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씬스틸러들의 마라맛 욕망···볼 맛 난다
JTBC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의 12일 자료를 보면, 전날 방송된 11회 시청률은 21.1%(비지상파 유료기구)를 기록했다. 올 한 해 방송된 미니시리즈 중 20%를 넘은 작품은 <재벌집 막내아들>이 유일하다.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두 축은 죽었다 다른 인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고 있는 주인공 진도준(송중기)과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이성민)이지만 조연들의 열연 역시 드라마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신 스틸러’. 주연보다 주목받는 조연배우. 진 회장의 고명딸 진화영(김신록), 진화영의 남편 최창제(김도현), 진양철의 장손 진성준(김남희), 진도준의 형인 진형준(강기둥)이 그들이다. 이들의 캐릭터는 <재벌집 막내아들>이 단순한 복수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다양하게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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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회장은 진화영에게 늘 “니는 내 고명딸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고명딸’의 뜻은 진화영의 대사에 나온다. “아버지에게 메인 디쉬는 오빠들이다? 너는 딸이니까 그냥 구색맞추기 장식용으로 만족해라. 지금 경고하신 거잖아. 알려드려야겠구나. 당신 딸이 고명이 아니고 메인 디쉬라고.”
장자승계 원칙인 집안에서 딸로 태어나 억울한 진화영. 그렇기에 더더욱 순양그룹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억눌린 욕망은 이성의 끈을 끊어놓는다. 지난 4일 방송된 8회에서 진화영은 그랬다.
승계 작업을 시작한 진 회장은 백화점과 마트 계열사를 ‘순양유통’으로 합쳐 순양그룹으로부터 분리하고 진화영에게 넘겼다. 진화영이 아버지에게 경영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였다. 우선, 계열분리 자금이 필요했다. 진도준과 그의 조력자 오세현(박혁권)은 이를 역이용했다. 미래를 아는 진도준은 ‘뉴데이터테크놀로지’ 주식이 닷컴 버블을 타고 수직상승했다가 몰락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진화영에게 흘린다. ‘뉴데이터테크놀로지는 공모가 1500원에서 일주일 만에 1만원으로 올랐고 앞으로 4만원까지 오른다. 투자한다면 반드시 4만원에서 손 털어라’고. 진화영은 딱 4배 수익만 올리고 주식을 팔았다. 그러나 이 주식은 10배 이상 상승했다. 계열분리 자금은 물론 순양그룹 지분까지 사들일 수 있을 돈이었다. 가질 수 있었던 돈을 놓쳤다고 생각한 진화영은 이때부터 달라진다. 회의 중에 다리를 흔들고, 손톱을 뜯는다. 오빠들이 자신의 백화점 지분을 노린다는 소식까지 전해듣자 진화영은 이성을 놔버린다. 재무이사에게 회삿돈을 모두 투자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회삿돈을 투자하라고 지시하는 순간 횡령 및 배임이 된다.
배우 김신록은 내 지갑에 들어올 수 있었던 돈을 코앞에서 놓쳤을 때 눈이 뒤집히는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장면에선 오빠들에게 지지 않고 ‘메인 디쉬’임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을 폭발시킨다.
진화영의 눈화장은 분장인가 싶을 정도로 진하다. 첫 회에서는 낯설었지만 재벌집 딸이 아닌 그룹의 주인이 되고 싶은 백화점 사장 진화영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위로 치켜 올라간 눈썹과 진한 아이라인은 딱 들어맞는 콘셉트이다. 그러다 9~11회에서 백화점 사장 자리를 빼앗긴 진화영의 눈화장은 옅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박정자 역할로 ‘센 캐릭터’를 소화한 김신록이 이번에도 열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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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영이 불이라면 남편 최창제는 물이다. 진화영의 과외교사로 인연을 맺은 최창제. 공손한 자세로 불같은 아내 진화영을 달랜다. 그는 권력욕이 있으나 능력은 없는 검사다. 능력이 없으니 장인과 아내의 권력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항상 허리를 굽힌다.
