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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차진 날 것의 유혹 ‘생고기’…놓치면 후회할 뻔했네

(69) 전남 영암 오일장

경향신문

날짜에 5와 0이 들어가는 날 열리는 전남 영암 오일장. 이른 아침부터 장터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물류와 교통이 발달해도 오일장이 유지되는 이유는 다 사람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른다.

전라남도 영암. 원래는 학산면 독천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 그때 낙지 산지의 영광이 지금까지 내려와 낙지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은 하구언과 영암방조제에 막혀 더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26년 출장길에 완도, 진도 또는 해남 출장길이 잦았다. 26년 동안 꽤 많이 다녔지만, 영암을 보기 위해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주로 해서 영암을 스치듯 지났다. 그러면서 강진에서 바라보는 월출산 정상은 바위로 성을 두른 듯 강한 모습이었다. 기억 속에 영암은 낙지와 월출산, 그리고 무화과까지였다.

낙지·월출산·무화과가 유명한 곳

장터 규모 작지만 장날되면 북적

영암 읍장은 달력 날짜에 5와 0이 있는 날 열린다. 11월15일에 열리는 영암 오일장을 보러 영암으로 향했다. 오일장이 열리기 전날은 아무도 없었다. 시장 내 문 연 곳이 없어 시장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대부분 시골 장터 모습이 이렇다. 개미 새끼 하나 없던 시장이 장날만 되면 사람이 모이고 활력이 생긴다. 물류와 교통이 발전해도 오일장이 유지되는 이유가 사람이 그리워서인 듯싶다. 사람이 감소하는 농촌에서 그나마 어울려 사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에 계속해서 장터가 열리고 닫힌다. 이른 아침 장터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장터를 오랫동안 다니다 보니 매번 처음 가는 장터에서도 대충 어떤 식재료가 많을 거라는 예상은 한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는 생각보다 상품이 없을 수가 있다. 이번 영암장이 딱 그 경우였다. 원래는 어느 정도 무화과가 있을 듯싶었다. 영암은 무화과 산지로 유명한 곳. 끝물이라도 어느 정도 있겠다 싶었지만 없었다. 끝물의 농수산물은 사는 게 아니다. 이는 맏물도 마찬가지다. 특히 맏물은 가격만 비싸고 맛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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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대표 작물인 무화과는 이미 끝물이었다.

11월 중순의 영암장은 끝물과 맏물이 교차하는 시기. 수도권과 중부 내륙은 김장 준비가 한창이지만 영암은 아니었다. 날이 푹해 11월 말이 되어야 슬슬 준비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돼야 주변 밭에서 재배하는 배추의 맛이 제대로 든다. 12월의 영암 배추는 달곰하다. 김장을 한다면 배추는 전남이 영하권에 근접할 때 사야 한다. 가장 달곰한 배추를 살 수 있는 적기다. 기온이 떨어지는 것에 비례해 단맛이 배추에 깃든다. 이는 무도 마찬가지고 갓도 그렇다. 기사가 나갈 즈음부터 남도의 배추와 무에 제대로 맛이 들 것이다. 방조제로 막힌 곳 이쪽은 민물, 저쪽은 바다다. 그 모습이 어물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새우도 민물 줄새우와 바다 새우인 중하가 각각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생선도 붕어 옆에 제철 맞은 망둥이가 대기하고 있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이 있다. 11월에서 12월 사이 망둥이 앞에서 뛰었다가는 꼬리지느러미에 귀싸대기 맞기 쉽다. 이 시기의 망둥이는 겨울 제철 생선 못지않게 차지고 기름지기 때문이다.

육사시미·뭉티기, 여기선 ‘생고기’

고추장·마늘 육장에 푹 찍어 먹으면

영암 명물 ‘독천 낙지’ 버금가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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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에 간다면 생고기는 무조건 사야 할 아이템. 차진 식감의 생고기는 고추장, 참기름, 다진 마늘로 만든 육장에 푹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영암장은 이웃한 해남에 비해 장터 규모가 크지 않았다. 약간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영암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 로컬푸드 매장에 있었다. 수많은 산지를 다녔지만, 생고기 파는 곳은 처음 만났다. 생고기, 육사시미, 뭉티기는 같은 음식을 칭하는 단어다. 전라도는 생고기, 경상북도는 뭉티기로 부른다. 수도권은 육사시미가 대세. 로컬푸드 매장의 정육 판매대에서 생고기를 팔고 있었다. 생고기 팔기는 쉽지 않은 일. 아침 일찍 도축한 소의 엉덩이 살만 따로 떼야 하는 번잡함이 있다. 소는 도축하고 나서 하루 동안 숙성해야 한다. 하지만 생고기용 부위는 예외다. 도축 당일 출하가 가능하다. 오전에 일찍 가면 못 산다. 생고기용 고기는 11시가 되어야 판매한다. 도축과 작업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 생고기를 먹어 본 사람은 그 차진 식감을 안다. 고추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로 만든 육장에 푹 찍어 먹는 맛은 예술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소주 한잔이 생각 날 것이다. 술 안 마시는 사람은 따듯한 밥 위에 생고기 한 점, 그리고 육장을 올려 먹으면 된다. 안주와 좋은 반찬은 상통한다. 영암에 간다면 생고기는 무조건 사야 할 아이템. 필자가 사던 날은 100g에 6000원이었다. 같이 간 작가는 500g을 사서 그날 저녁 네 식구가 바로 해치웠다고 한다. 도축장이 쉬는 주말과 휴일에는 팔지 않는다. 이는 생고기 파는 전문점도 주말에 다른 건 팔아도 생고기가 없는 이유와 같다.

