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라 해서 샀는데···오히려 손해 보며 팔게 된 4,380억 빌딩
부동산 투자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수 경기 불안으로 기업의 재정 상황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는 건 기존 사업의 의존도는 낮추는 대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는 유리하다. 부진을 겪는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인 셈이다.
건설사 부영 역시 부동산 사업에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그런데 2016년 매입한 빌딩으로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 내에서도 손에 꼽는 지역에 위치한 빌딩으로 왜 부영은 투자에 실패하게 된 것일까? 부영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빌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부영그룹의 통 큰 투자
부영그룹은 그간 임대주택개발 사업으로 현금을 확보해왔다. 2009년부터는 수도권 사업용 부지와 상업 부동산으로도 손을 뻗는다.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매입한 건물이’을지빌딩’이다. 부영 그룹은 2016년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인 을지빌딩을 4,380억 원에 사들였다. 3㎡당 2,650만 원으로, 매입 당시 단위 면적당 최고가다.
해당 건물은 지하 6층~지상 21층, 연면적 5만 4654㎡ 규모를 자랑하는 프라임 오피스 빌딩이다. 2호선 을지로 입구역과 지하로 연결되어 강북 CBD 내에서도 금싸라기 부지라 평가받고 있다. 비슷한 조건의 빌딩 거래 사례와 비교했을 때, 부영의 을지빌딩 매입 금액은 3.3㎡당 약 50만 원 정도 비싼 편이다. 그러나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꾸준한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이 같은 통 큰 투자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금싸라기 빌딩, 한순간에 골칫덩어리로 전락
The PR |
아쉽게도 예상은 처참히 빗나갔다. 삼성화재가 본사를 이전한 뒤부터 마땅한 임차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하던 11층 이상은 텅 빈 상태로 남아, 부영 그룹이 투자에 처참히 실패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2018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연면적 5만 5312㎡ 중 2만 5553㎡가 공실인 상태다.
부영 그룹이 공실과 관련한 자료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북 CBD에 대형 프라임 오피스 빌딩들이 대거 등장한 탓이다. 을지빌딩보다 컨디션이 양호한 빌딩들이 임차인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강북 CBD는 부영과 같은 임대인들을 공실 공포에 떨게 만든다.
(우) 참고 사진 |
을지빌딩의 높은 임대료 역시 공실의 원인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보통 외국계 투자자들은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공실을 메워, 안정적인 장기 임차인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후 건물 매각을 통해 수익을 얻는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임대 사업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부영 그룹은 을지빌딩의 높은 매입 가격에만 집중해, 임대료 인하라는 전략을 취하지는 못했다. 결국 금싸라기라 평가받던 을지빌딩은 최악의 공실을 기록하며 한순간에 골칫덩어리로 전락한다.
삼수 끝에 매각, 결과는 글쎄
2018년, 6년 만에 적자에 들어선 부영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을지빌딩 매각을 추진한다. 이지스운용자산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 거래는 무산된다. 곧바로 이어진 하나대체투자자산운영과의 거래도 실패로 돌아갔다. 매각이 장기화에 돌입한 2019년, 다행히 더존비즈온이 을지빌딩을 거머쥐었다.
부영의 을지빌딩 매각 금액은 4,501억 6,811만 원(부가가치세 제외)으로, 매입 금액보다 약 280억 원에 이르는 시세 차익을 본 듯하다. 그러나 취득세를 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영은 매입 당시 취득세(2017년 취득세율 4.6%)로 201억 원가량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부영이 을지빌딩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은 80억 원이라는 소리다.
물론 이마저도 수익이라 칭하기는 어렵다. 부영은 을지빌딩을 매입하면서 삼성화재로부터 2,120억 원을 빌렸다. 연 이자율 3.15%로 계산을 해보면, 을지빌딩을 소유하던 2년간 150억 원을 넘는 이자 비용이 발생했다. 여기에 각종 부대 비용까지 더해지면 매입 금액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익을 내지 못한 완벽한 투자 실패 사례인 것이다.
The Bell |
부영은 임대주택사업이라는 틈새시장을 노려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다. 이러한 노하우로 빌딩 임대업에도 뛰어들었지만, 결국 을지빌딩 투자는 실패로 돌아간다. 비슷한 시기에 매입한 빌딩들 역시 을지빌딩처럼 공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주택 사업이라는 본업마저 고전을 겪는 부영그룹이 과연 남은 빌딩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