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로서리 마켓 추천 :: 요즘 마트와 함께하는 여행법
남의 나라로 여행을 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전날 갔던 돈가스 집을 방문하거나 슬리퍼와 추리닝 차림으로 마트에 아침 거리를 사러 다녀오는 짓 말이다. 겨우 하루 이틀 머물렀을 뿐인데 숙소를 집이라 부르게 되는 그 온도를 참 좋아한다. 트램을 타거나 모나리자를 직접 보았던 날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낯선 땅에서 경험한 일상의 조각은 자주 그 나라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곤 한다.
다른 어떤 기억보다도 그런 온도가 그리워진다면 서울의 그로서리 스토어를 방문해 보자. 여섯 개들이 생수통 같은 건 없지만 주인장의 취향으로 고른 물건이라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든 손에 쥐는 것이든 구분 없이 한곳에 모여있다. 크지 않은 공간에 동네의 색이 적절히 녹아든 인테리어는 유럽 골목의 상점을 떠올리게 해 제법 여행하는 기분도 선물한다.
1. 비건스페이스
몇 년 전 건강을 위해 한 달간 비건인으로 살아 보았다. 밥보다 자주 먹었던 밀가루를 끊었고, 매 식탁에는 고기 대신 삶거나 구운 야채들이 한상 가득 올라왔다. 덕분에 늘 피로함을 느꼈던 장은 한결 편해졌고 피부는 매끈해졌다.
하지만 나름 성공적이었던 결과에 비해 과정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고기는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 외에도 가루로, 액체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성분표기란을 그렇게 꼼꼼히 읽었던 날들이 없었다.
그런 비건인들에게 꿈과 희망 같은 곳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해방촌에 위치한 비건스페이스는 비건을 위한 거의 모든 것들을 판매한다. 잡곡, 콩 종류는 기본이며 치즈, 과자, 소스, 냉동 음식과 같은 대체품 역시 다양하게 구비돼있다.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매장을 방문하기 전 판매 중인 상품의 가격과 종류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진열된 상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 폭 넓어지는 기분이다. 비건인에게 허락된 유음료란 두유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초콜릿 맛 귀리 음료는 또 처음이었다. 같은 종류이더라도 맛에 따라 다양한 버전, 혹은 브랜드로 구비가 돼있으니 취향에 따라 골라보자.
비건용 오레오와 리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비건스페이스에서는 평소 익숙한 과자 브랜드의 제품 역시 비건으로 만나볼 수 있다. 우유나 전지분유를 사용하지 않은 오레오와 리터스포츠의 초콜릿이라니. 이 밖에도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유럽의 감자칩과 젤리, 캔디 등 간단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들이 선반 한켠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장만 보고 돌아가기 아쉬운 날이라면 입구 쪽에 작게 마련된 테이블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비건스페이스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음료와 쿠키를 맛볼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으로 자리하는 비건, 보다 쉽고 맛있게 경험해 보고 싶다면 방문해 보길 바란다. 비건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역시 추천한다.
- 이용시간 : 매일 11:00 - 20:00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신흥로 2길 7
2. 보마켓
고기부터 와인, 치즈, 하다못해 그릇과 잡지까지? '예쁘고 맛이 좋은 건 다 팔아요'라는 카피가 어울리는 이곳은 서울숲에 위치한 보마켓이다.
보마켓은 남산점을 시작으로 경리단길, 성수 등 서울 이곳저곳에 위치한 그로서리스토어로,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 슈퍼와 물건이 다양한 편의점의 장점을 섞어, 보다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보마켓 서울숲점은 정육 브랜드 존쿡 델리미트와 함께한다. 따라서 하몽, 살라미 등 존쿡 델리미트의 다양한 육가공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마켓 내의 카페에서 존쿡 델리미트의 제품을 이용한 샌드위치와 브런치 메뉴를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할 것.
식료품 코너에는 정육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와인, 동네 마트에서는 살 수 없었던 트러플 맛 감자칩과 레몬맛 꿀 등 자연히 손이 갈 수밖에 없는 제품들이 구비돼있다.
언제쯤 윤이 나고 색이 화려한 것 앞에서 마음을 차분히 할 수 있는 어른이 될까? 혼자 사는 사람의 찬장에는 이미 4인 가구 분량의 컵과 접시가 넘쳐나지만 이런 그림 앞에서 그런 팩트는 별 소용이 없다. 빈티지한 라인이 돋보이는 시라쿠스의 접시부터 우아한 실루엣과 귀여운 컬러감이 조화로운 사브르의 커트러리까지. 마켓의 가장 안쪽에서는 완벽한 요리의 마무리를 도와줄 주방 용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한참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면 자연히 창문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오늘 날이 많이 차가웠던가? 하고 말이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숲을 둔 보마켓 서울숲점은 현재 와인과 장바구니를 함께 구매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작은 이벤트 중이다. 혼자 먹어도 괜찮은 사이즈의 치즈와 스낵, 와인을 들고 올해의 마지막 피크닉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 이용시간 : 매일 10:00 - 20:00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83-21
- 문의 : 02-6223-7621
3. 먼치스앤구디스
투박하지만 낡은 것과는 또 거리가 먼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가 참 좋다. 철물점과 카페를 함께 볼 수 있는 골목에는 먼치스앤구디스가있다. 간판만 보고는 도무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예상할 수 없지만 그냥 지나친다면 두고두고 생각날 것만 같은 묘한 매력을 풍긴다.
먼치스앤구디스는 우리 일상의 작은 구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제품들을 선보인다. 특별히 부피가 작아 쉽게 장바구니를 차지할 아이템이 많다. 단 돈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캡슐 모양의 올리브오일과 드레싱, 주머니에 넣어두고 꺼내 먹기 좋은 피칸 사탕 같은 것들 말이다. 외에도 한 번에 먹기 좋은 올리브, 짜먹는 껌 등 귀여우면서도 합리적인 식료품들이 냉장고와 선반을 꼼꼼히 채우고 있다.
찬장을 가득 채울 용기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또 한 번 주목할 것. 양식과 한식 구분 없이 조화롭게 잘 어울릴 아마브로의 그릇, 귀여우면서도 세련된 팔콘의 법랑 컵까지 모두 먼치스앤구디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
귀여운 것들은 힘이 세다. 구매 목적을 고민하기도 전에 장바구니에 담기는 것들은 대체로 귀여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 키치한 색감의 포스터와 엽서, 펜 모두 먼치스앤구디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빵과 커피는 이제 그로서리 스토어에서도 기본이 된 걸까? 먼치스앤구디스 역시 직접 매장에서 구워낸 빵과 직접 내린 커피를 판매한다. 특히 이곳의 소금빵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으로 제법 인기가 좋다. 매장 뒤에 마련된 프라이빗한 뜰은 반려견도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고 하니, 편하게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 이용시간 : 매일 11:00 - 21:00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연무장길 33 1층
- 문의 : 0507-1369-5294
이만 원을 갖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요즘이라면 조금은 색다른 슈퍼마켓을 방문해 보자. 애정을 담아 고른 접시에 이름이 긴 치즈를 담아먹는 아침. 그런 걸 준비하다 보면 매일 오가는 동네도 새로워질 것이다. 어떤 날은 파리, 어떤 날은 런던의 아침을 깨우는 일, 그로서리 스토어와 함께라면 가능하다.
# 서울 여행, 매일이 새로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