새우젓 제대로 낸 삼겹살 구이 일품

‘낙지 사촌’ 문어로 만든 볶음 쫄깃

토종닭 주물럭·회무침도 ‘군침’

영암으로 향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일단 낙지는 제외. 누구나 아는 지역의 음식은 취재에서 가능한 한 뺀다. 영광 굴비 정식, 포항 물회, 영덕 대게 등은 오일장 취재 가서 봤지만 기사에는 올리지 않았다. 이름난 것 외에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음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만 찾기 때문이다. 음식점을 찾다가 발견한 곳, 삼겹살만 판다. 나오는 찬도 거의 없다. 공깃밥이 아닌 커다란 사발에 막 퍼서 나오는 밥이 매력적이었다. 삼겹살을 팔면 보통은 목살이 세트처럼 있다. 심지어 그런 목살조차도 없었다. 안 갈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해 얼추 11시경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불이 들어오고 간단한 찬이 깔렸다. 돼지고기라는 것이 동네마다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를 내는 것은 같이 내는 찬이라든지 아니면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족발, 보쌈, 순댓국 등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삼겹살 구이집에서는 보기 힘들다. 여기는 새우젓을 제대로 낸다. 이 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따로 주는 들깻가루도 매력 있지만, 새우젓이 있어야 그 매력도 제대로 난다. 보통 식당에서 내는 새우젓을 보면 젓국이 흥건할 정도다. 새우젓에 물을 타고 조미료와 소금을 더해 양을 늘린 것이다. 그런 새우젓을 만나면 넣지 않는다. 어차피 요리하면서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에 조미료 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쌈을 들고 밥을 올린다. 그 위에 고기를, 그리고 새우젓을 더해 먹는다. 그다음은 들깻가루에 찍어 먹는다. ‘저 밥은 언제 다 먹나’ 했지만 금세 사라진다. 같이 나오는 우거짓국도 맛있다. 이런 시골 동네에 누가 와서 먹나 싶었는데 계산하고 나가는 사이 차가 밀려들어온다. 몇 번 지면에서 이야기했다. 메뉴 하나만 파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이다. 금동숯불구이 (061)472-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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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양념과 문어의 쫄깃함이 별미인 문어볶음.

영암은 낙지가 유명하다 독천리에 낙지 골목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낙지가 아닌 사촌인 문어다. 영암 읍내에 문어볶음 잘하는 곳이 있어 찾았다. 보통 문어하면 숙회. 잘 삶은 문어를 얇게 저며 초장에 찍어 먹는다. 쫄깃한 문어 식감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색다른 음식으로는 강원도 고성에서 먹었던 문어국밥도 있었다. 문어라면은 제주도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볼 수 있는 메뉴. 먹어 본 적은 없다. 홍합과 문어를 매콤하게 볶고는 밑에 삶은 국수를 깔았다. 향 좋은 깻잎을 살포시 얹어 나온다. 문어의 쫄깃함, 매운 양념, 향긋한 깻잎 향의 조화가 참으로 좋았다. 처음에는 삶은 국수와 버무려 먹고 그다음은 비빔밥. 볶음 요리에 비빔밥이 빠지면 섭섭하다. 구이판에 볶음밥이 빠지면 안 되는 것과 같다. 무채와 김가루, 달걀부침까지 더해 밥이 나온다. 매운 문어볶음을 더해 비벼 먹는다. 영암에서 낙지 말고 다른 것을 찾는다면 문어볶음이 좋다. 같이 나온 밑반찬도 숫자만 채우는 녀석들이 아니다. 순덕이네 0507-1341-6387


저녁에 소주 한잔하면서 토종닭 코스를 주문했다. 지역을 다니면서 가능하면 먹으려는 음식이 토종닭구이와 로컬푸드다. 지난 ‘여수’ 편에서 언급한 닭구이는 ‘인생 닭구이’였다. 여수, 구례, 순천과 달리 영암의 토종닭 요리는 코스다. 영암은 매콤하게 무친 주물럭을 중심으로 껍질구이, 회무침, 백숙 그리고 죽으로 마무리한다. 코스만 보면 나쁘지 않다. 속을 들여다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형식을 차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구례는 구이에 집중을, 해남은 주물럭에 방점을 찍는다. 여러 가지를 내다보니 음식의 질이 다른 지역보다 한창 밑이었다. 가장 맛있어야 할 토종닭 껍질구이는 기름맛만 났다. 회무침은 간이 없었다. 맛만 보고는 주물럭에 넣어서 볶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구례나 순천, 해남에서 토종닭을 먹었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토종닭으로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음을 알고자 하는 초심자에게는 추천한다. 진짜 ‘뭣이 중헌디’ 알았으면 한다.


김진영 식품 MD​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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