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상생으로 지켜온 너구리의 맛… 다시마 생산지 ‘금일도’
작은 섬마을 부둣가에는 검은 다시마들이 눈앞 가득 펼쳐져 있었다. 켜켜이 포개진 그것들에게서는 짙은 바다내음이 났다.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은 다시마를 꼼꼼히 살피다가,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손에 들린 작은 수첩에 숫자를 적어 내밀었다. 한쪽에서는 낙찰된 다시마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갔다.
농심 너구리 맛의 비밀은 '금일도산 다시마'
지난 8일 서울에서 KTX를 타고 광주송정역까지 2시간을 이동한뒤 차로 다시 당목항까지 두 시간을 더 달렸다. 표배를 타고 금일도까지 다시 30여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완도금일수협 다시마 위판장이었다. 바로 이곳이 36년간 54억개가 팔린 '농심 너구리'의 맛이 시작되는 곳이다. 금일도는 전국 다시마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큰 파도가 적은 금일도의 지리적 특성과 다시마의 생육특성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부가가치가 높아지면서 완도, 진도 등으로 생산지가 넓어졌지만 여전히 금일도 다시마는 최상급으로 취급받고 있다.
새벽같이 달려 아침 10시에 도착한 위판장은 이미 경매로 한창이었다. 파란 옷을 입은 수매자들은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쓰고 연신 다시마들을 살폈다. 팔레트 위에 층층이 쌓인 다시마들은 부둣가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한 수매자는 '푸석하지 않고 쫄깃하며 이물이 없는 것을 골러야 한다'면서 '두께가 적당하고 색이 검을수록 좋은 다시마'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수매자는 '올해 경매가 시작 된 이후 열 번째인데 (거래량이) 140톤 정도로 가장 물량이 많았다'면서 '연평균 30회 정도 경매가 진행되며 최대 200톤까지 거래된다'고 말했다. 다시마 경매는 주로 6월 초부터 이르며 6월 중순, 늦어도 7월 초까지 진행된다. 비에 젖으면 상품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탓에 장마 전에 경매를 마무리해야하기 때문이다. 경매장에는 10여명의 수매인들과 수협에서 나온 직원들로 북적였다. 낙찰된 다시마들은 곧바로 지게차에 실려 트럭으로 옮겨졌다. 일부 소량 다시마는 사람이 실어나르기도 했다. 부둣가 전체에 깔려있는 다시마들의 경매가 끝나기까지는 총 2시간이 소요됐다. 이날 낙찰된 다시마 중 최저가는 ㎏ 당 5000원, 최고가는 ㎏ 당1만원이었다.
농심,금일도의 '상생'… 효자상품 거듭
금일도 인근 바다. 다시마 생육을 위한 부표가 곳곳에 떠있다. 사진=조현우 기자 |
농심이 너구리 다시마를 수매하면서 금일도 역시 큰 변화가 있었다. 기업납품이 이뤄지면서 지속적인 판매가 가능해졌으며 이는 자연스레 금일도 전반의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금일도 1800여가구 중 400~500여가구가 다시마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어민들의 효자상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실례로 너구리 한 봉지에는 다시마 1개가 들어있다. 다시마 조각을 너구리 누적 판매량만큼 바닥에 펼친다고 가정하면 8.6㎢ 정도의 넓이가 나온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다시마 부가가치가 높아지면서 금일 지역에 한정됐던 생산지도 완도, 진흥, 진도로 넓어졌다. 금일도에서 다시마를 생육하던 어민들이 각지로 옮겨가면서 산업의 전반적인 성장을 견인하게 된 것이다.
40여년 가까이 농심으로 납품이 계속되면서 품질개선도 이어졌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무조건 많이 뿌리던 종자도 다시마의 영양흡수 등을 고려해 6~7개로 조절했다. 건조 방식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다시마의 품질은 수확한 다시마를 얼마나 빠르게 건조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단순히 바닥에 비닐만 깔고 차광망만 덮었지만 최근에는 바닥에 자갈을 더 깔아 반사열로 빠르게 건조시키고 있다. 빠르면 하루만에 건조가 마무리되며 이럴 경우 기존 방식보다 품질이 최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김승의 완도금일수협 상무는 '농심 너구리 때문에 다시마가 국내에서 상당히 부각됐다'면서 '소비가 이어지면서 더불어 금일도도 다시마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논이었던 곳이 지금은 다 건조장이 됐을 정도로 금일도 산업에서 다시마와 농심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덧붙였다.
너구리 맛의 비결... 36년간 이어진 '신뢰'
신상석 농심 협력업체 대표가 건조장에서 다시마 건조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현우 기자 |
이러한 상생은 농심과 금일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협력업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남지역에서 협력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신상석 대표는 농심과 연을 맺은지 36년이 됐다. 당시 우동라면을 개발하던 농심은 특유의 국물 맛을 내기 위한 마지막 퍼즐로 다시마를 선택했다. 농심은 국내 다시마 중 최고 품질로 알려진 완도군 금일면 다시마를 제품에 담기로 결정했고 당시 경매를 통해 다시마를 수매하던 신 대표와 거래를 시작했다. 농심은 너구리에 사용되는 다시마 전량을 신 대표를 통해 수매하고 있다. 신 대표는 '연 평균 금일도에서 수매해 농심에 납품하는 물량은 400톤 정도로 금일도에서 생산되는 건다시마 생산량의 15%에 달한다'면서 '농심에 납품하는 다시마들은 특히 신경써서 최상품들만을 보낸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일본에 수출하던 물량도 있었는데 두 농심 쪽으로 돌리면서 수출을 포기했다'면서 '36년간 협력을 이어간다는 것은 상호간의 신뢰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신 대표가 낙찰한 다시마는 경남에 위치한 가공공장으로 이동한다. 최대 2m에 달하는 다시마는 뿌리와 이파리를 잘라낸 뒤 검사와 세척, 건조에 들어간다. 너구리에 사용되는 다시마는 다시마 줄기 부분으로 실제 수율은 43%~45%에 불과하다. 가공이 마무리된 다시마는 실온창고에 보관된 뒤 농심 공장으로 이동해 너구리에 들어가게 된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제품에 포함된 다시마를 만날 수 있다. 신 대표는 '국내 다시마 생산지는 많지만 품질 차이가 커 금일도 외에 지역에서 수매를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없다'면서 '농심과의 신뢰는 금일도 다시마에서 시작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