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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삐삐밴드가 있다면 미국엔 가비지가 있다

스쿨오브락-160

음악인 박진영은 성공한 음악 프로듀서로는 한국에서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박지윤 비 원더걸스 별 트와이스를 비롯한 수많은 가수 음반을 제작해 스타로 만들었다. 지난해 걸그룹 ITZY를 제작했는데 ITZY가 대한민국 걸그룹 최단기간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 것을 볼 때 그의 타고난 제작 감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1995년 '날 떠나지마'의 충격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데뷔했던 그는 아직도 현역 활동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정규 앨범 발매는 13년 전인 2007년이 마지막이었지만 올해도 선미와 함께 'When We Disco' 듀엣 싱글을 내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수로서의 실력 또한 여전하다. 2선에서 다른 가수의 음반을 제작하는 것도 물론 보람 있지만 무대 위에 올라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갈증은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앞서 너바나(Nirvana)의 '네버마인드(Nevermind)' 음반이 마이클 잭슨을 밀어내리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고 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음악계 '시애틀 그런지'라는 새 조류가 몰려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앨범 제작을 맡은 사람은 부치 빅(Butch Vig)이라는 세계적인 제작자였다. 빅은 네버마인드의 대흥행과 함께 단숨에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떠올랐다. 많은 신흥 밴드들이 그와 함께 앨범을 만드는 것을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생각하고 빅을 찾았다. 하지만 빅은 네버마인드의 대흥행 이후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지기를 꿈꿨다.


이 밴드는 1994년 듀크 에릭슨(Duke Erikson) , 스티브 마커(Steve Marker), 부치 빅(Butch Vig)등 3명의 미국 남성과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 보컬리스트 셜리 맨슨(Shirley Manson)에 의해 결성됐다. 이해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시기다.


이전 10년간 친분이 있었던 3명의 남성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음악 작업을 하며 본인들만의 밴드를 하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리고 장비를 활용해 여러 시도를 하던 중에 초창기 작업을 놓고 "이건 마치 쓰레기(Garbage) 같다"고 한탄한 것에서 밴드 이름을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빅이 보컬이었지만 이들은 참신한 여성 보컬리스트를 구해 마이크를 맡기자는 것에 합의한다. 마침 '엔젤피시(Angelfish)'라는 곳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셜리 맨슨을 알게 된다. 1994년 4월 오디션을 본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맨슨을 팀의 일환으로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10년 넘게 호흡을 맞춘 3명의 친구와 맨슨이 물에 기름이 섞이듯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함께할 만큼 맨슨의 보컬은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것이 '신의 한수'였음이 드러났다. 밴드가 인기를 얻은 이유 중 상당수가 맨슨의 개성 어린 보컬과 무대 매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빅은 얼터너티브 음악의 질을 계승하되 좀 더 트렌디하고 색다른 음악을 해보길 원했다. 그런 측면에서도 맨슨의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맨슨은 초기 색깔이 없었던 가비지의 음악 방향을 정립하는 데 막강한 역할을 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톡 쏘는 까칠한 언니' 콘셉트다. '난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날 건드리면 부셔버리겠다' 정도가 맨슨의 캐릭터로 정리된다. 맨슨은 가비지 작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단정적이고 분명한 어투의 직설적인 가사로 밴드 인기몰이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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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맨슨 /사진=위키피디아

맨슨은 안타깝게도 청년기가 불우했다. 학대와 구타로 얼룩진 시절을 보내며 학교도 중퇴했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매우 공격적이었지만 때로는 무기력했고 또 어떤 때는 귀여움의 극치를 보여줬다. '예측 불가능'으로 밴드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짙은 화장과 헝클어진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 삐삐밴드의 이윤정 같은 캐릭터였다(이윤정보다 노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했다. 이윤정은 아예 노래를 못하는 콘셉트를 위해 발탁한 멤버라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밴드 '가비지'의 특성은 4명의 멤버가 공동으로 작곡을 하고 프로듀싱까지 한다는 점이다. 맨슨은 가비지에 들어오기 전에 곡을 써본 적이 없는 보컬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점이 가비지의 색깔을 신선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들의 데뷔 스토리도 '한 방'이 있다. 빅은 빨리 인기를 얻기 위해 '쉽게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1994년은 커트 코베인 추모 열기로 전 세계가 뜨거웠던 한 해다. 만약 빅이 자기 이름을 걸고 앨범을 내놨으면 '네버마인드를 프로듀싱한 전설의 그 인물'이란 평판에 힘입어 밴드를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빅은 자기 이름은 쏙 뺀 채 데모테이프를 여기저기 돌리며 끝내 영국에서 인기를 끄는 데 성공한다. 밴드가 처음 녹음작업을 끝낸 'Vow'란 곡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곡은 영국에서 인기를 끌다가 미국으로 역수입되는 스토리를 만들며 밴드 역시 기반을 잡는다. 1995년 나온 데뷔앨범 '가비지(Garbage)'는 놀랍게도 400만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단숨에 인기 밴드로 도약한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록을 좀 듣는다는 중·고등학생들이 이어폰으로 가비지 음악을 들으며 청소년기의 분노를 달래곤 했다.


1998년 나온 후속 앨범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잠시간의 해체 기간을 거쳐 2005년 나온 네 번째 앨범 역시 공백 기간이 무색할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앨범 투어 중 밴드는 '무기한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수면 아래로 침잠한다. 시간이 흘러흘러 이제는 마니아만 아는 밴드가 되었지만, 지금 찾아 듣는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매력이 있다. 궁금한 사람은 지금 유튜브에서 노래를 들어보자.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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