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는 왜 늘 똑같은 자세로 트로피 ‘번쩍’ 들어올릴까
걸어다니는 광고판인 프로 골퍼들10개 넘는 기업과 계약 체결하기도어떤 기업의 후원을 받는지는 자존심의 문제
시계 후원 계약은 톱골퍼의 특권
우즈·매킬로이·임성재·김주형
명품 시계 브랜드 앰버서더로 활동
통산 82승에 빛나는 타이거 우즈는 늘 같은 자세로 우승 트로피를 든다. 트로피를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쪽 가슴 앞에 세우는 것이다. 인터뷰할 때도 주로 왼쪽 팔꿈치를 탁자위에 올리고 왼손으로 턱을 괸다. 팔짱을 낄 때도 왼손이 위로 올라가도록 한다.
이것이 단순한 습관일 뿐일까? 아니다. 철저히 의도된 행동이다. 우승컵을 들러올리는 순간, 인터뷰하는 동안 왼손목에 찬 시계가 카메라에 가장 잘 잡히도록하려는 프로다운 자세인 셈이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타이거 우즈. |
타이거 우즈 뿐 아니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임성재(25), 김주형(21), 넬리 코다(미국) 등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대표하는 톱랭커들은 경기가 끝난 뒤 공통적으로 가장 먼저 후원 계약을 체결한 브랜드의 시계를 착용한다. 스코어 카드 접수처 앞에서 캐디들이 시계를 꺼내놓고 기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폰서 로고로 채운 톱골퍼들은 걸어다니는 광고판으로 불린다. 따로 로고를 부착하지 않는 스폰서까지 포함하면 10개가 넘는 기업들과 후원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도 많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자와 의류 외에도 특별한 스폰서 계약이 있다.
그중에서도 프로 골퍼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시계 브랜드와의 후원 계약이다. 명품 시계 업체들이 후원 선수를 선택하는 기준이 높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몇몇 선수들만 롤렉스와 오데마피게, 리차드밀, 오메가 등 명품 시계 브랜드와 계약을 체결한다.
선수마다 계약 조건은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이 금액이 아닌 시계 등을 지원받는다. 명품 시계 브랜드의 경우 시계 하나에 수천만원인 만큼 선수 본인과 가족 등에게 시계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후원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매니지먼트 한 관계자는 “명품 시계 브랜드에 시계를 제외하고 따로 돈을 받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5개 전후로 시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계 브랜드에서 선수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는 공식 행사에 시계를 착용하고 참석하는 것이다. 공식 행사에는 시상식과 기자회견 등이 포함된다. 단 예외도 있다. 시계를 착용하고 경기를 치를 수 없는 만큼 시계 브랜드에서는 선수들이 라운드할 때를 공식 행사에서 제외한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참석하는 모든 일정에 시계를 착용해야 하는 만큼 캐디들이 스코어카드 접수처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PGA 투어의 한 캐디는 “시계 브랜드와 후원 계약을 맺은 선수들의 경우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따로 시계 착용에 대한 내용을 전달한다”며 “선수들 역시 스폰서와 맺은 계약 규정을 지켜야 하는 만큼 경기가 끝나자마자 시계를 준비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후원 계약을 체결한 선수가 시계를 착용하지 않고 공식 행사에 참가하면 어떻게 될까. PGA 투어의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계약서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약금 등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일부러 경쟁사의 시계를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수와 캐디,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까지 시계 계약에 대한 인지하고 있는 만큼 이런 상황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이키 계약
최근 나이키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며 전세계 골프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한국 선수가 있다. 우즈보다 빠르게 PGA 투어 다승자가 된 김주형이다. 온몸을 나이키로 도배한 그는 연간 400만달러에 5년간 장기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키와 계약한 김주형 프로 |
나이키 군단에 합류한 것만큼이나 관심을 끈 건 오른팔 소매에 적힌 ‘오데마피게(AP)’로고다. 나이키는 선수들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이키 로고만 달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김주형은 예외였다. 김주형은 오른팔 소매에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오데마피게 로고를 달고 PGA 투어를 누비고 있다. 김주형이 오데마피게의 후원을 받은 건 2021년 초다. 한 골프용품 업계 관계자는 “나이키 소속 선수 중 나이키 로고가 아닌 다른 브랜드의 로고를 달고 있는 건 이례적”이라며 “김주형의 오른팔 소매를 보면 이전과 달라진 위상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PGA 투어 신인상을 받고 지난 시즌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2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으로 활약 중인 임성재는 우즈와 함께 롤렉스 앰버서더로 활약하고 있다. 임성재는 2021년 1월 롤렉스와 3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스우시 군단에 합류한 넬리 코다 |
공항에서 필드까지, 자동차도 지원
자동차 브랜드도 골퍼들 후원에 적극적이다. 자동차 브랜드들은 보통 두가지 방식으로 후원한다. 투어에 뛰는 선수들에게 직접 차량을 지원하는 선수 마케팅 방식이 있고, 특정 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게 차량을 지원하는 대회 마케팅이 있다.
