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월드컵 우승’ 조명우, 그의 시대는 이제부터다
더이상 ‘당구신동’아냐…본격 승부는 이제부터
야스퍼스 산체스 허정한 김행직 등 국내외 강호 즐비
“목표는 세계챔피언” 조명우 행보에 기대
조명우가 최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3쿠션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24세인 조명우는 국내는 물론 세계3쿠션을 이끌어갈 중요 자산이다. “세계챔피언이 목표”라는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사진은 지난 2019년 LGU+3쿠션마스터즈 결승에서 사이그너를 꺾고 우승한 후 관중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는 조명우. (사진=MK빌리어드뉴스 DB) |
역시 ‘당구황제’ 브롬달의 눈은 정확했다.
브롬달은 지난 11월 MK빌리어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야스퍼스, 산체스 뒤를 이을 선수를 묻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한국의 김행직 김준태 조명우를 꼽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 조명우(24, 실크로드시앤티)는 마침내 3쿠션월드컵 정상에 섰다. 당구팬들에게 새로운 슈퍼스타 탄생을 알린 순간이다.
조명우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당구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조지언 씨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당구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얼마 안가 ‘당구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당구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수원 매탄고에 진학하고 나서는 ‘당구신동’ 행보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매탄고는 김행직 김준태 등 당구스타를 배출한 ‘당구사관학교’다. 조명우는 국내외 주니어무대를 평정했다.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에서 세 번(2016, 18~19년) 우승컵을 들었다. 김행직의 4회 우승에 결줄 만한 대단한 성과다. 이런 조명우에게 주니어무대는 너무 좁았다. 2017년 5월 성인무대에 데뷔, 불과 석달만인 8월 대한당구연맹회장배에서 우승했다. 국내 최연소(19세) 우승이다.
2019년 조명우는 화려하게 비상했다.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전국대회에 9번 출전, 5번 우승했다. 그해 말 최연소(21세8개월) 국내1위에 올랐다. 종전 기록은 조명우 매탄고 6년 선배인 ‘당구천재’ 김행직의 23세1개월이다. 8월에는 LGU+3쿠션마스터즈(우승 8000만원) 결승에서 세미 사이그너(튀르키예)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10월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에선 우승(통산 3번째)으로 마지막 주니어 무대를 멋지게 장식했다.
국제무대에서도 이미 조명우는 무서운 신예였다. 2016년 구리3쿠션월드컵에서 역대 최연소(18세)로 4강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3번 더 4강무대를 밟았다. 이 무렵 조명우는 산체스가 보유한 최연소 3쿠션월드컵 우승 기록(1995년 21세)을 깰 유력한 후보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조명우 기세로 봐서는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맹부삼천’ 아버지 조지언씨 명우 우승후 한없이 눈물
“강압적 훈련 묵묵히 따라준 아들, 안쓰럽고 미안”
그러나 결국 최연소 3쿠션월드컵 우승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다. 공격력은 세계 정상급이지만 기복있는 플레이와 결정적인 순간 멘탈이 흔들렸다. ‘코로나19’로 주요 대회가 무산돼 기회자체가 날라간 것도 컸다. 무엇보다 야스퍼스, 브롬달, 산체스, 자네티 등 세계3쿠션을 주름잡는 톱플레이어들이 버티고 있었다.
22세인 2020년 8월10일 군에 입대했다가 1년6개월 후인 2022년 2월 전역했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예전 실력을 회복하느냐였다. 첫 복귀전인 2월 튀르키예 앙카라3쿠션월드컵을 비롯 여러 국내외 대회에 나갔으나 우승권에는 들지 못했다. 다만, 경남고성군수배에서 윤도영과 짝을 이뤄 복식우승한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그리고 11월 강원도 동해에서 열린 ‘제74회 세계3쿠션선수권’. 전세계 강호 48명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조명우는 ‘예전 조명우’로 돌아왔다. 비록 16강전에서 세계1위 야스퍼스에 패했지만 전매특허인 폭발적인 장타 능력이 되살아났다.
당시 파룩 바르키 세계캐롬연맹(UMB) 회장은 기자에게 “부락 하스하스, 그웬달 마르쉘 등 차세대 주자들이 성장해서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조명우가 군복무 전 실력으로 돌아와 기쁘다”고 말했다. 전세계 3쿠션 수장마저 ‘돌아온’ 조명우를 반겼다.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곧바로 열린 ‘동트는동해 전국당구대회’에서 조명우는 군제대 후 첫 우승컵을 들었다.
‘예열’을 마친 조명우는 마침내 이집트에서 일을 냈다. 12월 샤름엘셰이크3쿠션월드컵에서 강호들을 연파하고 정상에 선 것. 청출어람이랄까. 결승 상대인 ‘사부’ 산체스가 안아주며 우승을 축하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회에서 조명우는 완벽했다. 9경기 평균 애버리지가 2.144에 달했다. 특히 주요 길목에서 한국선수들의 발목을 잡아온 세계 1, 2위 야스퍼스와 산체스를 연거푸 세 번이나 꺾으며 거둔 성과다.
조명우가 우승한 날 아버지 조지언 씨는 아들과 통화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너무 장하고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지독하리만치 강압적으로 훈련시켰다. 어린 명우는 묵묵히 따라줬고, 그런 아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당구 기(氣)를 받기 위해 당구대 위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집에 TV와 컴퓨터를 두지 않았습니다. 당구에 전념하기 위해서였죠.”
방 한칸 짜리 원룸에 살며 냉장고와 TV는 없어도 당구테이블은 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하루 13시간을 당구에 쏟아부었다. 아버지는 조명우에게 학창시절은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담배도 끊었다. 혹시 명우가 배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성인 되고 나서 그러대요.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라면 못갈 거 같다”고요.
아버지는 명우 당구를 위해 안산에서 수원으로, 다시 서울로 이사했다. 당구판 ‘맹부삼천지교’다. 혹자는 조명우를 훌륭한 재능을 갖춘 ‘당구신동’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이렇게 혹독한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조명우는 새로운 스타 등장을 기다려온 세계3쿠션계에게 단비같은 존재다. 이제 장도를 시작했다. 더이상 ‘당구신동’이 아니다. 앞으로의 여정도 꼭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브롬달, 야스퍼스, 산체스, 자네티 등 ‘당구도사’들은 쉽게 왕좌를 내줄 생각이 없다. 조명우에겐 국내 무대가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3쿠션월드컵 ‘우승 선배’인 최성원 허정한 김행직은 물론 김준태 서창훈 이충복 차명종 황봉주 최완영 등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누가 이기고 지든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대들이다.
더 무서운 세력이 있다. ‘제2의 조명우’를 꿈꾸는 정예성 손준혁 박정우 고준상 김태현 등 후배들이다. 이들에게 조명우는 롤모델이자 넘어야할 산이다. 선배들이 그 동안 조명우와 경기에서 가졌던 부담감을, 앞으로는 조명우가 후배들과의 경기에서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우 시대는 막 시작됐다. 세계챔피언이 목표인 그의 여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