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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을 혐오한다"…몬드리안이 사각형 그림을 이유

[죽은 예술가의 사회-59] 몬드리안(화가, 1872~1944)

매일경제

수평과 수직

대도시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거대한 생물이다. 도시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수많은 사람의 욕망을 우걱우걱 먹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꿈틀거린다. 하지만 온갖 스토리로 뒤엉킨 도시도 멀리에서 보면 결국 직선의 조합이다. 대도시를 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자. 우뚝 솟은 빌딩들은 수평선, 수직선 실루엣으로 뭉뚱그려진다. 꼭 멀리서 보지 않아도 된다. 수평과 수직 개념을 의식하고 주변을 보면 온통 직선이다. 우리는 온종일 직사각형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본다. 회사에서는 네모난 모니터 앞에 앉아 자질구레한 일들과 씨름한다. 수직으로 치솟은 아파트 한 채를 꿈꾸며 오늘도 많은 직장인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수평선 같은 삶을 버틴다.


몬드리안은 수평과 수직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화가다. 그는 직선을 교차해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격자무늬 안을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채웠다. 직선과 원색만 사용한 작품답게 몬드리안 그림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몬드리안의 인생도 그의 그림처럼 반듯했다. 그는 수직과 수평이 아닌 것들을 삶에서 추방했다. 몬드리안은 초록색을 혐오했는데, 자연을 상징하는 색이어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했다. 명확한 직선의 세계만이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칸딘스키 집에 초대받은 몬드리안은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창을 등지고 앉았다. 선물 받은 꽃의 초록색 잎을 흰색 물감으로 덧칠하기도 했다. 사실상 몬드리안에게는 수평과 수직이 종교였다. 무엇이 이 화가를 독특한 믿음의 세계로 인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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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진리를 찾아내겠다"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격자무늬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자연을 거부한 이 화가의 첫 작품들은 자연이었다. 몬드리안은 1872년 네덜란드 시골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청교도 가풍 속에서 성장했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와 삼촌의 영향으로 일찍 그림을 배웠다. 몬드리안은 아버지처럼 자연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풍경화를 그렸다. 1892년 암스테르담 미술학교에 입학한 몬드리안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은 평범한 풍경화, 정물화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 지식인 사이에서 신지학이라는 철학이 유행했다. 신지학의 핵심은 이렇다.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속에도 불변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규칙이 내재해 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에 심취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 뒤에 숨겨진 진리를 찾고자 했다. 신지학 이론으로 무장한 몬드리안은 1908년부터 1913년까지 나무를 연작으로 그렸다. 가장 처음에 그린 나무는 누가 봐도 나무 그 자체다. 하지만 그다음 작품부터 몬드리안은 나무의 특성을 하나둘 소거하기 시작했다. 이 연작의 마지막 작품에선 나무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몬드리안은 버리고, 버리며 직선들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이미지만을 남겨 놨다. 나무가 가진 어떤 리듬만을 뽑아낸 것이다.


1911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몬드리안은 피카소 작품을 접했다. 당시 모든 유럽 화가들이 그러했듯 몬드리안에게도 피카소는 충격이었다. 피카소와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화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조각조각 분해하고 재창조해 캔버스에 그렸다. '본다'라는 개념을 송두리째 바꾼 입체파는 몬드리안을 뒤흔들었다. 몬드리안 역시 세상을 겉모습 그대로 보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질서를 찾아내려던 화가였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은 입체파 화가들이 활동하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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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스틸' 예술가들

몬드리안은 선과 면이라는 기본 요소만으로 피사체 본질을 담아내려는 입체파의 실험정신을 존경했다. 파리에 정착한 이후 한동안 입체파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입체파도 몬드리안에게는 정거장일 뿐이었다. 그는 입체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몬드리안은 입체파가 세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화가의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변덕스러운 인간 감정 따위는 그가 추구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었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서서히 추상화 영역으로 나아간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계속 버렸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유럽이 초토화됐다. 사람들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했다. 몬드리안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잔인한 세상에 치를 떨었다. 그는 감히 무질서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몬드리안은 자연이 가진 변덕스러운 요소를 몽땅 제거하기로 한다. 그림을 통해서 질서정연한 유토피아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는다. 그렇게 몬드리안에게는 수직선과 수평선만 남았다. 그는 견고하고 명확한 직선이 세상의 본질이라고 여겼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이때부터 탄생했다.


몬드리안은 자신과 비슷한 신념을 가진 예술가들과 뭉쳤다. 그들은 데 스틸(De Stijl)이라는 예술운동을 주도한다. 데 스틸을 영어로 표현하면 'The Style'이다. 데 스틸에 속한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어떤 이상향에 도달하려는 목표만큼은 똑같았다. 데 스틸 그룹은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을 거부했다. 그들은 곧은 선과 원색만을 활용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끌어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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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은 용납할 수 없어"

그림을 통해서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몬드리안의 포부는 허황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수직, 수평선으로만 이뤄진 단순한 그림이 어떻게 세상을 흔든단 말인가. 입체파나 초현실주의 장르와 비교했을 때, 데 스틸이 서양 회화에 끼친 영향도 크지 않다.