지난 2021년 2월 전세계 언론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교통사고를 주목했다. 차량이 전복되는 큰 사고로 선수 생활 위기를 맡게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즈는 수술과 재활을 걸쳐 선수로 복귀했고 전세계 골프팬들은 환호했다. 이 때 많은 관심을 받은 기업도 있다. 우즈가 탔던 제네시스 GV80을 생산한 현대자동차다. 우즈가 당시 제네시스 GV80을 탄 이유는 타이거 우즈 재단이 주최하는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의 공식 차량이여서다.
2021년 2월 타이거 우즈가 교통사고 났을 때 탔던 제너시스 차량 |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모든 대회에는 차량이 지원된다. 제네시스와 BMW, 렉서스 등 각 대회와 계약을 체결한 자동차 회사에서 출전 선수 모두에게 차량을 제공한다. 공항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만큼 선수들의 만족도는 엄청나다. 임성재와 이경훈 등 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도 차량 지원에 대한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선수들은 “차량 지원에 불만을 갖고 있는 PGA 투어 선수들은 없을 것”이라며 “렌터카를 따로 예약해야하는 콘페리투어를 거쳐 PGA 투어에 진출한 선수라면 차량 지원에 대한 특별한 만족감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도 선수들에게 차량을 지원하는 몇몇 대회가 있다. 자동차 회사가 메인 스폰서 또는 서브 스폰서로 참여하는 제네시스 챔피언십 등이 대표적이다.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의 경우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상위 10명에게 대회 기간 내내 선수들이 타고다닐 수 있는 제네시스 차량을 제공한 바 있다.
LPGA 투어와 PGA 투어에는 선수들이 아닌 캐디들과 후원 계약을 맺는 기업들도 있다. KB금융그룹과 발스파가 대표적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는 보이스캐디와 브리지스톤 등이 캐디 구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캐디들을 후원하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캐디 마케팅을 홍보 수단으로 생각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캐디들이 대가 없이 써준 모자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캐디 마케팅이 홍보 수단으로 인정받게 됐다. 캐디를 후원해 가장 큰 효과를 누린 건 KB금융그룹이다. 2020년부터 LPGA 투어의 캐디 30명과 계약을 맺기 시작한 KB금융그룹은 코리안투어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KB 로고가 적힌 모자를 쓴 캐디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캐디 지원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다.
KB금융그룹에서 LPGA 투어 캐디들과 계약을 맺은 이유는 TV 중계에 선수들과 계속해서 잡히는 만큼 홍보 효과가 높다고 판단해서다. 또 하나는 저렴한 후원 비용이다. 캐디 후원의 확실한 기준도 있다. KB금융그룹은 LPGA 투어 상금랭킹 60위 이내 선수의 캐디들을 대상으로 후원 계약을 진행했다.
골프계 한 관계자는 “선수와 비교해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후원할 수 있는 게 캐디”라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적은 비용으로 홍보 효과가 높은 캐디 마케팅을 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유일의 골프선수 출신 스포츠 기자인 임정우 기자는 ‘임정우의 스리 퍼트’를 통해 선수들이 필드 안팎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