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변명”
변종모의 마음 속의 길 #9
비에이, 홋카이도, 일본 / Biei, Hokkaido, 北海道, Japan
눈의 정원
50년 만에 폭설이라는 뉴스를 들은 것은 비행기를 타기 몇 주 전이었다. 덕분에 홋카이도에 내린 눈은 이미 온몸에 뿌려진 것처럼 실감 나는 소식이었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어쩌다 눈이 한 번이라도 내리는 겨울이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곤 했다. 찔끔거리는 눈이라도 보는 해에는 제대로 된 겨울을 맞았다거나 행운을 맛보는 느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리는 눈은 오로지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들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더는 사랑을 믿지 않던 나이에는 더욱 그랬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간절해지는 몇몇이 있다. 가령, 약속 없는 날 오후에 마당 가득 내리는 소나기나, 특별한 날에 예고 없이 내리는 눈이거나, 낯선 거리에서 훅 밀려드는 따뜻한 바람들 말이다. 모두가 생각해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마음의 공허에 채워지는 것들은 간혹 이런 식으로 날씨에 영향을 받곤 한다. 1년의 절반이 눈으로 덮인 곳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오래도록 희망하고 바라던 풍경으로 살게 될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말이다.
아주 어릴 적 유례없이 폭설이 내렸던 적이 있다. 신이 나서 친구들과 손을 호호 불며 골목을 돌아다니다 다 같이 학교운동장을 생각해냈다. 드넓은 운동장에 눈이 쌓인 모습을 상상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새하얀 눈을 먼저 밟으려 내달렸다. 그러나 동내 바보라 불리는 사내가 우리보다 먼저 눈의 정원을 밟고 있었다. 하굣길에 가끔 보이던 사내였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 보이지 않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이유로 어른에 가까운 존재였다. 병약한 어린이처럼 야윈 몸집에 나이 보다 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였던 것 같다. 우리가 또는 내가 말하는 바보라는 단어 안에는 어쩌면 철저하게 외로움을 담아놓은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이들은 일제히 학생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며 사내에게 눈 뭉치를 던졌다.
쫓겨나다시피 눈의 정원에서 밀려난 사내는 담벼락 근처에 홀로 앉아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친구들과 눈싸움에 흥미를 잃은 나는 사내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일종의 죄의식일 수도 있었겠다. 사내가 만들고 있었던 것은 눈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얼굴. 누구의 얼굴인지는 모르지만 눈이 있고 코가 있고 크게 웃는 입이 있었다. 공들여 만들어 놓았지만 섬세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낙서처럼 부실했다. 누구냐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나냐고 물었던 것 같다. 사내는 눈처럼 하얗게 웃으며 정성스럽게 만든 눈의 얼굴을 가리키며 나라고 했다. 사내가 그렇게 한 말이 거짓인지, 온전한 마음으로 말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린 마음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에게 눈을 던진 사람의 얼굴을 하얗게 웃는 얼굴로 만들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순전히 나와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하고 돌아섰던가? 아니면 어떠한 행패라도 부렸을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설령 사내의 거짓이나 마음 없이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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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 때마다 남루한 그 사내가 떠올랐다. 쪼그리고 앉은 등에 내려앉은 새하얀 눈과 더러운 신발과 얇은 옷 그리고 멀리 아이들이 뛰어놀던 풍경. 그때 사내가 눈의 정원에서 만들고 있었던 나의 환한 얼굴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드넓은 언덕 같았을까? 상상 속에서만 꿈틀거리던 눈의 정원과 얼굴과 사내와 새하얗거나 희미한 모든 것이 눈과 함께 온다. 눈은 한 번도 그냥 홀로 온 적이 없다. 그때의 사내보다 곱절로 늙어버린 내가 지금 거대한 눈의 정원에 서 있다. 사선으로 내리다가 쓸려가듯 몰아치는 눈의 힘은 날카롭다. 과거의 눈처럼 부드럽지 않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모두가 부드러운 순백인데 바람이 데려오는 눈은 매섭다. 둥근 눈의 언덕에 회색으로 펼쳐진 하늘과 누군가 빠르고 정확한 손목의 힘으로 빗금을 긋듯 내려치는 눈. 잘못한 것이 있다면 순식간에 이 엄청난 눈에 묻혀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이곳은 온통 진실처럼 하얀 언덕이다. 드넓은 눈의 정원이다. 하지만 진실은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날 사내가 만든 얼굴을 곱게 바라만 봤는지 사내를 힐난하며 돌아섰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떠한 식으로든 표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던 것만이 사실이다. 때로는 거짓말보다 더 나쁜 일이 침묵하고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 사내의 나이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알 것 같았다. 욕망 가득한 몸 위로 거세게 눈이 내린다. 아무래도 이렇게 사납게 내리는 눈발 앞에서 거짓을 떠올리는 일은 두려움이다. 그 얼굴은 정말 나의 얼굴이었을까?
