 인해 회사 자본금을 잃는 실수를 범했다. 이때 1년간 사고를 수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삼성물산 해외 사업 본부장으로 승진한다.
이후 1989년 삼성 GE 의료기기 대표로 선임되며 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본잠식에 처해있던 회사를 정상화하면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이채욱 부회장의 가능성을 엿본 GE의 파울로 프레스크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 그를 스카웃 해간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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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채욱 부회장은 GE 메디컬 사업 부문 동남아 태평양 지역 사장과 GE 코리아 회장을 거친 뒤, 2008년 인천공항공사 4대 사장으로 취임한다. 그는 연 200회 이상의 해외 출장을 다니며 인천공항공사의 성장에 앞장섰다. 그 결과, 인천공항공사는 이채욱 부회장 취임 이후 7년간 국제공항협의회 서비스 평가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가 CJ에 몸을 담게 된 건 2013년 CJ 대한통운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하면서부터다. CJ 그룹이 전문경영인을 부회장으로 영입한 사례는 이채욱 부회장이 처음이다. 대한통운을 맡은 지 얼마 안 가 이듬해 말, 이재현 회장은 횡령·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된다. 이채욱 부회장은 CJ 주식회사 대표 이사로 등극하며 이 회장의 빈자리를 맡는다.
이채욱 부회장의 사업 수완은 곧바로 발휘되었다. 엔터테인먼트와 물류, 바이오 분야 해외 기업 인수합병을 주도하며 CJ 그룹의 투자 사업을 이끈다. 이 회장의 사면을 위한 노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발로 뛴 덕분에 2017년 이재현 회장은 복귀할 수 있었고, 이채욱 부회장은 건강 문제로 2018년 경영에서 물러난다. 이후 병이 악화되면서 이채욱 부회장은 2019년 3월 별세한다.
신세계 구학서 회장
삼성물산 도쿄 주재원 시절 구학서 회장의 모습 / chosun |
신세계 구학서 회장 역시 삼성그룹 공채 13기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비서실 관리팀 과장에서 제일모직 본사 경리과장, 삼성전자 관리부 부장을 거친 그는 19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로 발탁된다. 이후 3년 만에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되면서 CEO 반열에 올랐다.
구학서 회장이 신세계로 넘어왔을 즈음, 마친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는 비유통 관련 기업을 차례로 정리하며 침착하게 대응한다. 그의 혜안으로 유통 부문이 대거 강화되면서, 신세계의 주역 이마트가 성장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때 이마트 용지를 대거 사들이며 신세계를 유통업계 강자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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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신세계 그룹은 정용진을 부회장으로 임명하며 오너 경영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그는 신세계 회장직을 역임하게 되었으나,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조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직함은 내려놓은 상황이지만 구학서 회장의 재산은 견고했다.
2012년 그는 이마트와 신세계의 주식 평가액 총합 254억 6,643만 원을 기록하며 주식 부자 1위에 등극한다. 2014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구학서 회장은 현재까지 신세계 그룹의 고문으로 활약하는 중이다.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
차석용 부회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원으로 유명하다. 뉴욕주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P&G 입사 14년 만에 한국 P&G 총괄 사장을 맡았다. 이후 2001년 부도로 법정관리 절차를 밟기도 했던 해태제과로부터 CEO 제의를 받는다. 당시 대규모 외자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던 해태제과의 눈에 해외파 차석용 부회장이 눈에 띈 것이다. 해태제과의 안목은 맞아떨어졌다. 그는 3년 동안 해태제과를 진두지휘하면서 흑자 전환을 이끌어낸다.
생활용품과 식음료 사업에서 두각을 발휘한 차석용 부회장을 향해 LG생활건강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2004년 그는 LG생활건강 사장으로 영입되어, 2005년 3분기 이후부터 꾸준히 매출 호조를 보이는 데 성공한다. 이후 2011년 LG그룹 사상 최초로 외부 영입 인사로서 부회장직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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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CEO로 선임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업 다각화다. 그간 생활용품에 치중되어 있던 LG생활건강의 관심을 화장품, 음료로 돌리면서 매출 상승을 꾀한다. 여기에 더페이스샵, 바이올렛드림 등의 화장품 브랜드 인수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의 안목으로 LG생활건강은 2019년 3분기 연속 3,000억 원에 매출을 달성한다. 이러한 성과를 달성한 차석용 부회장 역시 2019년 상반기 보수로 24억 7,600만 원을 벌어들인다. 화장품 기업 대표이사 중 가장 많은 보수다.
한샘 최양하 회장
최양하 회장은 대우중공업을 거친 뒤 줄곧 한샘이라는 한 우물에 매진했다. 1979년 한샘에 입사한 그는 1994년 전무, 1997년 사장으로 승진하며 CEO 자리를 차지했다. 곧바로 IMF를 겪었지만, 한샘의 사업 영역을 부엌에서 욕실, 가구 등으로 확장하며 위기 극복에 노력한다. 가구·인테리어 사업은 개시 3년 만에 1위에 올라서는 성공을 맛봤다.
한샘 입사 40년 만에 퇴임하는 최양화 회장 |
2000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주택 리모델링 사업에 힘쓴다. 이때 상담부터 애프터서비스까지의 과정을 하나로 묶었는데, 이 상품은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리하우스’ 사업의 토대가 된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최양하 회장은 2004년 부회장, 2010년 회장직에 올라설 수 있었다. 2019년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한샘을 업계 1위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최고의 성과라 평가받고 있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위기에 처했던 기업을 1위로 탈바꿈시켰다. 단순히 직원에서 임원이 된 것만으로 ‘신화’라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승진과 성과 달성, 이 어려운 일은 모두 해낸 그들의 노고가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이러한 선례가 널리 알려져, 대한민국 곳곳에서 샐러리맨 신화가 터져 나오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