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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경향신문

5월의 시장엔 주인공이 없다? 굳이 꼽자면 ‘마늘쫑’이 있다

(107) 전북 임실장

경향신문

여름것은 이르고 봄것은 끝물인 5월 말 시장에 이렇다 할 주인공은 없다. 굳이 뽑자면 알싸하고 달곰한 ‘마늘쫑’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 참으로 많이 듣고 말해 왔다. 20대 후반까지는 이 말이 맞는 줄 알았다. 봄이 가장 빛나는 시기에, 어린이날을 비롯해 갖가지 행사가 있어 그런가 싶었다. 화창하게 갠 날이 비 오는 날보다 많아서 떠나기에도 좋다. 여행 떠나는 이에게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겠지만 음식 재료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이에게는 저주받은 달이다. 1년 중 가장 애매한 시기가 5월이다. 여름것은 이르고 봄것은 끝물이라 나는 것이 드물다. 지난겨울에 수확한 것 또한 상품성이 떨어지는 지점이 5월이다. 여름것이 난다고 하더라도 식품의 질이 별로인 경우가 많고 양이 적어 그나마 괜찮은 것은 가격이 비싸다. 5월은 떠나기는 좋은 계절, 그나마 괜찮은 것이 나는 곳이 어딜까 곰곰이 생각했다. 불현듯 20년 전에 떠났던 봄날의 끄트머리가 기억났다. 친환경 우유와 요구르트를 찾아 임실역 뒤편으로 갔었다. 숲골우유가 거기에 있었고 치즈 저장고에 쌓여 있던 치즈도 구경했다. 몇 해 지나 국내산 고추냉이(와사비)가 없을까 찾다가 임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던 그해 5월이 기억났다. 기억을 좇아 떠난 5월의 임실은 추억이 반가웠고 맛있었고, 반면에 서글펐다.

음식재료가 가장 애매한 시기 5월, 여름 것은 이르고 봄 것은 끝물…하지만 떠나기 더없이 좋은 계절 생각난 유제품의 고장 ‘임실’


상설시장 내 1·6일장서 눈에 띈 마늘종, 새우 넣고 볶으면 ‘계절 맛 나는 반찬’…국수 시키면 수육 주는 국수집·육회비빔밥 시키면 돌솥밥 주는 육회집도 가볼만

임실에 도착해서는 추억을 찾아 임실역 뒤쪽으로 갔다. 기억 속의 이미지는 찾기 힘들어도 느낌은 그대로 전달되어 반가움이 밀려왔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치즈랜드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치즈랜드 입구에는 로컬푸드 매장이 있다. 다른 곳의 로컬푸드 매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단 유제품 고장 임실답게 요구르트, 치즈 등 다양한 유제품이 있다. 치즈로 만든 여러 가공품 또한 냉동고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양한 치즈 중에서 베르크, 라클렛 두 가지를 골랐다. 라클렛 치즈는 열에 잘 녹는다. 녹은 치즈를 스테이크나 빵, 과자에 올려 먹으면 풍미가 아주 좋다. 치즈랜드에 있는 빵집에서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빵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빵을 자르고는 녹인 치즈를 올렸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촉촉한 시골빵의 식감에 부드러운 치즈의 식감이 더해지니 외강내유, ‘겉바속촉’의 일품요리 완성. 빵이 작은 게 서운할 정도로 풍부한 맛을 자랑했다. 라클렛 치즈는 열을 받기 전에는 냄새 적은 청국장 향과 비슷하다. 열을 받아 녹기 시작하면 향은 사라지고 감칠맛과 고소한 맛만 남는다. 베르크는 단단한 치즈다. 냉장고에서 꺼내 20분 정도 상온에 두면 유분이 올라와 겉이 촉촉해진다. 파스타를 하거나 샐러드를 만든 다음 갈아 넣으면 감칠맛과 고소함이 폭발한다. 


집에 있는 스파게티 면이 통밀뿐이었다. 마늘과 청양고추를 저며 넣어 기름에 향을 입힌 뒤 따로 넣을 만한 것이 없어 그대로 파스타를 했다. 만들어 놓은 기름에 면을 살짝 볶고는 마지막으로 치즈를 뿌렸다. 마늘과 청양고추 맛의 사이를 뚫고 치즈의 고소함이 존재감을 나타냈다. 베르크 치즈를 상온에 둬 유분이 올라온 상태에서 작게 썰어 먹어도 맛있다. 여러 종류의 치즈와 요구르트가 있어 좋긴 해도 목장마다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우유가 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이는 사료에 따라 내주는 우유의 지방 조성이 달라지는 것이 젖소다. 우유의 맛이 달라지면 가공품인 치즈나 요구르트의 맛도 달라질 것이다. 다양한 우유가 있다면 치즈랜드가 있는 임실의 맛이 지금보다는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화락당 010-2715-7765, 임실N치즈판매장 (063)643-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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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파스타