눈의 설교
밤새도록 눈이 내렸다. 북해도에 연간 6m의 눈이 온다는 운전기사의 말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설 잠을 깬 새벽에는 숙소 창 너머에서 커다란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는다. 눈의 인기척이라고 생각했다. 소리 낼 방법 없이 쌓이기만 하는 몸은 가끔 타인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소리를 낼 것이다. 들리든 들리지 않던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하얀 풍경에 파묻고 싶은 나의 치부들이나 적절치 못한 과거들을 생각을 해내는 음흉하고 이기적인 새벽.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순수하다고 표현하기엔 나는 순수의 경험이나 기억이 없어서 그냥 깨끗하다는 단어를 품고 하늘로 이어지는 하얀 능선을 바라보며 굵은 침을 삼켰다. 그 심정은 순수함도 모르는 순진함이었다고 치부해야할 것이다. 순수함도 거치지 못했으니 백치에 가까운 순진함이라 해야겠다. 한 번도 짓밟히지 않은 풍경을 한 그루 나무처럼 서서 바라보는 마음은 순진한 동내 바보처럼,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사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같았다. 순백의 풍경 앞에 어찌할지를 몰라서 두어 번 침을 삼키고 난 심장은 얼어붙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하얗기만 한데 그 모호함을 구분하기 위해 간혹 신비한 자태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거나, 아니면 하늘과 땅의 경계에 철조망처럼 군락을 이룬 나무들이 풍경의 전부였다. 주변이 하얗다는 이유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아름답거나 신비로움에 가까워 보였다.
매시간 사정없이 추위가 몰아닥쳤고 얼어붙은 심장에서는 눈의 비늘이 흩날렸다. 저기 멀리, 둥근 능선에서도 눈의 비늘이 햇볕에 부서지고 있다. 심장이 바깥으로 노출되어 눈가루를 맞는 것인지 하얀 능선이 내 속으로 들어와 떨리게 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차가운 눈의 비늘에 심장이 데인 것처럼 화끈거리는 시간. 발목에 금이 가도록 시린 온도는 더욱 단단하게 풍경들을 동여매는 역할을 하는 이유로 겨울은 더욱 혹독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잔인하다. 이런 생각도 이런 추위도. 이렇듯 분간이 되지 않는 풍경이란 꿈속의 꿈처럼 경계가 혼란하다. 하얀 도화지를 꺼내어 아무것도 그릴 게 없다면 이 언덕이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물감이라도 한 줄기 흘린다면 또한 지금의 풍경이다. 의도할 수 없고 의도하지 않은 풍경들이 세상에는 많지만 이렇게 단조롭고 순수한 풍경이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쉬운데, 가장 쉬운데 쉽지가 않다. 인간의 욕망이 닿지 않은 곳. 그래서 아무것도 가해지지 않았고 누구도 섣불리 먼저 나서서 망치지 못한 풍경이 평온하게 추위에 떨고 있었다. 이 모든 추위와 새하얀 풍경을 합치면 겨울의 따뜻함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추위에 떨었지만 추위를 불평하지 않았다. 심장에서 날아오르는 눈의 편린들이 그토록 나약하고도 엷은 것이라,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추위쯤이야 오로지 자기 일로 자책한다. 외부의 요인으로 감정이든 감각이든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들이 흐트러져 내 발자국이 깊어질까 두려웠다.
