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하는 것은 아프지 않다”
변종모의 마음 속의 길 #1
나이아가라 폭포 / Niagara Falls, USA, Canada
거대한 함성으로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한평생 함께 손잡고 달려왔다가 그 절벽에서 산산이 부셔진 너는 다시 태어나는가? 아니면 이대로 사라지고 마는가? 모든 것은 그렇게 끝으로 향해가고 다시 태어날 징조 없이 사라진다 해도 슬퍼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세상에 예외란 것이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모든 시작은 끝으로 연결 된 이야기인 것을. 끝났다고 슬퍼할 것 없고, 새롭게 시작된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마무리되고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가 남는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그날의 함성. 나의 아픔쯤이야 그 아래에서 아무리 아우성을 쳐봐도 고작 한 방울 흩어지는 물방울만도 못한 것을. 차라리 너의 절규를 받아들여 침묵하는 삶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잠시다.
뉴욕의 맨해튼.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타임스퀘어에 숙소를 정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밤마다 쏟아져 내리는 네온사인이 꿈 속까지 찾아와 꿈에서도 그 불빛들을 피해서 며칠째 열심히 걷고 있었다. 분명 뉴욕은 밤낮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는 이상한 도시였다. 창밖으로 계속 쏟아져 내리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사람들의 외로움을 걷어가는 듯, 모두가 네온의 샤워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이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일주일쯤 도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나의 몸은 심하게 피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벗어나자! 여행을 와서도 도시에서만 지내다 보니 잠시 도시형 인간이 되어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살짝 더 부지런해진 것을 느낀다. 도시를 벗어나야겠다는 이유를 찾은 것은 도시의 한복판에서였다. 뉴욕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나이아가라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결국 폭포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현란한 광고판이었다. 1초에 몇 프레임씩 급하게 돌아가는 광고판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그것은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그 광고판은 숙소 창문만 열면 언제든지 영화관처럼 펼쳐지곤 했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네온사인을 피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던 밤. 결국은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광고판에 유혹 당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거의 일주일 만에 내가 지내던 곳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나이아가라로 떠나는 버스가 출발하는 곳은 타임스퀘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른 아침, 도시의 안개가 가느다랗게 깔리고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모여졌다가 각자의 거리로 사라지곤 했다. 어둠에서 막 벗어난 도시의 우중충한 하늘은 전광판 속에서 엄청나게 쏟아지던 폭포의 역동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더욱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캐나다 국경으로 이어져 있을 거대한 폭포를 찾아가는 아침. 폭포 위로 날아오르는 물방울처럼 산발적으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숨 쉴 틈 없는 도시를 벗어나기까지는 잠깐이었다. 밤마다 휘황찬란한 네온의 꿈속을 허덕이며 이 도시를 맴돌던 지난 시간은 꿈을 깨듯 잠시였다. 모든 것은 그렇게 잠깐이다. 화려한 꿈에 점령당했던 잠은 흔들거리는 버스 속에서 보상 받고 나면 다시 꿈처럼 펼쳐질 거대한 풍경을 기대한다. 7시간을 넘게 부지런히 달린 결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의 겨우 3센티 정도였다. 그 사이 여러 번 잠을 반복했지만 나이아가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잠시라고 생각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들을 오롯하게 내 것으로 보내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시간. 그것이 잠시다. 그러므로 잠시는 누군가에겐 일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신식 버스가 겨우 3센티의 거리를 조금 더 지났을 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이 버스는 미국 출입국 관리소에 정차하겠습니다.” 아주 짧은 한마디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목을 빼고 창밖을 바라본다. 역시나 모든 것은 잠시 만에 변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안개 속을 떠다니는 시간
아무것도 분간 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소리였다. 소리를 듣고 풍경을 상상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것이 안개 속에 휩싸여 사람들은 젖은 채로 폭포 위를 날아오르는 새처럼 신중하고 고요하게 움직였다. 웅장하다는 것은 청각 보다 시각에 가까운 단어일 텐데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온통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뿐이었다. 세찬 비가 쏟아지던 그 오후에 불분명한 풍경을 마주하며 거대하게 쏟아지는 함성을 따라 걷는다. 분명 존재하므로 믿고 걷는다. 쉽게 보여주지 않는 풍경에 조바심이 났지만 소리만으로도 느껴지는 풍경은 자연이 얼마나 인간을 작게 만드는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온종일을 달려도 우리는 겨우 지구의 한 부분을 미끄러져 내렸을 뿐인 것처럼. 여전히 쏟아지는 이 함성은 거대하게 나타날 폭포의 실체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멀리서 간간히 자동차 불빛들이 안개 속을 뚫고 나왔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쏟아내는 불빛을 전등 삼아 안개처럼 걷는다. 그러다가 밝게 번지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까워지는 어느 순간,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점점 선명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었다. 누군가의 호령에 맞춰 일부러 나타나게 된 것처럼. 순식간에 나타나는 풍경. 그러나 방대한 넓이와 아득한 높이의 폭포는 호령 소리에 불려 나올법한 순종적인 풍경은 절대로 아니었다. 흠뻑 젖은 채로 비와 안개 사이를 오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샤워를 하는 도중 갑자기 욕실 문이 열린 것처럼 당황스럽다. 이구아수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 600미터가 넘는 넓이와 50미터를 넘긴 높이의 폭포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을 만들만큼 방대하다. 1만 년 전부터 흘러내린 거대한 물줄기는 단 한 번도 쉬지 않았을 텐데 여전히 용맹스럽다. 그 용맹함을 전부 보려면 이구아수 폭포처럼 국경을 한 번 쯤 넘어야 가능하다. 초 당 7천만 톤의 물이 쏟아진다지만, 겨우 500미리의 물도 한 번에 마시지 못하는 나는 그 양이 얼마인지 가늠할 길이 없고, 그저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최대한 많이 마실 것처럼 입만 벌리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안개가 거대한 폭포를 삼켰다.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안개가 견줄 수 없이 거대한 폭포를 순식간에 감추어 버리다니. 말이 되는가? 벼랑 아래에서 올라오는 물보라는 가장 깨끗한 구름 같다. 분명 하늘은 흐리고 비가 흩어지는데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안개 속으로 폭포는 완벽한 마법처럼 사라졌다. 첫날은 그렇게 안개 속에서 배회하는 일로 잠깐씩 나타나는 폭포를 현실로 만났지만 여전히 상상 속 풍경 같다.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설명 없이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한 폭의 그림을 본 듯한 시간. 이처럼 산다는 것도 대부분 명확하지 않은 안개 속을 선명하지 않은 꿈을 찾아 열심히 밝혀나가는 일이 아닐까 한다. 여전히 안개는 걷히지 않고 거세게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저녁하늘로 사라져갔다.
