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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억대 연봉이라는데… 밤새운 개발자 한숨만

직장인A to Z / 어쩌다 회사원



매일경제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중견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지인들에게 "연봉 많이 올라서 좋겠다. 나도 코딩이나 배워볼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올해 초부터 기업들이 개발자 모시기 경쟁을 벌이면서 거액의 연봉 인상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A씨 연봉은 예년 수준으로 인상됐을 뿐이다. A씨는 "최근 개발자 연봉 인상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일부 사례일 뿐"이라며 "여전히 노동 시간 대비 낮은 임금과 처우 문제로 고생하는 엔지니어가 많다"고 토로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B씨는 최근 거액의 이직 보너스를 제시해 화제가 된 C사에 지원했다가 크게 실망했다. 정작 전형을 진행해 보니 '수석급'으로 채용될 경우에만 이직 보너스를 준다고 회사가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B씨는 "다수의 개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꼼수'를 썼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기업 간 개발자 확보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까지 연봉 인상과 거액의 이직 보너스를 내걸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너도나도 처우 개선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같은 릴레이 연봉 인상 혜택을 모든 개발자가 누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 오랜 기간 일해 온 개발자들의 현실이 묻히는 측면이 있다. 매일경제 '어쩌다 회사원' 팀이 취업준비생부터 경영진까지 '보통의 개발자'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발자 절반 "연봉 인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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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회사원' 팀 의뢰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IT 엔지니어' 직군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최근 연봉 협상에서 급여가 인상됐다고 답한 회원은 전체의 52%를 기록했다. 나머지 48%는 인상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급여가 인상됐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2000만원 이상 오른 사람은 6%, 1000만~2000만원 인상된 사람은 9%에 불과했다. 급여 인상자 중 40%는 500만~1000만원, 38%는 100만~500만원이 올랐다고 답했다. 7%는 100만원 미만 올랐다고 응답했다.


다만 블라인드 가입자 중 IT 엔지니어 직군의 연봉 중위값은 2019년 5010만원에서 2020년 5250만원, 2021년 5400만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연하 팀블라인드 데이터 애널리스트는 "개발자 직군은 전 직군(30개) 중 연봉 5위 안에 들지 못했지만, 연봉 상승률만 놓고 보면 최근 1년 사이 연봉이 가장 많이 증가한 5개 직군 중 하나"라며 "개발자 직군의 연봉 순위는 2019년 11위, 2020년 9위, 2021년 현재 8위로 점점 더 상위로 이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IT 엔지니어 연봉은 개인·기업별로 큰 격차를 보였다. 설문조사에서 개발자 근무 처우가 개선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9%만 '그렇다'고 답했으며, 나머지 71%는 '아니다'고 답했다. 이와 별도로 블라인드가 산출한 이달 기준 국내 기업별 개발자의 누적 연봉 중위값을 살펴보면, 아마존이 910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비바리퍼블리카(9000만원), 구글코리아(8400만원), 트리플(8250만원), SAP코리아(8070만원)가 뒤를 이었다. 이어 엔엑스쓰리게임즈(8000만원), 빅히트엔터테인먼트(7800만원), SK텔레콤(7635만원), 코스콤(7300만원), 한국오라클(7200만원)이 연봉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순위는 재직자 수 대비 블라인드에 등록된 연봉 개수가 10% 이상인 회사만 대상으로 산정했다. 이 애널리스트 "30여 개 직군별 연봉 중위값의 최상위 100개 회사를 뽑아보면 개발자 직군의 연봉 편차가 가장 컸다"고 분석했다.

'개발자'냐 '코더'냐에 따라 처우 천차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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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격차는 왜 발생할까. 개발자들은 외부에서 '개발자'라고 불리는 직군 내에서도 업무 능력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견 IT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개발자는 업무 능력이 뛰어난 1명이 그렇지 못한 인력 여러 명의 몫을 할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잘하는 한 명에게 두 명 몫의 연봉을 줘서라도 회사에 잡아두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는 IT 엔지니어(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전체를 개발자라고 부르지만, 역할과 역량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IT 엔지니어 사이에서는 단기 학원 교육을 통해 단순히 프로그램을 짜는 업무(코딩)만 담당하는 인력을 '코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4년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해서 알고리즘을 짜는 능력뿐 아니라 수학·통계학 지식까지 습득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력만 '개발자'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IT 대기업에 종사하는 한 개발자는 "개발자 처우가 좋다고 소문이 나 코딩학원 열풍이 불지만, 4년제 교육을 받고 현업에 있는 개발자 중 단기 학원 출신을 '코더'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며 "여러 분야를 배우고 현업에 있는 경우 큰 그림을 그리는 업무를 할 수 있지만, 단기 학습자들은 코딩 관련 단순 업무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경우 대부분 연봉 상한도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돌려 막기'가 연봉 상승 불지펴

최근 기업이 우수한 개발 인력을 데려오기 위해 거액 연봉과 이직 보너스를 제시하는 건 우수 개발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발자 수는 많아졌지만, 정작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역량을 갖춘 개발자가 많지 않아 기업 간 인력 빼 가기 경쟁이 치열해졌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2019년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서로 경력 개발자를 빼가는 '개발자 돌려 막기'로는 유망 스타트업이 계속 배출되는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다른 중견 IT 기업 대표도 "국내는 상용 서비스를 개발한 경험이 풍부하고 개발 능력과 창의력을 겸비한 인재 층이 얇다. 과거 수십 년간 밤샘 근무와 낮은 연봉으로 우수 인력이 유입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연봉 인상이 일부 층에 국한됐더라도 전체 IT 엔지니어 처우가 함께 개선되는 '낙수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외국계 IT 기업 CTO는 "최근 입사자들을 살펴보면 전체 IT 엔지니어 몸값도 함께 오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처우가 개선되면 더 많은 인재가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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