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편성 공식’ 깬 지상파, 시간만 바꿔서 ‘혁신’ 될까
“미디어 소비 패턴 변화 맞춰” MBC, 드라마 9시로 앞당겨
SBS, 월화 ‘10시 예능’ 도전…KBS도 타사 변화 대응 준비
“놓쳐도 인터넷으로 다시 봐”…시청자 “볼 게 없다” 시큰둥
지상파 평일 오후 10시 메인 드라마 방송 시대가 막을 내렸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시청자 라이프 스타일 변화,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급성장, 케이블·종편의 약진에 따른 시청률 저하 등 때문에 ‘이대론 안된다’는 구호 아래 지상파 방송사들이 줄줄이 편성 혁신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파격이 ‘위기의 지상파’를 구해낼 수 있을까.
우선 SBS가 지상파 3사 최초로 월화 오후 10시 예능 시대를 연다. SBS는 지난 10일 “시청자들의 미디어 소비 패턴 변화를 반영해 월화 오후 10시에 드라마가 아닌 예능을 방영하는 획기적인 편성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SBS가 새롭게 선보이는 월화 예능은 올여름에 처음 방송된다. 기존 드라마처럼 월화 밤 10시에 일주일에 두 번 방송되고, 총 16부로 편성될 예정이다.
SBS는 예능 장르가 주로 편성돼 왔던 금토 오후 10시에 드라마 <열혈사제>를 편성해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SBS 측은 “미국에서도 여름 시즌엔 새로운 드라마를 론칭하기보다 다양한 장르를 편성하는 추세”라며 “월화에 새로운 편성을 시도해 다양한 시청자들의 니즈를 알아본 이후, 다시 경쟁력 있는 월화극으로 시청자들을 찾을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MBC는 평일 오후 드라마의 편성 시간을 기존 오후 10시에서 오후 9시로 한 시간 앞당겼다. 지난 22일부터 수목 드라마 <봄밤>을 오후 9시에 방송하고 있으며, 오는 6월 방영 예정인 <검법남녀2>도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주말 드라마 <이몽> 역시 오후 9시에 방송되는 것을 고려하면 MBC 밤 시간 드라마는 모두 오후 9시에 시작하는 셈이다.
MBC가 평일 오후 드라마의 편성 시간을 기존 오후 10시에서 오후 9시로 한 시간 앞당겼다. 지난 22일 처음 방송한 <봄밤> (왼쪽)을 시작으로, 오는 6월3일 방영 예정인 <검법남녀2> 도 오후 9시에 방송된다. MBC 제공 |
MBC는 1980년 드라마 <백년손님>과 1987년 미니시리즈 <불새>를 오후 10시에 방송하며 ‘오후 10시 드라마’ 공식을 만든 바 있다. MBC는 “노동시간 단축과 변화하는 시청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선제적 전략”이라며 “과도한 경쟁 속에 치킨게임 양상으로 변해가는 드라마 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시간대가 오후 9시로 앞당겨지면서 교양 프로그램 방영 시간은 오후 10시로 옮겨졌다.
SBS·MBC와 달리 KBS는 당장에 큰 변화를 시도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변화 가능성은 열어뒀다. 지난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승동 KBS 사장은 “KBS 역시 나름대로 편성의 변화를 줄 것이고, 타사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타 방송사들의 시도가 방송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편성 시간표가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시청자 반응은 미지근하다. 회사원 이종빈씨(34)는 “퇴근하는 시간이 빨라지면서 오후 9시 드라마 시대가 열린 건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예전엔 주로 TV를 봤다면 요즘은 넷플릭스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놓친 드라마나 예능은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하면 돼서 시간대가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주부 김모씨(51)는 “습관적으로 오후 9시 뉴스를 보고 10시부터 드라마를 봐왔는데, 아직 어색한 느낌”이라며 “시간대보다도 볼 만한 드라마나 예능이 없다는 게 더 문제 같다”고 말했다.
일단 SBS는 <열혈사제>로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금토 드라마 체제를 안정적으로 굳혔다. 하지만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 따르면 MBC가 오후 9시 드라마로 선보인 <봄밤>의 첫 방송 시청률은 MBC 종전 밤 9시대 시청률보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종전 오후 9시대에서 10시로 옮겨간 시사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 역시 시청률이 하락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지상파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편성 전략을 바꿔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편성 시간만 바꿔서는 현재 지상파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결국 시청자와 소통하며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개편 효과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