사라지지 않는 열광
명확하게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던 밤. 도시에서 꾸던 꿈과는 달랐을 것이다.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던 네온사인 대신 깜깜하게 펼쳐진 허공 속으로 지구의 숨소리가 육중하게 들렸다. 그 소리가 심장 위로 쏟아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잠들기 전에 기도했던 것이 찬란하게 밝았다. 그 기도라는 것은 폭포처럼 거대한 것이 아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전 날 내린 비로 하늘은 더 없이 맑았고, 동양화 같던 흐릿한 날의 폭포는 방금 현상이 끝난 컬러사진처럼 선명하게 나타났다. 고작 이런 일로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있었다. 많은 어제의 사람들은 나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고 자만하며 강물에 미동도 하지 않는 유람선에 올랐다. 멀리 어제의 폭포가 화려하게 무지개를 이고 쏟아져 내린다. 그 곁에선 지금 현재가 가장 강렬하다. 아니다 모든 것들이 그럴 것이다. 가장 강렬하므로 현재일 것이다. 어제의 풍경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가까이 데려다 주는 유람선의 이름은 “안개 아가씨 호”였다. 그렇구나! 이곳에선 안개가 아가씨처럼 젊고 예쁜 것이라 변덕이 심해도 어쩔 수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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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하게 낙하한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오르며 바라보는 폭포는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밑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꿈처럼 피어오른다. 오전의 맑은 햇살도 세찬 물줄기에 튕겨 무지개로 피어오르고, 이름 모를 새들도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피어오른다. 떨어져 묻힐 것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풍경들은 피어올라 다시 하늘로 사라진다.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거대한 무리들이 한꺼번에 절규하며 추락하는 풍경. 하늘은 맑은데 벼락처럼 포효하며 추락하는 함성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 제외하고 모두가 고요하다. 고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고요한 시간. 사람들은 입을 닫고 가슴을 열어 폭포를 받아들인다. 기나긴 여정을 달려와 포효하며 추락하는 거대한 폭포가 생의 마지막 여행이라면 그것은 함성이 아니라 절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이 아픔이라 여겼다. 저 벼랑의 끝을 마지막으로 까마득히 추락하는 시간. 그 찰나의 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서 환한 얼굴을 본다. 이 거대함이 이 까마득함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단 한 번의 순간이 아니라 몇 만 년의 영원이라는 것을. 끝도 시작도 없이 무한하게 쏟아져 내리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것을. 그렇다. 절규하는 것은 아프지 않다. 다만,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픈 것이다. 먼 곳을 달려와 세차게 추락하는 그날의 함성. 나는 그것을 직접 들었으니 지금 보다는 커져야하리. 어제 보다 깊어져야하리. 내일은 더 넓어져야하리.
안개 아가씨 호가 장막처럼 펼쳐진 물줄기를 뒤로하고 멀어질 쯤. 사람들은 그제야 입을 열고 열광한다. 멀어져가는 폭포소리 보다 진한 함성. 쉽게 사라지지 않을 열광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 연속 온몸을 적신 수분이 도시의 네온사인 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알겠다. 방금 맞은 차가운 물줄기와 어제의 빗줄기는 내게 다르지 않은 크기다. 모두가 그곳에서 나를 적신 현실이므로 그렇게 세찬 물줄기가 온몸으로 흐른다. 가장 강렬한 오늘이 훗날 더욱 거세게 추억 속에서 살아날 것을 믿는다.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젖어 있을 것이다.
Tip 한 번쯤 나이아가라!
미국의 동북부 캐나다의 동남부 국경에 걸쳐 있는 나이아가라는 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둥소리를 내는 물줄기라는 뜻의 인디언 언어 “나이가르”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볼만한 절경이라고 말한다. 뉴욕 여행이나 캐나다 여행 때 함께 계획한다면 좋은 선택이 된다. 나이아가라는 비행기로 갈 수도 있고 기차나 버스로도 여행 가능하다. 공항이나 역 그리고 버스 터미널에서는 렌터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먼 거리를 직접 운전하는 여유로운 여행도 좋겠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만 방문할 계획이라면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1박 2일짜리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미국 측과 캐나다 측 두 곳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가능하다면 1박 2일의 일정으로 양국 중 한 국가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자.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는 유람선은 양국 어느 쪽에서 타도 상관이 없다. 이 밖에 셔틀 버스를 타고 폭포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관광 안내소에서 티켓을 사거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 미국달러를 사용할 때 1대1로 통용되므로 사용할 화폐는 현금인출기에서 쓸 만큼 찾아서 쓰는 편이 유리하다.
글, 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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