하지만 건축과 디자인 영역으로 넘어오면 얘기가 다르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철학을 '신조형주의'라는 이론으로 정리했다. 이 이론에 영감을 얻은 건축가 중에 르코르뷔지에가 있다. 그는 수직과 수평만을 남겨놓고 모든 것을 삭제한 몬드리안처럼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인 건축 세계를 창조했다. 그렇게 인간의 역사를 바꿨다. 현대적인 아파트 모델을 가장 먼저 도입한 인물이 르코르뷔지에다. 독일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도 데 스틸 정신을 계승했다. 바우하우스는 건축과 디자인 분야 전반에 실용성과 미니멀리즘 DNA를 심은 기관이다. 사실상 오늘날 산업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만든 곳이 바우하우스다.


실제로 데 스틸 출신 예술가들은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능성과 간결함을 중시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아이폰 디자인이 바우하우스 스타일 영향을 받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몬드리안의 철학은 미술을 넘어 넓은 영역으로 뻗어 나가 뿌리 역할을 했다. 그의 수직, 수평선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풍경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몬드리안과 함께 데 스틸을 이끈 화가는 되스부르크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조형 세계를 추구한다'는 의지로 뭉친 둘은 결국 갈등 끝에 헤어졌다. 대각선이 문제였다. 되스부르크는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뤄진 데 스틸 그림에 대각선을 추가했다. 사선을 이용해 자연이 가진 역동성을 담아내려 했다. 몬드리안은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수직과 수평만으로도 세상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선 따위는 자연의 겉모습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며 되스부르크에게 맞섰다. 결국 몬드리안은 데 스틸에서 탈퇴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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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사각형들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많은 예술가들이 유럽을 탈출했다. 몬드리안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에 도착한 몬드리안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들떴다. 뉴욕은 계획도시답게 반듯한 격자무늬 도로망을 갖춘 곳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빌딩들은 웅장한 수직선 그 자체였다. 기하학적인 미감으로 가득한 뉴욕은 몬드리안이 꿈꾸던 이상향이었다. 몬드리안은 뉴욕의 음악에도 반했다. 당시 미국은 재즈 전성시대였다. 경쾌한 재즈 리듬이 뉴욕의 밤을 지배했다. 몬드리안은 격자무늬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재즈에 푹 빠졌다. 새벽까지 클럽에 머물며 재즈 연주를 듣고, 음악가들과 어울렸다. 불확실성과 싸우며 직선에 매달렸던 화가가 불확실성 그 자체인 재즈에 빠진 것이다. 대각선 하나도 용납하지 않은 엄격한 몬드리안은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재즈를 만나 변하기 시작했다.


몬드리안은 뉴욕을 테마로 연작을 그렸다. '빅토리 부기우기'는 뉴욕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몬드리안 유작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인데도 활력으로 가득하다. 물론, 이 그림도 수직, 수평선과 원색이 전부다. 하지만 전형적인 몬드리안 작품과는 다르다. 대각선 때문에 결별한 동료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였을까. 그는 캔버스 자체를 마름모꼴로 기울인 상태로 작품을 그렸다. 우회적으로 대각선을 허용한 것이다. 격자무늬 실루엣을 강조하던 굵은 검은색 선도 사라졌다. 크고 작은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흰색 직사각형들이 촘촘하게 대열을 이룬다. 마치 도형들이 군무를 추는 느낌이다. 어떤 리듬감이 감돈다. 뉴욕의 밤을 가득 채운 네온사인 같기도 하고, 흥겨운 재즈의 선율을 도식화한 느낌도 든다. 평생을 무거운 철학적 고민과 함께했던 예술가의 결연한 마음은 결국 재즈 리듬을 타고 느슨해졌다. 그렇게 몬드리안은 샘솟는 도시의 활력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의 삶이 격자무늬에 안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인파로 가득한 대중교통에 몸을 구겨넣고 일터로 향한다. 밥벌이라는 전선의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상의 지겨움이 어깨를 짓누른다. 내 삶에 특별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을 품어보지만, 동시에 그런 반전이 올 확률은 희박하다는 사실도 안다. 일상이 무채색으로 느껴지는 날엔 몬드리안의 마지막 그림들을 보자. 생기 넘치는 격자무늬들이 부대끼며 춤을 춘다. 이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를 건넬지도 모른다. '격자무늬 무대 위에서도 우리는 즐겁게 살 수 있어'


좋은 영화를 보고, 영감을 주는 음악을 듣고, 기념일에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사한 풍경을 보려 여행을 떠나는 일은 중요하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삶에 기분 좋은 리듬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격자무늬 속에 살면서도 춤을 출 수 있다. 몬드리안 그림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진리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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