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시즌2`가 차별화된 좀비물인 5가지 이유
시즌1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킹덤 시즌2'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장인들이 만날 때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증명한 최상의 결과물이다. 장르물의 선구자인 드라마 작가 김은희와 영화감독 김성훈, 박인제가 참여해 고퀄리티로 완성해냈다.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니시리즈이지만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대단해 5시간짜리 영화처럼 느껴진다.
외국에서도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사극의 관습을 파괴한 작품"이라고 했고, 영국 가디언 주말판 옵서버는 "뱀파이어와 비슷하게 인육을 먹는 속성을 추가함으로써 좀비 신화를 비틀었다"고 썼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코로나 팬데믹에 빗대 "킹덤 시즌2를 보면 코로나는 그저 지독한 바이러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며 "최고의 좀비쇼인 킹덤 시즌2는 '워킹데드' 초반부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훌륭하다"고 평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래 관심이 높아진 한국 영상 콘텐츠에 대한 기대를 '킹덤'이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킹덤'이 기존 좀비물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킹덤 시즌2'는 어떻게 진화했는지 다섯 가지 포인트로 정리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좀비물과 정치사극의 결합
킹덤 시즌2 |
좀비물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인간사회의 계급, 계층 등 수직적 구조를 허물어 날것 그대로의 약육강식 세계를 구현한 아비규환의 상상력, 처음엔 소수이던 좀비들이 주요 등장인물을 감염시키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때의 스펙터클이다. 한 번 좀비가 되면 돌이킬 수 없고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더라도 자신이 살기 위해선 죽여야 한다. 그래서 좀비영화의 플롯은 단순하고 인간관계는 비정하다. 권력 전복이 주는 쾌감이 좀비영화의 매력이다.
'킹덤'은 여기에 정치사극의 면모를 추가했다. 좀비는 피를 탐하고 궁궐 내 신하들은 혈통을 강조한다. 드라마는 이 둘을 섞는다. '킹덤'은 고어 장면 가득한 막무가내 좀비물이면서 동시에 정치사극의 길도 잃지 않는다. 권력암투가 역병이 도는 원인이 되고 또 역병으로 인해 권력자가 뒤바뀐다. 단순히 좀비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흥미진진한 전개가 또 다른 긴장감을 조성한다.
경상도 지방에서 역병이 창궐해 상주, 문경새재 등이 초토화된 와중에도 한양 도성에선 한가롭게 고위 관료들이 모여 차기 왕의 혈통을 따지고 있다. 역병을 걱정하는 신하에게 머리 희끗한 대신은 오히려 "한가롭게 무슨 소리냐"며 면박을 준다. 하지만 역병에 걸린 좀비들은 피를 가리지 않는다. 임금의 피든 노비의 피든 똑같은 피일 뿐이다. 좀비물의 법칙에 따라 면박을 준 대신은 가장 먼저 좀비가 된다. 혈통과 계급을 철저하게 따지던 이들이 모두 같은 흰색 상복을 입고 좀비가 되어 붉은 피를 온몸에 묻히고 달려들 때 조선은 비로소 평등사회가 된다.
박인제 감독은 여러 매체들과의 공동 영상 인터뷰에서 "세자의 상복에 피칠갑을 해서 곤룡포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덕분에 세자는 좀비들 사이에서도 왕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병의 공포 앞에서 곤룡포와 상복은 아무 차이가 없다.
좀비가 되는 원인을 제시한 신선한 설정
킹덤 시즌2 |
기존 좀비물은 대부분 좀비가 되는 원인이 불분명했다. 누군가 이미 좀비가 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이 제시되더라도 실험실에서 발생한 특수 화학물질 등 과학자의 탐욕이 다수였다.
그런데 '킹덤'은 좀비가 되는 원인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생사초라는 풀이 있고 이것으로 되살아난 왕이 인육을 먹어 역병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톱다운 방식 전파인데 기존 좀비물에 드문 설정이다. 시즌1에서 왕이 백성을 물어뜯어 퍼진 역병은 왕이 총애하던 세자를 궁지로 밀어넣는다.
시즌2는 이러한 톱다운 방식 전파의 틀을 유지하면서 살짝 비틀었다. 해원 조씨 가문의 중전이 권력 찬탈 야욕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다 죽자"며 궁궐에 좀비를 풀어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톱다운 방식의 역병 전파이고 권력 탐욕이 부른 파국이라는 점에서 시즌1과 비슷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시즌1에선 백성들이 좀비가 됐다면 시즌2에선 고위 신하들과 사대부들, 심지어 중전까지 좀비가 된다. 계급장 떼고 오직 피를 먹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 더 극명하게 보여진다.
