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 장사만 유명한 줄 알았던 기업이 소유한 뜻밖의 브랜드
“요람에서 죽음까지”
여름만 되면 휴가지 숙소로 각광받는 곳이 있다. 바로 대명 리조트다. 대한민국 전역에 무려 17개의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대명이 운영하는 리조트는 인지도가 높다. 스키장부터 워터파크, 골프장, 해수욕장, 액티비티 레저 사업까지 피서지와 놀 거리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리조트로 유명한 대명이 사실 각종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리조트 브랜드 선호도 1위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대명의 탄생부터 각종 사업으로 다각화하는 지금의 대명그룹까지 대명의 역사를 조금 더 알아보자.
1. 피서용품 팔던 남자, 회장님 되다
대명그룹은 1979년 고 서홍송 명예회장이 설립한 대명 주택이 그룹의 모태이다. 서홍송은 부친을 일찍 여의고 가세가 기우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여타 창업주와 달리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부인 박춘희와 가정을 꾸리면서 창업의 꿈을 꾸었다. “손수레 장사를 하더라도 내 일을 하고 싶어”라고 박춘희에게 창업의지를 보였다.
퇴직 전 집 인근에 직접 집을 한 채 지으며 건축 경험을 쌓은 그는 1979년 27세에 퇴직 후 대명 주택을 설립했다. 포항 칠포해수욕장에서 피서용품을 팔며 돈을 마련한 대명 주택은 1985년 포항의 대표 주택 건설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소비자 불만이 있으면 이유 불문 달려갈 것’, ‘당일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날 반드시 처리하라’, ‘작은 고장도 무조건 수리하라’를 서비스 원칙으로 삼아 신뢰를 얻었다.
서울로 진출해 해마다 100% 이상 성장한 결과 5000여 개 건설사 중 1995년 133위 건설사로 거듭났다. 서홍송 회장은 80년대 마이카 시대를 맞이해 ‘레저산업’에 진출할 결심을 했다. 당시는 레저의 개념조차 희미할 때였다. 그러나 1989년 기공식을 한 설악콘도는 지금의 대명 비발디파크로 숙박뿐만 아니라 놀 수도 있는 종합 레저타운으로 계획되었다.
설악 리조트 이어 양평, 비발디, 홍천과 설악 골프장까지 90년대 연달아 리조트를 열면서 대명은 리조트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대명건설과 대명레저산업이 부도를 맞이했다. 직원의 헌신으로 화의인가를 받았지만 2001년 퇴근 중 갑자기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2. 남매 체제에 돌입한 대명그룹
창업주는 서홍송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떠난 후, 그의 부인인 박춘희가 회장직을 받았다. 서홍송 명예회장이 유언도 없이 죽었던 만큼 유학하던 그의 1남 2녀가 합류하기도 어려웠다. 이때 박춘희 회장의 남동생 박흥석 총괄사장이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을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매는 빠르게 그룹을 안정시킨 뒤 레저사업을 확장시켰다. 2011년 세계 워터파크 4위를 차지한 비발디파크 오션월드도 이때 탄생했다. 대명레저산업은 12개의 직영 호텔, 6개의 아쿠아 월드, 스키장과 골프장을 보유한 명실 상부한 레저산업 선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3. 다각화에 나선 2세 경영
남매 체제하에서 대명그룹의 주력 사업은 리조트와 호텔 사업이었다. 그러나 장남 서준혁은 외식부터 유통, 웨딩, 상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 동력을 찾고자 했다. 2015년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지나친 다각화가 문제 된 것으로 평가했다.
요람에서 죽음까지라는 당시 슬로건에 맞게 대명은 2010년 대명라이프라는 상조사업을 시작했다. 영화관 사업 또한 시작했으며 고급 떡볶이 프랜차이즈 베거백도 론칭했다. 웨딩컨설팅 업계 3위 본웨딩컨설팅을 인수해 업계 1위를 노리는 한편 웹게이트 등 전자부품업, 보안장비 제조부문에도 진출했다.
부회장이 된 서준혁은 2019년 들어 기존 문화 사업과 웨딩사업을 정리하고 렌트와 반려동물 사업에 진출했다. ‘닥터할리’ 펫 밀크를 제조하는 푸드마스터그룹을 일부 인수해 펫 푸드 라인업 확장에 나선다. 이처럼 업계 1위 대명이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이유로는 공급 과잉으로 주력인 호텔, 리조트 사업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글 임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