배우 김도현은 최창제가 ‘흙수저 출신’이라는 점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그의 손 위치는 최창제가 가진 권력 무게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일개’ 검사 최창제는 장인 앞에서 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어깨는 구부정했다. 최창제가 진도준의 도움으로 서울시장이 되고 장인의 뜻을 거슬러 재개발 사업권을 진도준 쪽에 넘겨주자 화가 난 진 회장은 자택으로 최창제를 호출한다. 진 회장 앞에 선 최창제는 두 손을 모으지 않고 차렷 자세로 섰다. 어깨는 폈다. 그는 말한다. “제 뒤에 있는 사람은 1000만 서울시민입니다. 공정한 법과 절차에 따라 순양건설이 아닌 제아건설을 택했을 뿐입니다. 서울시정에 공무가 있으시다면 다음엔 청사에서 뵙겠습니다. 회장님.” 그러다 재개발 사업이 진 회장의 장손자 진성준 손으로 넘어오려는 순간, 최창제는 주저하다 다시 두 손을 모은다. 이 드라마에서 권력의 크기를 잘 알고 권력에 가장 예민하면서 가장 잘 순응하는 사람은 흙수저 최창제다.
진화영과 최창제는 권력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부이지만 재벌가 결혼답지 않게 ‘찐사랑’의 면모도 보여준다. 최창제는 시장실에서 아내를 업고 달래주고, 아내의 종아리도 정성껏 주물러준다. 능력도 눈치도 없지만 심성 하나는 고운 유약한 남편의 전형이다. 아내를 졸졸 쫓아다니며 쩔쩔매는 모습은 코믹하기도 하다. 노년 시절이 등장하는 1화에서 최창제는 어깨 펴고 뒷짐진 채 아내와 대등한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시장을 거쳐 국회의원 자리까지 오르는 권력이 만들어낸 자세일 터다.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배우 김도현은 TV에서는 ‘엘리트 공무원’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지난해 MBC 드라마 <검은 태양>에서 국정원 팀장 하동균, <트레이서>에서는 조세1국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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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부터 ‘갑질 무개념’ 재벌 3세로 등장하는 진성준. 그는 태어나면서 부와 권력을 가졌다. 그러나 할아버지 진 회장이 자신을 무조건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안다. 그의 아버지 진영기(윤제문)조차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을 지켜봤다. 다 가졌지만 언제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내재한 채 살아가는 재벌 3세가 진성준이다. 독한 할아버지 그늘 밑에서 자란 그는 늘 불안하다. 그 불안감은 이중성으로 표출된다.
진성준은 1회에서 회사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포했다가 아버지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도망친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파란 수족관을 응시하고, 수족관 유리에 손을 대며 열대어의 움직임을 쫓아간다. 이때 행사장으로 가자고 재촉하는 윤현우 팀장(송중기)에게 골프채를 휘두른다. 망나니가 따로 없다.
“서울이 언제부터 이렇게 재밌어진 거야, 내 허락도 없이.” 도피성 유학을 다녀오자마자 어쩔 수 없이 만난 정략 결혼 상대 모현민(박지현)과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적수가 없었고, 제멋대로인 인간유형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의 이중성은 모현민과의 결혼식 장면에서 압권이다. 모현민이 진도준에게 거절당하고 자신을 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진성준. 그는 결혼식 직전 신부대기실에서 모현민을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직전에 하객들에게 보인 미소를 뒤로하고 웃음기 가신 싸늘한 얼굴로 바꾼다.
배우 김남희는 2016년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과로사하는 의사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8년 tvN <미스터 선샤인>에서 고애신과 유진 초이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모리 다카시 역으로 ‘신 스틸러’의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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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캐릭터가 무거운 가운데 진형준(강기둥)은 유독 유쾌하다. 이 드라마에서 진도준의 형 진형준에게 뚜렷한 서사는 없다. 그는 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여러 스타들의 패션을 따라해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 패션인 비니 모자와 스키복을 입고 등장했다. 숨이 막힐 듯한 재벌집의 가족 식사 자리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옆머리를 뾰족하게 내려뜨린 H.O.T의 문희준 패션을 따라하고 나타났다. 사촌형 진성준의 결혼식에선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 코스프레를 하고 지드래곤의 인사법이라 할 수 있는 합장 인사를 했다.
진형준은 이 한 장면으로 ‘시선 강탈’했다. 복수와 욕망, 머리 싸움이 난무하는 무거운 전개에 그나마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인 셈이다. 시청자들은 ‘이젠 <겨울연가>의 배용준 목도리 차례’라고 예상하는 등 다음 회차의 코스프레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우 강기둥은 2017년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투머치 토커 교도관으로 등장해 존재감을 알렸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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