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얼굴도 못봤는데…`탈모 진료비` 고무줄 청구
"1개월치 만원입니다"
탈모예방약을 처방 받으러 동네 병원에 간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간호사가 원하는 약을 물은 뒤 의사 진료 없이 바로 처방전을 내준 것이다. 진료를 요청하고 의사에게 3개월치를 처방해달라고 한 A씨는 병원비를 수납하며 한번 더 놀랐다. 병원 측이 1개월치의 3배인 3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6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프로페시아 등 탈모예방약을 처방받으러 온 환자들에게 일부 병원이 진료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내주고 있었다. 환자들이 보통 먹던 약을 계속 먹고 대부분 부작용이나 예후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경각심 없이 처방전만 내주는 것이다.
"실제로 경험하는 부작용은 미미하다"는 게 환자들의 대체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탈모 환자 석 모씨(36)는 "요즘은 약이 좋아졌는지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몸에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디씨인사이드 탈모갤러리 등 탈모환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탈모약은 그냥 아스피린 수준 아니냐?" 등의 반응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탈모예방약을 처방하는 의사 B씨는 "낮은 확률로 성기능이 소폭 저하될 수 있지만 탈모약은 부작용이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심리적 요인(노시보 효과)이 크다"며 "부작용을 경험하더라도 수개월 뒤면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탈모 환자들은 형식적인 진료에도 진료비 및 처방전비를 지불해야 하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복약기간에 따라 비용을 달리 받는 점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탈모갤러리에는 "처방전비가 너무 아깝다", "동네 병원에서 처방전비 1만2000원씩 나오던데 정상이냐", "처방전 주는데 날짜에 맞춰 비용 달라지는게 맞냐?" 등 불만을 토로하는 글은 하루에도 수십 건이 올라온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1달치 만원, 3달치 3만원 등으로 처방하는 양에 비례해서 병원비를 많이 받고 있다. 병원비도 3개월치 기준 5000원~4만원 등으로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비급여 진료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진료비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값도 약국마다 다르다.
대학생 등 아직 돈을 벌지 않는 가난한 탈모 청년들은 가격이 싼 병원과 약국을 찾아 원정을 다닌다. 종로에 있는 ’ㅂ' 의원 등 소위 '탈모성지'로 불리는 병원들은 탈모를 앓는 남성 환자들로 문전성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해외배송 지연으로 증가세가 꺾이긴 했지만 해외직구로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약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탈모 예방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반드시 처방전이 있어야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 약사 C씨는 "탈모 예방약은 성호르몬제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의사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관계자도 "남용 위험 등을 고려해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심평원 관계자는 "노화로 인한 탈모는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어 건강보험법상 비급여로 분류돼있다"며 "병원마다 들쭉날쭉인 가격을 통일하려면 법을 바꿔 급여대상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한편 7월 의협은 코로나19 사태로 전화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을 악용해 비대면진료로 탈모예방약을 처방한 의사 2명을 고소한 바 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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