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 K
HOMESPACE, 집을 둘러싼 모험들 02.
ARCHITECT K를 이끄는 건축가들. 이기철 대표(가운데) |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해외 건축 웹진은 남미의 Archdaily, 영국의 DEEZEN 을 포함하여 4~5개 정도가 된다. 세계 건축계의 동향이나 우수한 프로젝트들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다양한 건축적 이슈와 많은 담론들이 오가는 전세계적인 건축 정보의 창고다. 최근 이러한 웹진들이 주목한 한국 건축가가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이기철(Architect K)’ 소장으로, 부산에 지어진 그의 데뷔작 ‘송도 주택’ 프로젝트로 건축, 디자인 매체들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당초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긴 두 시간 반 동안 나눈 대화만으로 그의 디자인 철학과 주택 건축의 방법론에 대해 간단하게 나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주택 건축의 키워드는 한결같았다. 주택이 위치한 지역의 역사성, 도시 콘텍스트, 건축 재료, 그리고 건축주가 그것이다.
ⓒ 윤준환 |
ⓒ 윤준환 |
송도 주택은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주택들에 비해 그 형태가 매우 파격적으로 보이는데, 건축주의 의견이 반영된 것인가? 건축가의 제안이라면 이는 어느 선까지 수용된 것인가?
건축주의 바람은 모두가 꿈꾸는 그림 같은 집이었다. 주택을 소유하고자 하는 건축주의 로망 이라고 할까? 건축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건축 스케치를 하다 보니, 일반적인 주택에서 실현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건축주가 송도 일대에서 오랜 세월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곳이었기에 이곳에 위치한 골목길과 주변의 환경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었다. 이를 미학적으로 주택과 연결하는 시도들이 많이 이뤄졌다.
송도 주택 건축 리서치 과정은 어땠나?
처음 프로젝트에 돌입하면서, 부산지역의 학교 교수님들께 송도의 지역적 특성에 관한 문의를 했다. 지역의 역사에 대한 이론부터 자료조사를 하던 과정 중에 이곳이 일제시대 계획된 공설 해수욕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0~70년대까지 만해도 이곳이 신혼여행지, 휴양지로 각광받던 곳이었지만, 80~90년대 접어들어 난개발로 이미지가 퇴색됐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었다. 리서치 과정 중 어떤 교수님께서는 이곳이 한국의 나폴리가 될 수도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런 특성들을 좀 더 살려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휴양 프로그램과 해양 갤러리를 건축주에게 제안하게 됐다.
ⓒ ARCHITECK K |
송도 주변은 스산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주택 필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도 주택으로 인한 영향 때문은 아닐까?
시공 이후부터 주택 필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송도 주택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생각보다, 전체적으로 주거 비중이 많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리적 맥락에 대한 리서치 중에 1930년대 송도의 모습은 가족들이 한가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곳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런 역사 속 지역의 특색들이 다시 건축으로 구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 이외에도 협업을 통해 가구 디자인, 제작을 진행한 바 있는데
송도 주택 작업을 하면서 건축주에게 가구 제작에 관한 제안을 했고 흔쾌히 수락하여 주택 내부에는 총 8점의 제작 가구가 들어가 있다. 디지털 퍼블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신두수’ 라는 조각가와 함께 제작하게 된 가구 작업으로, 부산에서는 나름 명망 있는 아티스트였고 같은 부산 출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가구 작업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현장에 직접 가서 재료를 선정하고 미세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을 알게 되면서, 여러 가지 실험들을 많이 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디자인하는 과정 속에서 재료를 치밀하게 다룰 수 있는 지점이 무엇보다 좋았고, 긍정적 자극을 줬다고 할까? 다양한 영역과 협업하는 것도 건축가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CHAIR W ⓒ ARCHITECK K |
실용과 심미적인 부분에 대한 경계, 이에 대한 고민의 해결방안은?
