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배우러 떠난 길… 마음도 트였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 좋은 서천 지역 박물관 생태여행
전국이 개발 광풍에 휩쓸려 갈 때 꼿꼿이 자연을 지켜낸 도시가 있다. 충남 서천도 그중 하나다. 서천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전북 군산과 함께 1989년 군장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됐다. 1234만2000㎡(374만평)의 갯벌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짓는 안은 18년 논란 끝에 부결됐다. 서천 시민들은 2007년 ‘갯벌 보전과 생태산업 중심’의 대안을 선택했다.그 결과로 들어선 게 국립생태원(2014년)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2015년)이다. 서천은 이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생태관광 도시로 탈바꿈했다. 두 박물관은 수도권에서 2~3시간 차를 몰아 일부러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깔끔하게 꾸민 시설엔 볼거리가 지천이다.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더욱 보람 있는 여행이 된다. 전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뒤숭숭하지만, 두 박물관은 4D 상영관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하곤 정상운영 중이다.
죽은 거북이 던진 질문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2018년 제주 바다에 방류된 붉은바다거북은 11일 만에 부산의 해안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거북의 장기에선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나왔다. |
연구와 전시·교육 기능을 겸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오른쪽 사진)은 국민 공모를 통해 전시공간 이름을 ‘시큐리움’으로 지었다. 바다(Sea)에 질문(Question)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는 공간(Rium)이라는 뜻이다. 시큐리움에선 지금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시작한 특별전의 제목은 ‘노 플라스틱 - 11일 동안의 메뉴’다.
최근 콧구멍에 빨대가 낀 채 고통스럽게 죽어간 바다거북의 사진이 외신에 공개된 적이 있다. 자극적인 이미지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는데,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2018년 8월29일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해양수산부, 해양환경공단 등 5개 기관은 한국 연안 바다거북 개체 수 회복을 위해 제주도 중문해수욕장에서 13마리의 바다거북을 방류했다. 그중 10마리에는 행동특성 분석을 위한 인공위성 추적용 발신기가 부착됐다. ‘KOR0093’이라는 번호가 붙은 3살 된 붉은바다거북은 11일 만인 9월8일 부산 기장군 해안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부검을 해봤더니 거북의 장기에서 비닐봉지와 버려진 어구 등 다량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특별전은 거북의 사체와 그 안에 들어 있던 플라스틱 쓰레기를 덤덤하게 보여주는데 울림이 크다. 낮은 탄식이 여기저기 들린다. 어린이 관람객들은 대개 울상을 짓는다. 거북이 왜 플라스틱을 먹게 되는지도 전시회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물속에 잠긴 하얀 비닐봉지는 작은 해파리와 구분하기 힘들었고, 찢어진 그물 조각은 해조류와 색깔도 생김새도 비슷했다. 후각 대신 시각에 의존해 먹이를 찾는 거북이 혼동해 삼키기 쉬운 것이다.
국내 연근해에서 사용 후 방치되는 폐어구는 연간 4만4000t에 이르는데 수거율은 57%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닷가에 아무렇게나 버린 음료수병이나 과자봉지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2017년 말부터 2년간 부검한 바다거북 19마리는 모두 소화기관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한다. 한 마리당 평균 15.5개, 3.57g의 플라스틱이 들어 있었다. 전시장 끝에는 우리가 지난 11일 동안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했는지, 그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보는 게시물이 있었다. 일상의 편리함을 대가로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자재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는 전시장 홍보 문구도 은근한 각성 효과가 있었다.
시큐리움의 상설 전시관에는 갑각류, 해조류, 무척추동물, 어류, 포유류 등 2300종 7000여점의 다양한 해양생물 표본이 전시돼 있다. 꼿꼿이 서서 먹이를 잡아먹는 갈치나 몸길이 22m에 이르는 대왕고래 등 눈길 끄는 것들이 많다. 하등생물부터 고등생물까지 4600점의 표본을 25m 높이로 쌓아올린 ‘생명의 탑’도 볼만하다. 연구실을 겸한 바다뱀 전시실도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겨울에 떠나는 열대 여행 - 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의 열대관은 연중 28도로 유지돼 추운 겨울에도 한여름 날씨를 느낄 수 있다. 천장에서 치렁치렁 뿌리를 내린 열대식물 치서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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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부지에 야외와 실내 전시공간이 어우러진 국립생태원은 장항역과 바로 붙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인공 연못 주위엔 갈대숲이 우거져 있고 에코케어센터엔 멸종위기종 동물이 보호·전시 중이다. 실내 전시공간인 ‘에코리움’에서는 한반도 생태계를 비롯해 열대, 사막, 지중해,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2100여종의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다.