시즌2는 좀비가 되는 원인을 제시한 것과 더불어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좀비에게 물려도 뇌가 잠식당하기 전 물에 빠지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은 세자 이창(주지훈)이 좀비에게 물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볼 수 있게 됐고 플롯은 조금 더 입체적이 됐다.
작은 것이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 전복
킹덤 시즌2 |
권력 전복에서 오는 쾌감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는 소재와 인물에서도 드러난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은 작고 하찮은 인물을 통해 밝혀지고, 대단하다고 여겨졌던 인물들은 어이없이 퇴장해 버린다. 절대적일 것 같은 권세는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데 위기는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상주, 문경새재에서 한양까지 온세상을 뒤집어버린 역병을 일으킨 원인은 작은 벌레로 밝혀진다. 이창은 이렇게 말한다. "고작 이 작은 벌레였단 말이냐." 인간을 생사역(좀비)으로 만든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작은 풀 생사초였다. 이 모든 것을 밝히는 이는 스스로 "하찮은 계집"이라고 칭하는 의녀 서비(배두나)다.
반면 그럴 듯하게 폼잡고 등장하는 큰 인물들은 오히려 하찮아진다. 막강한 해원 조씨 가문의 영의정(류승룡)과 중전(김혜준)은 권력 탈취에 눈이 멀어 사람들이 다 죽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최후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고위 신하들은 누구에게 줄 설지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전부 좀비가 되어 뛰어다니기에 급급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해원 조씨 가문에서 최후의 생존자는 가장 유약하고 미숙해 보이는 범팔(전석호)이다. 겁 많고 소심하고 시끄러운 범팔은 진중하고 긴박한 장면이 많은 드라마에서 밉지 않은 가벼움을 담당해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준다.
또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부하 무영(김상호)이 사실은 배신자로 밝혀지고, 그 아들은 왕의 혈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이 된다는 것도 권력 반전이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강렬함
킹덤 시즌2 |
좀비물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많다보니 수평 트래킹 숏이나 핸드헬드를 사용한 수평적인 움직임이 다수다. '킹덤' 역시 많은 장면이 수평적 움직임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킹덤 시즌2'에는 수평 구도의 단순함을 깨는 수직 구도가 곳곳에 등장한다. 드라마 초반 공성전을 벌이는 장면의 익스트림 부감 숏을 비롯해 높은 산새를 활용한 수직 구도가 눈에 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인 6화에선 수직 구도를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강렬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궁에서 좀비들에게 쫓기던 세자 일행은 지붕 위로 올라간다. 기와 지붕을 달리는 파격적 좀비 추격 신이다. 앞뒤로 포위된 세자는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칼로 지붕을 뚫어 좀비들을 추락시킨다.
압권은 얼어붙은 비원에서 세자가 주먹으로 얼음을 깨는 장면이다. 수직구도의 임팩트가 극대화돼 있다. 이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말겠다는 세자의 의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좀비가 되어 달려오는 대령숙수를 백드롭해 얼음을 깨뜨리고 물 아래로 추락한다. 이 장면의 수직 구도를 통해 드라마는 풍부한 비주얼을 얻었고, 스토리상으로도 세자가 과연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을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반복된 수평적 움직임 끝에 결정적 장면을 수직 구도로 장식함으로써 드라마는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매회 긴장감을 유발하는 주요 인물들의 퇴장
킹덤 시즌2 |
시즌1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 시즌2에서 하나씩 사라져간다. 세자의 스승 안현대감(허준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배신자가 된 무영(김상호), 무자비하게 왕권을 노리던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와 중전(김혜준) 등이 에피소드마다 사연을 남기며 퇴장한다. 이들이 후반부에 동시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6개 에피소드에 걸쳐 사라지는 모습이 골고루 배치됨으로써 시청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매회 집중하게 된다.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비슷한 방식의 임팩트 강한 퇴장이다.
허준호는 퇴장 이후에도 허를 찌르는 재등장으로 자칫 루즈해질 뻔한 극에 활력을 불어넣고, 김혜준은 궁지에 몰려도 절대 굽히지 않는 카리스마로 시즌1의 연기력 논란을 만회한다.
양유창 기자 sanity@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