매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건축주가 원하는 건축이 기능적인 부분이라면 그 부분에 집중해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건축가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건축가의 견해와 건축주의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것은 주택 설계에 있어 항상 큰 숙제인데, 어떻게 보면 이는 거시적으로 건축이라는 것이 중용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집에 대한 가치를 자신도 모르게 아름다움에 치중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주거를 위한 공간은 실용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두 가지 주택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각 건축주의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부분과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하나는 김해에 짓고 있는 ‘멋진 할아버지 집’, 또 하나는 양산 신도시에 자리한 ‘펀펀하우스’라는 프로젝트다. 두 프로젝트의 차이는 건축주의 세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하나는 이제 막 노후의 시작점을 앞둔 건축주의 집, 다른 하나는 아이들과 새로운 주택을 갖고 터전을 준비하는 세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펀펀하우스’는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20년 가까운 스케줄을 건물이 수용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반영시켜야 하는 것이 기본계획이다. 디자인 방향은 건축주의 생애 주기를 반영한 유연한 프로그램을 녹여내는 것이었다. 5~10년 이후는 자녀들이 독립적인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고, 이후 성장해 집을 떠난다면 빈 공간이 생겨날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주택 또한 담아내야 하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멋진 할아버지 집’ 이 주택은 앞서 언급했듯, 노후를 맞이한 부부가 건축주이다. 할아버지는 베이비부머들이 겪은 격정 속 인생의 항해를 마치고 이제 손주들에게 멋진 할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이러한 건축주의 소망은 디자인 방향을 세울 때 키워드가 된다.
펀펀하우스가 위치한 양산 신도시의 안타까운 부분은 거주자의 생애 주기를 고려하지 않은 신도시 주택들, 그리고 가로계획부터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도시 임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처럼 주택을 설계하는 데 앞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건축주의 삶과 살아온 환경에 관한 것인데, 이번 주택 같은 경우, 건축주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 그리고 삶의 환경으로 인해 자기화에 대한 고민을 다른 세대와 비교했을 때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이프스타일을 넘어 개인의 정서 등을 고려하는 것이 디자인의 키워드가 된다. 건축주의 삶 자체가 서구문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과거 기억과 정서들은 토속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주택 안에 담아냈다. 그가 경험한 시간들을 배려해 한국적인 집의 배치, 전원 문화, 한국적 정서를 주택에 반영하여 이질감을 없애고 생활공간은 극히 서구적으로 디자인하여 대비를 이루게 하였다. 완공은 올 가을쯤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멋진 할아버지 집 ⓒ ARCHITECK K |
펀펀하우스 ⓒ ARCHITECK K |
주택 설계 전 리서치 방식은 어떤가?
디자인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이야기를 풀어낼 방법을 찾는 것은 설계에 있어 가장 큰 목적인 만큼 리서치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편이다. 주택 같은 경우 보통 전체 과정을 8개월 정도로 잡는데, 과정 중 꽤 오랜 기간이 리서치에 반영한다. 주택뿐만 아니라 모든 건축이 형태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않는다. 조형적인 부분보다는 건축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각 프로젝트마다 각각의 단계별 프로세싱 맵을 만들며 작업한다. 건축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결정 요소들을 정리하고 매번 이를 추적해보면서 아카이브를 구현하는 중이다. 이는 스스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나만의 스타일에 대해 고정된 무언가를 해낼 만큼 대가가 아니거니와 이를 고집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건축의 형태적인 부분보다는 진행, 협업과 같은 관계들 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할아버지 집 다이어그램 ⓒ ARCHITECK K |
프로세싱 맵을 따로 만들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U.C.Berkeley), 인포메이션 컬리지가 있었는데, 여러 과정들을 청강하다 보니 정보를 표현하고 다루는 방법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정보를 시각화 시키는 작업들을 거치다 보면 2차, 3차 방법에 대한 행동이나 가치에 대한 맵핑이 가능하고 어떤 하나의 가치기준에 따라 판단 기준을 정할 수 있어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중요한 과정의 일환이 된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역적 한계는 없는가?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 건축을 한다기 보다, 부산이라는 지역과 상황에 맞는 건축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사무소의 다수 작업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지역이던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부산에 위치했다고 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적인 제한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들을 구현하고자 한다.
집에 대한 고민은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슈다.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다양한 대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실제로 특별히 추구하는 주택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은 건축주들 에게는 다양한 제안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일단은 건축주들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설계에 반영되지는 않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사회적인 요구와 이슈들이 일반화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건물로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건축적 방식에 있어 마이크로 하우징 같은 경우 새로운 포문을 열었다 할지라도, 일상으로 정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들을 항상 예의주시하며 늘 관찰하고 있다. 주거의 영역이 사회적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기에 사회의 단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관찰을 하면서 새로운 대안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하려고 한다. 전형적이고 독특한 형태들을 보여주는 것은 특별한 거장들의 몫이겠지만, 작은 변화의 시도들은 어느 건축가든 긍정적 변화를 사회에 전달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주택의 형태가 점차 다양해져 가는 이유는 좋은 건축가들이 대부분 건축주에 대한 리서치를 깊이 있게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주 스스로 자신의 취향이 분명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주거공간 속 프로그램으로 반영하길 원하기 때문에 건축가들이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수월할 수 있다. 이러한 사이클들이 확대되면 주택의 양식이 점차 다양해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