에코리움 열대관은 연중 온도가 28도로 유지돼 추운 겨울에도 한여름 날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환경파괴로 나날이 줄어드는 열대우림을 3000㎡ 규모의 온실에 재현해놨다. 천장에서 치렁치렁하게 뻗어내린 ‘치서스’라는 덩굴식물의 뿌리가 입구에서 맞이한다. 워낙 생장이 빨라 일주일에 한뼘씩 잘라주지 않으면 바닥까지 닿는다고 한다. 생경한 열대 동물도 많다. 세계 최대 담수어로 몸길이가 5m까지 자라는 피라루크를 포함해 130여종의 어류와 14종의 파충류가 전시돼 있다. 길이가 2m 넘는 9살짜리 나일악어도 있다.
프레리도그(왼쪽 사진)와 사막여우. |
아프리카와 미 대륙의 사막을 재현한 사막관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사막여우다. 사막여우의 작은 몸집과 삼각형으로 크게 발달한 귀는 열 배출에 유리하게 진화한 결과다. 야행성이라 낮에 가면 언제나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깜찍하다. 사막여우들은 2014년 수단에서 국내로 불법 반입되다 적발돼 생태원에 자리를 잡았다. ‘초원의 개’로 불리는 프레리도그는 부산하게 움직이다가도 한번씩 천적인 독수리를 살피려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 재미있다.
지중해관에는 수령이 330년 된 올리브나무와 120년 된 바오바브나무가 있다. 둘 다 평균 수령이 1000년이라고 하니 아직도 한창때인 셈이다. 우리나라 기후인 온대관에는 제주 곶자왈이 재현돼 있고 한강에 서식하는 어류가 상·중·하류로 구분돼 전시돼 있다. 극지관에선 두 종류의 펭귄들을 구경하는 순서가 하이라이트다. 에코리움의 5대 기후대관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약 1시간이 소요된다. 하루 세 번 진행되는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해 전문 생태해설사의 설명과 함께하면 감상이 확연히 달라진다.
야외로 나가면 바람길(2500m)과 산들길(1650m)로 각각 이름 붙인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바람길에는 미국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오두막집을 재현한 ‘소로우의 집’과 수생식물원, 사구식물원 등이 있다. 산들길엔 이끼원, 한반도숲, DMZ 전시원 등이 들를 만하다.
새들의 낙원에서 - 조류생태전시관
서천과 군산 사이로 흘러 서해와 만나는 금강 하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철새 도래지다. 대표적인 겨울 철새인 가창오리는 밤새 먹이활동을 하고 아침이면 금강으로 돌아와 안전한 강물 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저녁 무렵 다시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들의 군무를 볼 수 있다. |
서천과 군산 사이로 흘러 서해와 만나는 금강 하구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산과 숲, 들과 농경지, 습지와 강, 바다와 갯벌 등 새들이 좋아하는 생태공간을 다 가졌기 때문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금강에는 넓적부리도요,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등 국제적으로 희귀한 철새를 비롯해 쇠기러기, 큰고니, 흰뺨검둥오리, 뿔논병아리 등 수많은 겨울철새가 찾아온다. 해 질 무렵 수만에서 수십만마리가 하늘 위를 수놓는 가창오리들의 군무도 겨울 금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다. 서천 앞바다 유부도 갯벌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도요새의 중간 기착지로 해마다 수만마리의 도요물떼새를 만날 수 있다. 유부도에 머무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서천을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금강변 새들의 생태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금강 하굿둑 바로 옆에 위치한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이다.
조류생태전시관 철새탐조교육장 |
2006년 완공된 전시관에는 연간 10만명의 탐조객과 관광객이 찾는다. 전시물은 서천의 생태계와 갯벌을 소개하는 것부터 철새들의 이동경로와 습성 등 새에 관한 모든 것을 망라한다. 철새탐조교육장에선 기본적인 탐조 수칙과 관찰법을 배울 수 있고 확 트인 전면 유리창으로 강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철새들을 망원경으로 바로 살펴볼 수도 있다. 작은 영화관인 ‘버드 시네마’에서는 검은머리물떼새를 주인공으로 한 유아용 애니메이션과 서천 갯벌의 생태를 담은 다큐멘터리 등을 번갈아 상영한다.
탁 트인 옥상에 서면 금강 하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자연을 벗 삼아 떠난 생태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좋은 장소다.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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