임실장은 1, 6장이다. 읍내 중심에 있는 상설시장 내에서 열린다. 마침 식재료 강연할 일이 있어 남원도 갈 겸 해서 다녀왔다. 아침에 도착한 임실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시장 통로 한쪽만 있을 뿐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5월은 나는 것이 적다. 산나물도 들어가고 밭에서 나는 것도 적다 보니 내다 팔 것이 적었다. 팔 것이 없으니 시장에 팔러 나온 이도 적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사러 나오는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밭에다 심을 고구마 순과 서둘러 수확한 조생종 마늘이 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산이 많은 임실은 아름다운 섬진강의 시작점이다. 임실에서 시작한 섬진강은 순창, 구례, 하동을 지나 남해도 간다. 맑은 하천이 있기에 그에 따라 시장통에는 다슬기 파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은 아니어도 이웃한 남원에서 온 미꾸라지 또한 손님을 기다렸다. 임실 상설시장 곳곳에 추어탕과 다슬기 음식 파는 식당이 시장 규모에 비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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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쫑

5월 말의 시장에서 주인공은 따로 없었다. 그저 일상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고팔고 있었다. 시장에서 주인공이 따로 있나, 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봄이라면 나물, 여름이라면 열무나 오이 등이 주인공이다. 많은 이들이 찾고 파는 상품이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이날의 주인공을 굳이 꼽자면 ‘마늘쫑’이다. 


마늘쫑이라 흔히 발음하지만 ‘마늘종’이 맞다. 짜장면이 자장면보다 익숙하듯이 마늘쫑이 더 익숙하다. 암튼 다슬기보다도 햇양파보다도 많이 눈에 띈 것이 마늘종. 마늘종을 생으로 맛보면 마늘처럼 아린 맛이 진하게 난다. 마늘의 당도는 높다고 한다. 다만 아린 맛과 향이 워낙 강해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마늘을 구우면 아린 맛과 향을 내는 효소가 파괴된다. 구운 마늘을 먹으면 생마늘에서 느끼지 못하던 달곰함을 느끼는 이유다. 마늘종은 마늘의 꽃대다. 우리가 먹는 마늘은 마늘의 땅속줄기다. 뿌리는 마늘 끝에 달려 있고 마늘은 영양분을 모아 둔 땅속 영양줄기다. 올라온 마늘종을 거둬내지 않으면 영양분이 땅속줄기와 마늘종으로 나뉘어 결국은 우리가 먹는 마늘 크기가 작아진다. 마늘 농가에서는 반드시 마늘종을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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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종 요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날 임실장에서 한 묶음을 3000원 주고 샀다. 씻은 후 기름을 두른 팬에 볶았다. 잔멸치나 잔새우를 넣는 순간, 이 계절 맛이 빛나는 반찬이 된다. 깨서 먹으라고 해서 ‘깨’라 부르는 것을 깨서 넣었다. 통깨 그대로 넣은 것은 보기만 좋을 뿐이다. 아린 맛이 사라진 마늘종은 따로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곰하다. 계절 진미라는 것이 별거 아니다. 그 계절에 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5월의 계절 진미에 마늘종이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임실장을 구경하면서 뭔가 허전했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도 허전한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시장 난전에 있는 떡을 보고서는 떡집이 없음을 알았다. 어느 시장을 가더라도 몇 집 있는 것이 떡집이었다. 임실시장에는 떡집이 없었다. 사람이 사라지는 지역의 시장은 사그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변에 큰 배후도시가 없는 임실이 딱 그랬다. 사그라짐이 주는 서글픔이 시장 내에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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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비빔밥

임실 읍내에서 강진시장 쪽으로 가면 국숫집이 하나 나온다. 작은 읍내지만 이 식당만큼은 사람이 많다. 5000원 하는 물국수는 중면을 사용하는 여느 시장의 국숫집과 다름이 없다. 다른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마치 ‘1+1’처럼 국수를 주문하면 돼지머리 수육이 나온다는 것이다. 국수만 먹으면 양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씹을 거리가 적어 서운한 이들에게는 이보다 안성맞춤인 국수 가게가 또 있을까 싶었다. 점심 밥때보다 조금 일찍 식당을 찾았음에도 손님이 제법 있었다. 국수 국물은 멸치육수다. 양념간장을 조금 넣어 내 입맛에 맞게 맛을 조정하고는 국수를 먹었다. 나름 괜찮은 맛이지만 곁다리로 나온 머리 고기 수준에는 못 미쳤다. 국수를 주문하니 머리 고기가 나온 것이 아니라 머리 고기를 주문하니 국수가 딸려 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순창 가는 길에 출출하다면 꼭 들를 듯싶다. 강진면 시장 내에 있다. 행운집 010-4364-1094


밥을 먹으러 갔다가 다른 1+1을 만났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니 육회가 옆에 딸려 나왔다. 서운하지 않은 육회의 양이 여느 곳하고 달랐다. 다름은 육회의 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밥이 달랐다. 어디를 가든, 어떤 등급의 소고기로 하든 육회비빔밥의 밥은 열에 열이 공깃밥이었다. 


심지어 어떤 식당은 식어서 단단하게 굳은 밥이 나와 비비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이 집은 밥만큼은 전국 최강이었다. 돌솥에 막 지어내 밥을 비비는 순간 육회의 맛을 떠나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갓 지은 밥에 잘 양념한 육회를 먹는 순간 이보다 더 맛있는 육회비빔밥은 없었다. 한우랑돼지랑 (063)642-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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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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