혹독한 추위를 마주하고 서서 눈의 설교를 듣는다. 누군가의 험한 말이나 누군가의 의도된 계획 아래 부림을 당하며 놀림 받는 바보는 괴롭지 않다. 순수를 순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스스로 괴로운 것이다. 사람들은 괴롭지 않기 위해서 괴롭힘을 일삼는다. 타인의 흰색을 그냥 두지 못한다. 우리가 바보라고 불렀던 사내는 확실히 순수하지 못한 환경을 견뎌낸 것이다. 지금쯤 세상의 시달림으로 그의 외로움이 저 능선보다 더 커졌을까?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깨끗하게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을까? 순수함이라든지 순진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음흉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이다. 이 언덕 앞에서는. 물리적인 깨끗함을 넘어 완벽한 순수. 여기서 잠시 멈췄으니 이제 나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 내가 알지 못하던 내 마음을 일깨우는 일만이 지금의 길 위에서 배울 일이라 생각했다.
이 풍경 안에서는 마음에 걸려있는 조그만 티끌 하나라도 흘려서는 안 될 것 같지만, 지금 여기서 전부를 꺼내지 않으면 영원히 추운 겨울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꺼내놓아야만 가벼운 마음으로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조그만 잘못이나 실수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날들이 쌓이면 이렇듯 오래도록 묵직하게 따라다닌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비단, 어린 시절 의도하지 않은 마음의 표현도 그런데, 알고서 행한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오래도록 마음의 찌꺼기가 되어 떨어지지 않을까?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굳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본들 아무리 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난다 한들 소용 있을까?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싫은 것들을 싫다고 말하며, 잘못을 미안하다 사과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대하는 일. 새하얗게 펼쳐진 눈의 능선을 바라보며 다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라 생각했다.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 큰 소리를 내며 부러질 때, 그때 겨우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
나는 아름답게 펼쳐진 새하얀 설국의 정원에서 오래도록 떨며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이 될 줄 알았을까? 50년 만에 내리는 폭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급해졌던 이유였을까? 오늘 밤 꿈에 외로움을 가득 짊어진 순진한 얼굴의 사내가 나왔으면 좋겠다. 따뜻하게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고 이 커다란 눈의 정원을 잠시라도 함께 돌아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Tip : 설국으로 향하는 길
홋카이도로 가는 비행편은 비교적 자주 있으나 비에이 근처의 아사히가와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은 겨울에는 부정기적이다. 차를 빌리면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평범한 시골 동네 같은 규모지만 겨울철 운전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숙소는 비에이역 근처의 호텔이나 근처의 호텔들이 몇 있지만 예약을 서두르는 편이 낫다. 특히 여름철 개화시기에는 몇 달 전부터 숙소예약이 마감되기도 한다. 간혹 일본전통가옥에서 민박을 예약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미리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출발할 때는 공항이나 렌터카 업체에 비치되어 있는 지도를 내비게이션과 함께 활용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루트로 원하는 풍경을 만날 수가 있다. 이른 새벽 동이 틀 때나 저녁노을을 감상하려면 생각보다 더 철저한 방한장비를 갖추고 나서야 한다. 시중에 파는 핫팩이나 방한장비는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식사는 주로 호텔에서 조식이나 석식을 예약하거나 비에이 시내에 있는 식당들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지만 비에이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명 카페나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것 또한 그곳 여행의 매력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2,077m의 대설산 케이블카를 타고 풍경을 감상하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하다. 이 밖에도 지역의 특성상 겨울 스포츠를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다. 비에이에서 홋카이도까지 기차로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예상하면 된다.
글, 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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