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광주시민 계엄군 구타 사진 찾아라” 지시
[단독]
미국 국방정보국 1980년 6월25일자 비밀문건 입수
외신 ‘계엄군 야만적 진압 장면’ 보도에 맞대응 의도 분석
관련 영상자료 확보도 명령…시민들 비협조 결국 못 찾아
전두환 전 대통령(88·사진)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수사기관에 “시민들이 군인을 구타하는 사진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원했던, 당시 시민들이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을 구타하는 사진은 찾지 못했다.
1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미국 국방부의 1980년 6월25일자 비밀문건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정부 수사관들에게 학생·시민들이 군인들을 구타하는 사진(필름)을 입수하라”고 지시했다. 이 문건은 한국에서 활동 중이던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 요원이 본국에 보고한 것이다.
당시 보안사령관과 합동수사본부장, 중앙정보부장을 겸한 전 전 대통령은 5·18 수사의 최종 책임자였다. 보안사 등은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시민들을 대거 연행, 5·18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하며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광주 이후 한국 정부 대응 동향’이라는 주제의 미국 측 문건에는 6월20일 관련 내용을 수집한 것으로 기록됐다. 전 전 대통령의 지시는 5·18 이후 해외 언론이 공수부대의 강경진압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보도한 이후 나왔다.
미국은 “전두환이 해당 사진들을 이용해 타임·뉴스위크 등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진압 장면을 보여주는 해외 언론의 사진 보도로 인해 입은 이미지 타격을 만회하려는 계획”이라면서 “사진을 증거로 이용해 정부에 적극적으로 항거한 자들을 체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기관은 광주 시민이나 학생들이 계엄군을 구타하는 사진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전두환의 지시에도 그런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광주 시민들이 협조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정부 측에 광주 시민들에게 불리하도록 편집할 수 있는 5·18 당시의 영상자료를 확보하라는 지시도 했다.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일본 TV에 방송된 5·18 영상자료를 확보토록 한 뒤 이를 편집해 시민들이 공수부대를 공격하는 장면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영상자료는 광주에서 과잉 진압을 하는 공수부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만약 전두환이 그 영상을 활용하려면 많은 수정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수사기관이 5·18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을 공격하는 기록을 찾지 못하자 평범한 사진들을 과장해 시민들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자료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